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블루칩' 작가 급성장 눈에 띄네

7월 중순 K옥션이 ‘하우스세일(입찰방식경매)’에 이은 경매와 31일, 오픈옥션의 ‘골든아이 경매’가 매듭을 지으면서 국내 미술시장이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올 상반기 미술시장은 표면상 활기를 띠었지만 내부적으로는 큰 변화 양태를 보였다.

우선 지난 2년여 간 지속되온 호황세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미술시장에 냉기마저 감돌았다. 또한 종래 블루칩 작가들의 위세가 주춤한 반면 20~40대 ‘미래의 블루칩 작가’들이 국내외에서 각광 받는 세대별 양극화현상이 두드러졌다. 메이저ㆍ준 메이저급 경매회사들이 크고 작은 경매와 아트페어에 적극 나선 것도 새로운 현상이다.

빈센트 반 고흐(위쪽) 박수근<나무와 두 여인>(아래 왼쪽), 이중섭<새와 애들>(아래 오른쪽)
빈센트 반 고흐(위쪽), 박수근<나무와 두 여인>(아래 왼쪽), 이중섭<새와 애들>(아래 오른쪽)

이는 한국미술정보연구소(이사장 민경갑)와 미술시장연구소(소장 서진수), 월간아트프라이스가 올해 미술품 경매회사에 출품된 미술품을 각각 분석한 ‘상반기 경매시장 보고서’에서 확인된다.

미술시장의 흐름과 관련, 7월 초 ‘2008 미술시장 동향과 과제’라는 보고서를 내놓은 서진수 미술연구소 소장(강남대 교수)은 “외부에 공개된 2008 상반기 전체수치는 그다지 나쁘지 않으나 체감경기는 더 나쁜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올 상반기 중 서울옥션과 K옥션, D옥션, 오픈옥션, 아이옥션 등 9개 경매업체가 총 13회 실시한 경매에서는 출품작 2, 524점 중 1521점이 팔려 낙찰률 60%를 기록했다. 이는 서울옥션의 작년 상반기 평균 낙찰률 72%, K옥션 83%를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미술시장이 위축된 배경에 대해 최병식 경희대 교수(미술평론가)는 “작년 11월을 기점으로 미술시장 호황세가 꺽인 것은 단기투자자들이 빠져나가고 불경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또한 미술시장의 거품이 빠지고 매물이 많은 상황에서 컬렉터의 안목이 높아져 작품 구입에 신중을 기한 것도 정체의 배경이 됐다고 덧붙였다.

미술시장이 양극화하는 현상은 올 상반기에 가장 두드러졌다. 20대 후반부터 40대 초반까지의 젊은 작가들, 이른바 ‘뉴 블루칩’ 작가들이 급부상한 반면, 40대 후반부터 70대까지의 중견·원로 작가들은 시장에서 크게 외면을 당했다.

상반기 경매결과 반 고흐의 가 29억5,000만원의 낙찰가로 최고가를 기록한 가운데 국내 작가 중에는 박수근의 <나무와 여인>, 이중섭의 <새와 애들>이 각각 최고가인 15억원의 낙찰가를 기록했다. 이어 이우환, 김환기, 천경자, 이대원 등 정통 블루칩 작가들의 위세가 여전했지만 파괴력은 예전같지 않았다. 이 같은 양극화 현상은 지난 6월 열린 제3회 서울오픈아트페어(SOAF)에서도 확인됐다. 그동안 ‘블루칩 작가’로 군림해왔던 이대원, 김종학, 오치균, 김형근, 사석원 등은 작년에 비해 가격이 턱없이 내려갔고 유찰률도 작년보다 높았다. 반면 최영걸, 홍경택, 도성욱, 박성민, 이호련, 이정웅, 윤종석, 이우림 등 미래의 젊은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은 없어서 못 파는 지경이었다.

이에 앞서 지난 5월 서울옥션이 20대~40대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대상으로 실시한 ‘커팅 엣지’ 경매에서는 윤종석, 이호련, 이이남, 임만혁, 홍지연, 박성민 등 59명의 출품작 59점 가운데 56점이 팔려 낙찰률이 무려 95%에 육박했다. 이날 윤종석의 ‘흐르는 가벼움-별·이소룡’이 추정가보다 2배 높은 3, 300만원의 최고가에 팔린 것을 비롯,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대부분 추정가의 2배 안팎에서 낙찰됐다.

이들 ‘뉴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은 런던, 뉴욕, 홍콩 등의 경매에서도 고가에 팔려 그 반향이 국내 미술시장에도 미쳐 시장의 양극화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상자기사 참조)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역량있는 젊은 작가들이 국내 미술의 위상을 높이고 미술의 지평을 넓힌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우리 미술의 다양성을 왜곡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심지어 “미술시장에 꽃집과 과일가게만 보인다”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다. 김상철 미술평론가는 “특정한 경향의 작품들이 득세하다보니 천편일률적인 작품들이 난무하고 있다”며 “젊은 작가들과 학생들까지 그러한 경향을 추종하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60년대를 전후 해 구상, 비구상, 전위, 팝아트, 행위예술 등 다양한 양식이 존재했듯 미술의 다양성이 공존하는 풍토가 조성되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병식 교수도 “미술시장이 ‘상업적 전략’에 치우친 경향이 있다”며 “자칫 미술시장을 왜곡하고 ‘불안한 요소’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부터 늘기 시작한 경매회사들이 크고 작은 경매와 아트페어에 적극 나선 것도 올 상반기 미술시장의 주목할만한 현상이다. 호황기였던 2007년부터 속속 늘어난 경매회사는 올 상반기 메이저인 서울옥션, K옥션 등을 포함해 13개로 늘었다.

미술시장이 예전과 달리 침체, 메이저인 서울옥션과 K옥션의 상반기 매출액이 작년에 비해 줄어들었음에도 전체 미술시장 판매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6% 늘어난 것은 준메이저 경매회사들의 참여 때문이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문을 연 D옥션, A옥션, 오픈옥션, 아이옥션, 매일옥션 등이 그들이다. 반면 경매 컨셉트가 메이저에 비해 진부하고 전시 기획의 수준이 미흡한 점은 극복해야 할 과제다.

그밖에 상반기 미술시장에선 중국 미술의 강세가 여전한 가운데 일본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이 확산됐다. 특히 뉴욕, 홍콩 크리스티에서 작품이 높은 가격게 팔리면서 ‘붐’이 일기도 했다. 올 초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158억원의 낙찰가를 기록한 무라카미 다카시를 비롯, 아야코 록키쿠 등이 주요 관심대상이 됐다.

사진의 발전도 주목된다. 전국의 사진 전시관을 돌아본 최병식 교수는 “상반기 미술시장이 조정 국면을 보이는 가운데서도 사진은 약진을 했다”며 “후반기 시장에서도 사진에 대한 관심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9월 초 서울옥션과 K옥션의 메이저 경매를 비롯한 가을 경매들, 그리고 <2008 KIAF>가 열리면서 하반기 미술시장이 달아오를 전망이다.

서진수 미술시장연구소 소장은 “하반기는 하강세가 완화되고 관망세가 이어지고 있어 정치경제 상황이 지금보다 악화되지만 않는다면 시장이 크게 비관적이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병식 교수는 “하반기는 조정 과정을 거쳐 경쟁력 있는 작가 위주로 시장이 회복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반기 미술시장에 좀 더 기대를 두고 있는 게 미술계의 기류이다.

■ 한국 ‘뉴 블루칩’ 작가 국제무대서도 통해

고영훈, 김동유, 홍경택, 도성욱, 안성하, 전광영…. 최근 미술시장의 ‘뉴 블루칩’으로 각광받는 작가들이다. 모두 해외에서 높은 인지도를 확보해 국내 미술시장에서 가장 선호하는 작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요즘 국내 컬렉터들이 작품의 가치를 판단하는 데 우선하는 기준 중 하나가 해외 인지도로 그만큼 국내 미술시장에서 해외 시장의 영향력이 갈수록 높아져 가는 추세다.

고영훈과 김동유는 일찍부터 세계 미술시장에서 주목을 받았다. 고영훈의 작품은 2005년 2월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고가에 낙찰된 것을 비롯, 1987년 작 ‘스톤북’이 2007년 3월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한국 작품 중 최고가를 기록했다. 김동유는 2006년 5월 홍콩 크리스티에 작품 ‘마릴린먼로vs‘마오쩌등’이 추정가의 25배가 넘는 258만4,000달러(약 3억2,300만원)로 한국작품 중 최고가에 낙찰됐고 지금도 해외에서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지난 5월 24~25일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한국작가들 37명의 작품 55점이 출품돼 52점의 작품이 낙찰되는 성과를 거뒀다. 이중 홍경택의 ‘서재 Ⅱ’이 한국 작품 중 최고가인 6 강형구 ‘워홀 테스트’ 5억원, 김동유 ‘장미와 폭발’ 4억원, 전광영 ‘집합’ 3억원, 최소영 ‘도시’는 2억5,000만원에 팔렸다.

이들 작가들은 해외 인지도에 힘입어 국내 미술시장에서도 주가를 높이고 있다. 지난 6월 18일 열렸던 서울옥션의 111회 경매에서 유독 이들의 작품만이 당초 추정가를 크게 웃도는 가격에 낙찰됐다. 2,500만원에서 3,000만원의 추정가에 출품됐던 홍경택의 서재는 7,100만원에 낙찰됐고, 고영훈의 작품은 추정가가 1억 2,000만~1억 5,000만원이었으나 1억6,500만원에 팔렸다. 70,000,000~90,000,000만원의 추정가에 출품됐던 전광영의 작품도 1억 1,000만원에 낙찰됐다. 김동유의 작품 ‘마를린’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에 문제도 제기된다. 무엇보다 해외 인지도가 형성되는 과정이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블루칩 작가들이 대부분 메이저 화랑에 소속돼 있다보니 화랑의 ‘밀어주기’ 의혹도 뒤따른다.

또한 해외 시장에 대한 의존이 너무 일방적이라는 것도 문제다. 최윤석 서울옥션 기획마케팅팀 과장은 “글로벌 마켓에서 국내 작가가 확실한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그 가치를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잘 아는 국내 컬렉터가 주도적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