고미숙 지음/ 그린비 펴냄/ 12,900원'괴물'등 6편 주인공 캐릭터 분석 통해 한국 사회 근대성 설명

<이 영화를 보라>에서 고미숙의 글은 ‘말하기’에 가깝다. 실제 그의 강연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그는 꽤 직설적이고 솔직하게 말한다. 인문학자 중 이런 말하기 방식을 사용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대학을 벗어나 직장인과 주부까지 포용하는 ‘지식인 코뮌’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주로 활동한 그의 이력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대학이란 테두리 없이 글을 쓰고 강연을 하고 연구실을 운영하며 밥을 버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형태의 지식 노동을 하는 사람이다.

직설적이고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말하는 그는 그러나, 글에서는 꽤 ‘인문학자’같은 냄새를 풍겨왔다. 물론, 그가 고전을 연구하고 비평하는 고전평론가(이 말은 고미숙 자신이 고안한 것이다)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부작용일 수도 있다. 그가 아무리 쉽게 설명한다 해도 고전은 언제나 일반 대중이 이해하기에는 2% 어려운 분야이니까.

고미숙은 그를 스타로 만든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에서 잊혀진 연암 박지원을 소개하며 ‘고전’과 ‘근대’를 절묘하게 연결했다. 이는 동시에 고미숙의 연구 분야이기도 하다. 이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고미숙은 이제 한국의 대박 영화를 분석하기 시작한다.

이 책은 인문학자 고미숙의 방식대로 풀어본 한국 영화의 서사와 인물분석서다. 고미숙은 영화 주인공의 캐릭터를 분석하고 이들의 행동과 말투, 영화적 배경을 통해 ‘한국사회 근대성’을 설명한다.

이 책의 ‘기본 텍스트’는 6편의 영화다. <괴물><황산벌><음란서생><서편제><밀양><라디오스타>. 누구나 보았거나 적어도 이름은 들어본 유명한 영화다. 동시에 이 영화는 그가 천착하는 한국사회의 의식구조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괴물>에서는 주인공 강두와 강두 가족의 분석을 통해 위생권력의 정치성을 설파한다. 고미숙은 이 영화를 “문명국가가 될수록 사람들은 평생에 걸쳐 더욱 체계적으로 노예화되어 간다”는 이반 일리히의 주장과 나란히 놓고, 위생권력이 대중을 길들이는 교묘한 방법을 비판한다. 더불어 ‘포름알데히드 방류’와 연관해 오늘날 광우병 논란과 미제국주의를 연결시켰다.

<황산벌>에서는 영화를 관통하는 키워드, 사투리를 해체시킨다. 사투리를 통해 그가 읽어내는 것은 민족담론과 담론에서 파생되는 계급의식이다. <음란서생>에서는 고전과 섹슈얼리티를 말한다. 조선시대 개방적인 성 문화를 근대적 시각으로 재구성해 ‘삑사리’가 났다는 그의 주장은 일면 흥미로우면서도 논리적 타당성을 지닌다.

이밖에도 영화 <서편제>를 통해 한(恨)의 미학적 장치, <밀양>에서는 가족과 신, <라디오스타>에서는 이동과 접속을 말한다. 이 항목들은 지난 100년간 한국인들의 일상과 무의식을 지배해 온 핵심기제다.

‘위생권력’ ‘민족담론’과 같은 만만치 않은 주제에서 시작한 이 책은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 줄거리에 충실한 텍스트 분석으로 쉽게 넘어가는 특징이 있다.

작가는 스스로 미학이나 미장센과 같은 영화적 문법을 모른다고 말한다. 영화를 즐겨 보지도 않는다고 뻔뻔하게 고백하며 영화관련 책을 펴냈다. 그는 영화를 논하며 철저히 ‘일반 관객’의 눈으로 ‘줄거리’와 ‘인상적인 장면’에 집중한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사뭇 색다르면서도 인문학자 특유의 깊은 통찰력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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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