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스가 쏜 금화살, 문신 예술 신화 창조육체 너머 자연과 생명에 대한 헌사… 예술 세계 내재적 생명성의 원천

사랑의 신 에로스가 쏜 금화살은 문신을 비켜가지 않았다.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40여점의 드로잉 작품은 문신 예술의 또 다른 성과를 보여준다. 성적 감흥을 일으키는 유기적 형태의 선묘들은 그동안 ‘시메트리 추상조각’으로 대변되던 작가의 예술론에 대한 하나의 반동으로 다가온다. 지금껏 문신의 삶과 예술을 조망하는 글 어디에도 성적 도상작업을 다룬 내용은 물론이고 성적 취향에 대한 언급조차 찾아 볼 수 없었다.

작가 자신도 평소에 자신의 작품이 특정한 대상을 염두에 두고 제작된 것이 아니라 조각적 형태 그 자체로서 완고한 독립성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해 왔다. 비단 완성된 작품의 형상이 보는 이에게 개미나 박쥐와 같은 구체적 대상을 연상케 할 지라도 그의 작업의 일면이 남근과 같은 신체의 부분에서 온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 것은 이번 전시회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에로스 드로잉 연작을 통해서다.

문신이 에로스 드로잉을 제작했다는 사실은 결코 불경스런 일이 아니다. 심리학자 프로이트가 규정했듯이 에로스란 성본능이나 자기보존 본능을 포함한 생의 본능으로서 예술가들의 창조적 영감을 자극하는 원천으로 다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일찍이 플라톤도 에로스란 인간 자신이 불완전자임을 자각하고 완전을 향하여 끊임없이 나아가려는 인간의 정신임을 설파했다. 동서의 미술사를 장식한 거장들의 에로스 드로잉은 인간의 근원적 결핍과 불완전성을 극복하려는 본능을 충실히 따르고 있었음을 대변한다.

다빈치와 뒤샹이 그렇고 피카소가 그랬다. 문신은 피카소를 존경했고 그의 드로잉 작업 몇몇은 피카소의 ‘화가와 모델’ 연작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피카소가 말년에 그린 에로스 드로잉 연작이 문신에게 영향을 끼쳤을 지라도 제작동기와 표현방식은 완연하게 달리 나타나고 있다.

가족의 증언에 따르면 에로스 드로잉을 본격적으로 제작했던 1973년은 문신에게 아주 특별한 해였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그는 대형 석고조각 작업을 하던 도중 사다리에서 떨어져 척추를 다치면서 하반신 마비증세가 온 것이다. 후에 극적으로 회복되었지만 성기능 불능 판정은 50세의 문신으로 하여금 성본능이나 자기보존 본능을 포함한 생의 본능에 주목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고향을 떠나 예술의 노예로 살던 문신에게 기댈 곳이라곤 작품 밖에 없었다. 4개월간의 입원생활 동안 그는 드로잉과 채화를 제작했고 이번에 소개되는 드로잉들은 대부분 당시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자연인으로서 문신의 성적 취향은 점잖았고 차라리 무관심에 가까운 편이었다고 한다. 반면 작가의 열정은 예술 창조에 집약되어 있었다. 그는 작품제작에 온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고 죽는 날까지 노예처럼 작업했다. 소설가 이병주가 말한 것처럼 ‘예술에의 순교를 각오해 버린’ 그의 의지는 오직 창작에 있었고 예술만이 그의 영원한 동반자였다. 이런 그에 있어 에로스의 의미는 육체적 본능을 넘어 정신적 본능에 가까운 것이었고 생의 불완전성을 극복하기 위해 싸우는 투사의 의지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문신은 미완의 백지라는 대상에서 에로스의 감흥을 얻었고 그러한 감흥은 다시 드로잉을 포함한 작품으로 되돌려 표현되었다. 이렇게 완성된 문신의 에로스 드로잉은 그의 백색 석고와 스테인레스 스틸 조각으로 합체되면서 볼륨에 섬세한 긴장과 장엄한 생명감을 불어넣을 수 있었고 드디어 문신예술의 신화가 탄생된 것이다.

문신의 작품에 나타나는 특징은 일반적으로 ‘조형적 견고성’과 ‘내재적 생명성’으로 규정되어 왔다. 시메트리 구조의 탄탄한 형상이 조형적 견고성을 바쳐주는 요인이라면 내적 생명성은 그 철조물의 표층 아래를 흐르는 혈관의 박동을 감지하는 여흥과도 같은 것이다. 문신의 작품이 유기적 자연과 연계될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시메트리에 근거한 형태의 조형적 견고성과 그 형상의 배면에 숨쉬는 생명현상과 연결시키는 혈맥의 관계미학에서 발견된다.

드로잉 24x32cm, 중국잉크, 종이, 1979 / 드로잉 21x25cm, 중국잉크, 종이, 1968 / 드로잉 24x31cm, 중국잉크, 종이, 1973 / 드로잉 24x32cm, 중국잉크, 종이, 1973 (왼쪽부터)

문신의 조각에 유기적 감흥을 일으키는 생명현상의 알레고리를 읽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감추어진 조형적 실체의 베일을 벗기는 요인이 급기야 발견되었으니 이른바 에로스 드로잉인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문신의 에로스 드로잉은 작가의 조각세계에 유기적 에너지를 공급하는 하나의 원천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신 자신은 드로잉에 쓰이는 선을 가리켜 덩어리를 감싸고 있는 실핏줄로 보았다. 육체에 생명에너지를 공급하는 모세혈관의 구조를 자신의 선묘에 빗대어 한 말이다. 지금은 문신예술의 신화적 명제가 되어버린 ‘모세혈관의 합창’이란 드로잉 또는 조각 작품을 보면서 솟구치는 감흥의 울림을 뜻한다. 문신의 드로잉은 시골의 마을들을 연결하는 도로망처럼 막힘이 없다.

심장을 나온 혈액이 온 몸 구석구석을 맴돌아 다시 귀환하듯 그의 형태의 내면에 자리한 모세혈관들은 볼륨의 전체를 소통하면서 생명의 리듬을 일깨운다. 그의 볼륨이 마치 북의 표면과 같은 진동을 일으키는 것은 그 안에 숨쉬는 모세혈관의 리듬을 읽어낼 때 가능한 감정이며 그러한 감정은 그의 에로스 드로잉의 리듬구조를 접하는 것에서부터 습득되는 것이다.

문신의 조각이 자연을 연상케 하는 볼륨이라면 드로잉은 그 볼륨에 혈맥을 뛰게 만들었다. 에로스 드로잉에는 실재와 환상이 교묘하게 오버랩 되어 있다. 거기에는 교합하는 남녀의 이미지가 존재하며 동시에 그물처럼 짜여진 혈망의 형태와 구조가 스스로의 존재성을 드러낸다. 요컨대 숨겨져 있던 생명이 선묘적 도상으로 나타난 것이며 작가는 이를 ‘표현한 것이 아니라 표현된 것’이라 믿고 있다.

이러한 형식의 논리는 동양사상에서 발견되는 색즉시공의 철학과도 상통하는 것이다. 색과 공이 다르지 않고 색이 곧 공이 되는 논리체계가 문신의 에로스 드로잉에 흐르는 형식 논법이라 할 수 있다. 에로스 드로잉은 육체의 구조이자 순수조형으로 짜여진 정신적 구조로 읽혀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결국 문신의 작품을 둘러싸고 파생되는 에로스는 육체의 교합인 섹스에서 오는 전율의 차원을 넘어 작품의 창작의 과정에서 빗어지는 자기 충동적 열정이라 할 것이다. 사랑의 신 에로스가 쏜 금화살에 의해 자극된 자기본능은 아폴로와 다프네의 관계처럼 육체적으로 이루어 질 수 없는 고독한 운명을 지니고 있었다.

문신은 지극한 에고이스트였고 그의 에고는 예술에 종속되어 있었으며 그 예술과의 결혼관계를 평생 동안 유지했다. 사랑의 신 에로스가 쏜 금화살은 문신의 예술을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켰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연과 생명에 대한 헌사다.

■ ‘미공개 에로스 드로잉전’은 서울 숙명여자대학교 문신미술관 전관(02-710-9280)에서 9월 17일까지, 경남 마산시립문신미술관 전관(055-247-2100)에서는 10. 10~12. 31일 전시된다


김영호 중앙대교수, 미술평론가 objectkim@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