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속미니 박물관티베트 박물관서 세계 장신구 박물관·토이키노 박물관·북촌 생활사 박물관까지

‘옐로 스톤’ 국립공원은 모든 미국인의 꿈이다. 미국 서부 와이오밍주에 있는 이 공원은 외국인 관광객 뿐 아니라 미국인 누구나 한번쯤은 가보고 싶어하는 관광지로 유명하다.

비결은 하나. 한 코스 안에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원형 길을 따라가다 보면 간헐천, 계곡, 호수, 자연림 등 여러 볼거리를 즐길 수 있고 멸종 위기에 처한 버팔로나 사슴이 도로 위로 뛰어드는 일도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거리가 있다. 고풍스런 덕수궁과 창덕궁 사잇길로 노천카페와 화랑 등 문화의 향기를 물씬 풍기는 길을 따라 돌며 자연스럽게 미니 박물관을 관람할 수 있는 서울 종로구 북촌 박물관 코스다. 이 코스를 따라가면 서울 삼청동 인근 한옥마을 주변에 있는 티베트박물관, 세계장신구박물관, 토이키노 박물관, 북촌생활사박물관 등을 만날 수 있다.

이들 박물관은 모두 개인이 운영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잿빛 서울 도심에서 은은하게 문화의 향기를 전하는 삼청동 인근 미니박물관 탐문에 나서보자.

지하철 안국역 1번 출구에서 나와 정독도서관 방면으로 10분 정도 걷다보면 화계길 왼편에서 여정의 출발지, 티베트 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박물관 앞에는 티베트 산 해태 석상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이빨을 드러낸 채 관람객을 맞는다.

■ 인피(人皮) 경전과 두개골 공양기, 넓적다리뼈 나팔을 아시나요

모자를 벗고 혀를 살짝 보여주며 인사하는 사람들. 바로 티베트 인들이다. 인사법부터 특이한 이 나라는 중국의 속국이 됐지만 ‘달라이 라마’와 ‘포탈라궁’이 표상하듯 독특한 문화적 역사와 전통은 아직까지 독립적으로 살아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신비롭게 여겨지는 문화 중의 하나인 티베트를 만날 수 있는 티베트 박물관이 바로 북촌 박물관 탐방의 첫 코스다.

이곳에서는 티베트의 전통유물과 복식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티베트 박물관에서는 마니차, 바람의 말, 진실의 거울, 인피(人皮) 경전, 두개골 공양기, 넓적다리뼈 나팔 등 진기로운 티베트 전통 유물을 만날 수 있다.

마니차는 티베트인들이 사원 앞에 윤회를 상징하는 원통모양의 기둥을 세워놓고 시계방향으로 돌리며 복을 기원하는 것이다. 티베트인들은 휴대용 마니차를 사용하기도 한다.‘바람의 말’이란 티베트어로 복을 기원하는 문구를 새겨놓은 천이다. 티베트인들은 소원을 천에 써서 호수가나 나뭇가지 등에 걸어놓으면 바람이 싣고 가서 신령의 귀에 닿을 수 있다고 믿는다.‘진실의 거울’이란 티베트인들이 수양을 많이 쌓고 보면 진실을 볼 수 있다고 믿는 물건이다.

라마승이 종교의식에 사용하는 인피(人皮) 경전, 두개골 공양기, 넓적다리뼈 나팔 등의 진귀한 유물도 이채롭다. 티베트인은 예로부터 고승의 뼈나 살가죽을 이용한 교구를 쓰면 악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다.

가족단위의 관람객들과 데이트 하는 연인에게 특히 좋은 곳이 티베트 박물관이다. 진귀하고 이국적인 물건들을 관람하며 마음껏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자유를 허락하는 개인박물관을 장점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티베트 박물관에서는 13세기에서 19세기까지 출토된 티베트 유물 400여점을 상설 전시한다. 신영숙 티베트 박물관장은 총 1,200여개의 티베트 유물을 보유하고 있다.

■ 황금목걸이에서 상아팔찌까지

티베트 박물관 앞의 해태석상과 다시 인사를 나누고 화계길의 분위기 있는 돌담길을 걷다보면 두번째 오른쪽 골목길에 세계장신구박물관이 나온다.

장신구 박물관은 건물 외양부터 검은 유릿빛의 특이한 모습이다. 이 박물관 건물은 김승회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가 2004년 보석함 콘셉트로 설계해 화제를 몰고 오기도 했다.

‘진귀한 보물’을 실컷 구경할 수 있는 게 이 박물관의 특징이다. 장신구박물관에는 호박, 황금 목걸이, 팔찌와 발찌, 반지, 귀걸이와 머리장식, 에티오피아 십자가 상 등 수많은 보석류 장신구가 전시돼있다.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것은 ‘목걸이 방과 십자가의 방’이다. 꽃밭을 테마로 전시한 이 방에서는 수천년 동안 나무송진이 굳어 형성된 최고급 보물인 호박으로 만든 목걸이와 16세기 잉카에서 나온 목걸이, 인도 반지 등을 구경할 수 있다.

‘팔찌와 발찌의 벽’에서는 금, 은, 상아 등으로 만든 아프리카의 진귀한 보물을 볼 수 있다.‘엘도라도의 방’에는 기원전부터 독특한 문화를 일구고 살았던 잉카인들의 진귀한 황금조각품과 장신구를 전시해놨다.

세계장신구박물관은 특히 ‘아름다움’에 관심이 많은 ‘여성’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세계장신구박물관의 수집품은 2,000여종에 이른다.

1. 두개골 공양기(티베트 박물관)
2. 마니차(티베트 박물관)
3. 세계장신구 박물관 소장품
4. 3대째 내려온 양념 단지(왼쪽)와 간장 결정체.
5. 세계장신구 박물관 내관
6. 북촌 생활사 박물관 내부
7.토이키노 박물관 내부
개인박물관장 3인 미니 인터뷰(맨아래)

■ 배트맨에서 마징가 제트까지

장신구박물관에서 다시 화계길을 걷다보면 삼청파출소를 지나 만날 수 있는 곳이 ‘토이키노’ 박물관이다.

‘장난감(TOY)’과 ‘영화(KINO)’의 합성어가 이름인 이 박물관에는 (만화)영화의 캐릭터로 쓰인 장난감을 중심으로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전시물이 가득하다.

이 박물관 1관은 ‘만화영화 캐릭터’들로 가득하다. U.S. 애니메이션 캐릭터 방에는 미키마우스, 토이스토리, 몬스터주식회사 등에 나온 미국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가득차 있다. 영웅캐릭터 방에는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을 비롯해 그야말로 ‘영웅’적인 캐릭터 장난감이 그득하다. SF캐릭터 방에는 스타워즈, 에이리언, 스타트랙 캐릭터를 전시했다.

2관에서는 마징가제트를 비롯한 한국 고전 프라모델과 아톰을 비롯한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 등을 볼 수 있다. 경찰차, 소방차, 양철 자동차, 플라스틱 장난감 트럭 등도 인상적이다.

토이키노 박물관은 어린이의 로망이자 어른에게는 추억의 장소다.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와 헐크 캐릭터를 보며 아들에게 어린시절 자신이 본 헐크의 추억을 설명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많은 장난감을 소유한 관장을 부러운 눈길로 쳐다본다.

손원경 관장은 77년께 스타워즈가 개봉했을 때 이 영화 캐릭터에 매료돼 장난감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토이키노 박물관 소장 장난감은 3만여종에 이른다.

■ 생활유물이 진짜 유물이다

토이키노 박물관 입구의 대형 해적 인형과 인사를 하고 큰 길을 따라 올라가면 고갯길 한옥마을의 가회동 주택단지에 있는 북촌생활사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마땅한 표지판이 없어 토이키노 박물관 관련자나 인근 주민에 물어 길을 찾는 것이 상책이다.

북촌의 평범한 주택을 개조해 만든 전시관과 외진 공간 때문에 북촌생활사 박물관을 찾기를 망설인다면 과감히 모험을 해볼 것을 권한다. 전통한옥마을인 북촌의 핵심적인 생활유물을 전시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북촌생활사 박물관에는 몇 백년전부터 몇 십년전까지 실제 북촌의 한옥마을에서 주로 쓰였던 정겨운 우리 ‘생활 물건’들이 그득하다. 3대를 이어온 간장단지와 간장 결정체, 전화선으로 만든 60년대 시장바구니, 곱돌 가마솥, 대원군이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말발굽, 60년대의 서민이 입던 속곳과 30년대 상류층이 입던 양복 등이 주요 전시물이다.

지금 보면 촌스럽기 그지 없지만 우리 생활상의 변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당시 ‘신상품’ 역시 재미난 볼거리다. 문 여닫이가 있는 고물 텔레비전에서부터 59년 처음 나온 금성사의 국산 라디오, 플라스틱 슬리퍼까지 있다.

연탄화덕, 시루, 무쇠가마솥, 빨래판과 빨래 방망이, 구식전화기도 보는이를 옛 추억에 잠기게 한다. 전통마을 북촌의 생활상을 알고자 하는 누구에게나 의미 있는 전시다.

북촌 생활사 박물관에는 총 168점의 생활유물이 전시돼있다. 이경애 관장은 1만여점의 생활유물을 정리해왔다.

‘옐로스톤’ 뿐만이 아니다. 북미 지역을 여행하다 보면 ‘믿거나 말거나(Believe or not) 전시관’과 점성술 전시관을 비롯한 미니전시관을 주요 관광지 도처에서 마주칠 수 있다. 관광객이 심심할 틈을 주지 않는 공간배치에 개인박물관을 적절히 활용하는 게 관광대국, 문화대국 대부분에서 시행하는 관광 정책이다.

‘북촌 한옥마을’에서 개인들이 어렵게 일군 ‘미니 박물관’들이 천혜의 관광자원이 부족한 우리에게 새로운 관광과 문화생활의 대안으로 자리잡을 여지는 충분하지 않을까.

◇ 개인박물관장 3인 미니 인터뷰

■ "원초적 아름다움에 숨이 멎는 기분이었다." 이강원 세계장신구박물관장

“숨이 멎는 기분이었다.” 8일 오전 11시께 서울 종로구 화동 세계장신구 박물관에서 만난 이강원 관장은 장신구에 눈을 뜬 첫 순간을 회상하며 지금도 설레는 표정을 짓는다.

외교관의 아내였던 이강원 관장은 78년 내란이 한창이던 에티오피아의 시장에서 원주민이 차고 있던 은목걸이의 원초적 아름다움에 매료돼 장신구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는 총포 소리가 난무하는 현지에서 순수한 아름다움에 매료된 순간을 회상했다.

‘절대적 아름다움’은 관장이 장신구 수집품을 고르는 기준이다. “조형미, 디자인의 절대적 아름다움’을 그는 첫째 수집의 기준으로 친다.

‘만든이의 혼’ 역시 이 관장이 수집품을 모으는 기준 가운데 하나다. “장인의 혼이 반영된 작품이라면 디자인과 조형미를 뛰어넘는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 "전시란 재창조다." 손원경 토이키노 박물관장

“앤디 워홀이 따로 있나.” 8일 오후 1시께 서울 삼청동 토이키노 박물관에서 만난 손원경 토이키노 박물관장은 장난감 디스플레이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한마디로 정리했다. 앤디워홀이 <샘>이란 작품에서 생활 물품인 변기통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배열해 또 다른 예술을 창조 한 것같이 수집과 재배열은 또 다른의 창조행위로 해석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남이 내 인생 대신 살아주나.” ‘주위의 만류는 없었나’라는 질문에 대한 손 관장의 대답 역시 간명했다. “인생을 꼭 준거집단에 맞춰 살 필요가 있느냐”는 설명이다.

손 관장은 “자신만의 창고 내지는 차고를 갖고 나름의 창작을 하는 사람을 미국사회에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듯이, 모두가 ‘타워팰리스’를 추구하는 사회라도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수집가를 이상하게 볼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 "박물관 지원정책 이제는 바뀌어야." 이경애 북촌생활사박물관장

8일 오후 3시께 서울 삼청동 북촌생활사 박물관에서 만난 이경애 관장은 “10년전 한옥마을의 전통가옥 개조 붐이 일면서 한옥의 창고, 마루 밑, 광, 독, 골방에 있던 가치 있는 생활 유물들이 마구 버려지는 것이 안타까워 이를 수집하기 시작했고 2003년 10월 지금의 박물관을 열었다”고 말한다. “가치 있는 생활유물을 수집, 보존해야 한다”는 그의 건의를 시가 받아들이지 않자 스스로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지금의 지원정책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는 설명이다. 이 관장은 “학예사 급여를 시에서 지원하고 있을 뿐 별다른 지원책이 없어 대부분의 개인박물관이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한다.

이강원 세계장신구박물관장 역시 “박물관 숫자는 그 나라의 문화지표인데 우리나라 박물관은 500여개로 1만여개 이상인 일본 등 선진국과 대조된다”며 “500여개 국내 박물관의 절반을 차지하는 개인박물관을 지원하지는 못할망정 국립박물관을 민영화하겟다는 것은 예술을 상업논리의 덫에 방치하는 것으로 새정부의 포퓰리즘적인 문화정책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한탄했다.


김청환 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