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소한 미국 미술서 대중화 추세… 패션·광고·영상·콘서트 등 영향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 미술’. 가수 조영남 씨가 지난 해 출간한 책의 제목이다.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현대미술 사조를 비판하는 그의 일침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알록달록한 색깔, 만화에서나 본 듯한 단순한 캐릭터, 연예인 등 유명 인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팝아트는 현대미술의 다른 장르와 달리 친근하고 대중적이다.

국내에도 팝아트는 인기 상종가를 달린다. 지난 해 삼성특검으로 알려진 리히텐슈타인은 이제 잭슨폴록이나 앤디워홀처럼 친근한 현대 작가가 됐고, 팝아트는 더 이상 생소한 ‘미국 미술’에 머물지 않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반 고흐 등 고전 작가에서 시작된 기업의 아트 마케팅도 이제 팝아트로 장르를 옮기는 추세다. 대중문화에서 모티프를 따온 팝아트는 국내에서는 역으로 패션과 광고, 영상, 콘서트 등 대중문화에 영향을 주고 있다.

■ 팝 아트의 역사를 한 눈에

팝 아트의 위상변화는 스타작가와 전시회를 통해 확연히 드러난다. 김동유, 홍경택, 권기수, 이동기, 임태규, 이길우 등 20~40대 젊은 작가 군이 대거 등장하며 팝아트 시장을 형성하게 된 것. 아톰과 마우스를 합성한 캐릭터 ‘아토마우스’ 작가 이동기 씨는 지난 4월 개인전에서 전시작 50 여 점을 모두 판매했다. ‘동구리 시리즈’의 권기수는 지난 2월 개인전에서 전시작 40점이, 임태규 씨는 4월 개인전에서 전시작 24점이 모두 매진됐다.

일부 젊은 컬렉터를 중심으로 형성된 국내 팝아트 문화는 점차 대중화되는 추세다. 2000년대 초반부터 국내 알려지기 시작한 팝아트 전시회는 올해 여름 대규모 전시회가 개최되며 ‘팝아트가 대세’임을 굳히고 있다.

경기 성남아트센터 미술관에서 전시되는 ‘팝아트의 세계-팝앤팝’전은 국내 작가 35명의 작품 93점이 전시되는 초대형 팝아트 기획전이다. ‘한국적 팝아트란 무엇인가’란 주제로 기획된 이 전시회는 한국미술사에서 팝아트적인 요소를 찾아 한국 현대미술의 경향을 보여준다.

강영민, 김준, 낸시랭, 신영미, 이동재, 임태규, 홍경택 등 국내 팝아트 작가와 앤디 워홀, 리히텐 슈타인, 나라 요시토모, 무라카미 다카 하시 등 해외 유명 팝아트 작가의 작품이 조화를 이룬다.

‘팝앤팝’전이 국내 팝아트의 현주소를 보여준다면 청담동 오페라갤러리에서 열리는 ‘공개수배! 팝아트’전은 외국 팝아트의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회다. ‘선구자’ ‘후예들’ ‘변화와 가능성’등 3개 섹션으로 구성된 전시회에서는 30 여명의 해외 유명 팝아티스트의 작품 60 여 점이 전시된다.

앤디 워홀, 키스 해링, 로버트 인디애나, 리히텐슈타인, 톰 웨슬만 등 60년대 대표 팝아티스트의 작품에서 로베르트 콩바스, 데미안 허스트 등 경쾌하고 통속적인 경향의 작품, 루오 브라더스, 펑정지에, 첸웬보, 왕광 등의 아시아 팝아트 등 다양한 경향의 작품이 선보인다.

이 밖에도 11월 뮌헨에서 김동유 개인전이, 8월과 9월 도쿄에서 이동기 작품전과 10월 홍경택 개인전 등 팝아트 전시회가 잇따르고 있다.

쌈지 박진우 라인(위)
레노마의 동구리 시리즈(아래)

■ 팝아트 룩, 한국에도 상륙

원색의 알록달록한 컬러의 팝아트는 의상 디자인에 쓰이면 강렬하고 독특한 패션을 연출할 수 있어 디자이너들의 애용하는 컨셉트가 됐다. 국내에는 쌈지 등 패션업체에서 팝아트를 소재로 의상을 발표해 왔다.

‘아티스트 피처링 브랜드’란 부제로 세계적인 아티스트와 다양한 작업을 해온 쌈지는 지난 해 앤디 워홀 서거 20주년을 맞아 앤디 워홀 재단과 라이센스 계약을 맺고 티셔츠, 코트, 원피스, 액세서리 등 다양한 제품을 출시했다. 앤디 워홀의 대표 작품인 Flower 시리즈, Thanks diagram, Truman capote shoe등이 모티프가 됐다.

또한 지난 해 여름에는 팝아트를 주제로 티셔츠 공모전을 실시해 김나리, 윤혜정, 진보람 등 신예 아티스트를 발굴했다.

몇 해전 ‘후부’는 팝아트 작가인 키스 하링의 미키마우스 형상을 티셔츠에 옮겼고 지난해 ‘유니클로’는 팝아티스트 김태중이 그린 그림이 들어간 티셔츠를 내놓았다.

올해는 레노마스포츠에서 ‘동구리’캐릭터로 주목 받는 한국 팝아트 작가 권기수 씨와 협업으로 ‘동구리 컬렉션’을 내놓았다. 핑크, 오렌지, 블루 등 색상에 동구리 캐릭터가 조화된 재킷과 피케 셔츠, 캐디백 등을 출시해 골프 브랜드로 처음 팝아트를 패션에 접목시켰다.

진 브랜드 ‘게스’는 영화배우 한채영과 프로모션을 진행하며 시백진과 팝아트 프린트 티셔츠를 매치시켜 주목을 받았다.

올 봄 쌈지에서는 국내 팝아트 작가 박진우 씨와 함께 ‘박진우 Art Bag라인’을 출시했다. 특히 ‘Funky royal 동물’시리즈는 토끼, 말, 사슴 등 여러 동물을 유럽 귀족으로 변신시켜 유머러스함을 더했다. 지난 5월 명동 롯데백화점 영플라지에서 ‘Funky royal by Zinoo Park’ 전시를 여는 등 프로모션도 병행했다.

팝 아트 의상이 선보임에 따라 청바지, 캐주얼과 팝아트 의상을 함께 코디하는 ‘팝아트 룩’도 선보이고 있다. 의 패션에디터 박연경 씨는 “최근 팝아트 작품을 티셔츠 등에 응용한 제품이 많이 선보이고 있는데, 예술작품을 모티프로 큐티하고 캐주얼한 패션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팝아트 룩은 일종의 사조가 있다고 보기 힘들다. 예전부터 현대미술작품과 의상 디자인의 접목이 몇 번 시도 된 적이 있는데, 60년대 입생로랑이 몬드리안 그림을 모티프로 원피스를 발표 한 것이 시초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 광고, 티저영상, 콘서트에도 도입

이효리 티저 영상(위)
정재형 콘서트(아래)

팝아트가 가장 적극적으로 쓰이는 장르 중 하나가 광고다. 이미 80~90년대 팝아트를 광고에 이용했던 서구와 달리 한국은 2000년대 중반 이후 팝아트를 광고와 접목 시켰다.

지난 해 12월에는 하나금융그룹이 앤디 워홀의 작품세계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만든 광고를 선보였다. 앤디 워홀이 평소 주창하던 상업미술의 상징 달러 작품과 함께 뉴욕 거리를 배경으로 다양한 작품을 화려하게 처리했다.

올해는 이효리 3집 티저 영상이 단연 눈에 띈다. 지난 6월 23일 공개된 이효리의 3집 티저 영상은 서울 광화문과 강남역 등 서울 시대 5~6개 대형 전광판으로 공개된 후 공중파와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됐다. 티저 영상과 포스터는 하와이에서 촬영한 이효리의 스틸 사진과 팝아트 작품을 가미해 제작됐다.

티저 영상을 촬영한 제작사 ‘아프리카’의 김철 조감독은 “이효리 3집 앨범의 재킷이 팝아트적인 느낌을 준다. 이 재킷의 느낌을 살려 영상을 제작했다. 국내에는 앤디 워홀이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재미있고 만화적인 느낌을 살리기 위해 리히텐슈타인의 그림 스타일을 골랐다”고 말했다.

영상은 실제 리히텐슈타인을 인용한 것이 아니라 그의 그림 스타일이 실린 ‘그래픽 툴’ 책을 바탕으로 스테프가 직접 그림을 그리고 이효리의 사진을 합성해 제작했다. 김철 조감독은 “이미 몇 해 전부터 뮤직비디오와 같은 영상에서 팝아트적인 요소가 가미된 작품이 조금씩 선보여 왔다. 광고는 눈에 뜨여야 하기 때문에 컬러풀한 팝아트 기법을 많이 선호하는 듯하다”고 밝혔다.

가수 정재형은 최근 콘서트에서도 팝아트를 접목시켜 화제가 됐다. 지난 6월 27일에서 29일 열린 콘서트에서 그는 팝아트를 연상케 하는 무대 연출과 음의 강도에 따라 영상이 반응하는 인터랙티브 비주얼 아트를 도입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 콘서트를 기획한 ‘마스터플랜 뮤직그룹’ 김지홍 팀장은 “3집 앨범은 ‘정재형 표 발라드’에서 벗어나 미니멀 일레트로닉 음악을 시도했다. 이런 변화를 팬들에게 보여주고자 팝아트 콘서트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조명은 직접 가수를 비추지 않고 반사판을 쓰고 음악이 연주되는 내내 VJ가 만든 영상이 대형 화면으로 펼쳐졌다.

팝아트의 무대로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공연을 시도한 것. 가수 정재형은 “늘 봐왔던 공연에서 탈피해 새로운 레퍼토리와 무대를 보여줬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전문가들은 20~40대 디지털 세대가 새로운 미술문화 중심으로 떠오르며 대중적인 팝아트와 이것을 주제로 한 문화상품이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분석한다.

만화, 연예인 등 대중에게 친숙한 소재로 젊은 감성을 표현하며 자기주장을 담아내는 것이 팝아트의 특징이다. 과장된 구성과 강렬한 색채로 현대인의 갈증을 시원하게 시각적으로 해소해주는 것이 팝아트의 인기 비결이라고 볼 수 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