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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CEO 출신 문화예술기관장 시대
'경영 9단' 문화예술에 돈줄 수혈한다
검증된 노하우로 경영 시스템 취약한 문화예술 기관에 새 바람
일각선 기업적 효율성 중시한 인사로 문화적 가치 훼손 우려도





김윤현 기자 unyon@hk.co.kr  

예술의전당 신년음악회




지난 7월22일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는 특별한 강연회가 열렸다. 연세대 글로벌 MBA(경영학석사) 과정 여름학기 강좌의 하나로 마련된 이날 강연회는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의 성공사례 연구가 주제였다. MBA 강좌에 예술단체 사례가 등장한 것은 매우 이채로운 경우다.

더욱 눈길을 끈 것은 특별 강사로 초청된 인물. 그는 다름아닌 이팔성 우리금융그룹 회장이었다. 이 회장은 이날 우리금융 회장 자격이 아니라 전 서울시향 대표이사 자격으로 강단에 섰다. 38년간 금융인의 길만을 걸었던 그는 2005년 6월 서울시향 대표로 깜짝 발탁돼 얼마 전까지 경영을 진두지휘했다.

이 회장은 서울시향 대표로 취임한 직후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 씨를 예술감독으로 영입했다. 경영과 예술의 협력적 쌍두마차 체제 구축을 노린 것. 그의 의도는 적중했다. 수십 년간 금융계에서 쌓아온 자신의 꼼꼼한 경영 능력과 정 감독의 수준 높은 예술적 리더십이 조화를 이루면서 서울시향은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났다.

그의 취임 전과 후의 실적을 비교해보면 서울시향의 드라마틱한 변화가 금세 드러난다. 지난해 서울시향은 2004년에 비해 연주회 횟수는 2배로 늘어났고, 관람객 수는 무려 8배나 증가했다. 교향악단의 인기를 가늠하는 지표로 통하는 유료관객 비중도 2004년 34%에서 지난해에는 64%로 거의 갑절이나 늘었다. 당연히 경영성과가 좋아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총 수입은 2004년에 비해 무려 23배나 급증한 33억 원에 달했다. 이런 눈부신 실적을 바탕으로 서울시향은 지난 3월 예술의전당이 조사한 교향악단 평가에서 전국 20개 오케스트라 중 1위에 오르는 기쁨을 누렸다.

기업 경영인이 문화예술 기관장을 맡아 성과를 낳은 또 다른 사례로 코오롱그룹 부회장 출신의 김주성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을 들 수 있다. 김 실장은 코오롱에서 35년간 일하면서 회장 비서실장, 구조조정본부장, 부회장 등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그의 특기와 전문성을 압축하는 별칭은 ‘구조조정 전문가’다. 조직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데는 그만큼 일가견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그는 2005년 12월 국내의 대표적 문화예술 기관인 세종문화회관 사장에 전격 발탁됐다. 그 무렵 세종문화회관은 예술단 소속 노동조합원들이 회관 앞 계단에서 연일 천막농성을 벌일 만큼 노사갈등이 심했고, 만성적인 적자 경영으로 많은 질타를 받고 있었다.

이때 ‘해결사’로 투입된 김 실장은 특유의 실력을 발휘해 세종문화회관의 문제점들을 하나씩 개선해 나갔다. 우선 대화와 설득으로 당면 최대 현안이었던 노사갈등을 씻어냈고, 이를 바탕으로 낡은 관행과 시스템을 혁신했다.

그의 추진력 덕에 세종문화회관의 면모는 크게 일신됐다. 회의장이나 행사장으로 쓰이던 컨벤션센터는 고급 실내악 전용홀로 바뀌었고, 440석 규모의 소극장은 뮤지컬, 연극, 오페라 전문 공연장으로 탈바꿈했다. 또한 예술단원 평가제 도입 등으로 조직의 경쟁력도 강화됐다.

김 실장의 경영혁신은 실질적인 성과 향상으로 이어졌다. 재정 자립도가 2005년 23.8%에서 2007년 30%대로 올라선 게 단적인 예다. 결국 취임 당시 팽배했던 문화예술계 안팎의 우려도 자연스레 사그라졌다.

이 회장, 김 실장이 새로운 전범을 만든 덕분일까. 최근 문화예술 기관장에 경영인 출신 인사가 기용되는 경우가 부쩍 많아지고 있다. 아직 수적으로 미미하기는 하지만 예술가나 문화행정 관료가 독점했던 과거 관행에 비춰 분명 새로운 추세로 떠오르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지난 6, 7월 국내 양대 문화예술기관으로 꼽히는 세종문화회관과 예술의전당 수장 자리에 잇달아 경영인 출신 인사가 선임된 점은 주목할 만하다.

먼저 테이프를 끊은 것은 이청승 세종문화회관 사장. 이 사장은 1986년 화장품 제조업체 한국폴라를 창업해 2005년까지 운영한 오너 경영인 출신이다. 뿐만 아니라 취임 직전에는 잡지출판사 베세토 회장을 맡고 있었다. 이런 경력으로만 보면 전형적인 경영인이지만 사실 그의 뿌리는 예술에 닿아 있다.

이 사장은 홍익대 미대를 나왔다. 그 동안 ‘동양화가’ 타이틀로 5차례의 개인전도 열었다. 1995년에는 중국 베이징에 예술학교인 현우예술대학을 세워 이사장을 맡을 만큼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열정이 뜨겁다. 그는 이미 2002년 세종문화회관 사장 공모에 지원해 최종 심사 단계까지 간 적도 있다. 당시에는 아쉽게 탈락했지만 와신상담 끝에 이번에 소원을 이룬 셈이다.

이팔성 우리금융그룹 회장, 김주성 국정원 기조실장, 이청승 세종문화회관 사장, 신홍순 예술의전당 사장(왼쪽부터 차례대로)


신홍순 예술의전당 사장도 문화예술계 안팎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신 사장은 LG그룹에서 30년 이상 근무하며 사장까지 지낸 정통 LG맨 출신이다. 그는 LG패션 사장으로 재임하던 1990년대 중반 직접 TV광고에 출연하기도 했을 만큼 ‘멋쟁이 경영인’으로 정평이 났던 인물이다.

평소 문화예술에 대한 사랑도 깊어 경영인 시절 문화예술 후원활동을 자주 펼쳤다. 경영일선에서 은퇴한 후로는 재즈밴드를 만들고 재즈콘서트를 기획하는 등 공연기획 전문가로서도 능력을 발휘했다.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 겸임교수를 역임하는 등 강단 경력도 적지 않다. 그의 부인은 서울대 미대 출신의 서양화가 남혜숙 씨다.

경영인 출신 인사들이 문화예술 기관장으로 각광받는 것은 이유가 있다. 바로 민간기업에서 갈고 닦은 경영 능력이다. 문화예술 분야에만 종사해온 사람들은 대체로 수익창출이나 마케팅 개념이 약하다. 치열한 경쟁도 익숙치 않다. 그런 그들에게 경영인 출신 기관장으로 하여금 ‘새로운 피’를 돌게 하자는 취지인 셈이다. 더욱이 경영 마인드에 예술적 안목까지 겸비했다면 금상첨화인 셈이다.

이와 관련, 한 예술경영 전문가는 “문화예술계 인사들 중에는 아직 예술적 순수성만을 고집하며 경영 측면에는 무지를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문화예술 분야도 경쟁이 치열해지는 시대적 추세이기 때문에 경영 노하우를 시급히 갖춰야만 살아 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영인 출신 인사들이 문화예술 기관을 주도하는 데 대한 우려 섞인 시각도 존재한다. 문화예술과 기업경영은 각각의 룰과 전문성을 갖고 있는 터에, 경영 우월적 관점에서 문화예술을 재단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한 수익성 중시의 기업경영 스타일에 따른 문화의 다양성 및 공익성 저하도 걱정되는 대목이다.

문화연대 이원재 사무처장은 “최근 문화예술 기관장 인사는 문화 전문성에 입각한 인사가 아니라 기업적 효율성만을 따진 후진적 인사”라며 “실적주의에 빠지기 쉬운 기업인이 문화예술을 관장하게 되면 공공성이나 다양성 등 문화적 가치가 무시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임명권자 입맛에 맞는 ‘낙하산식 인사’의 문제점을 꼬집기도 한다. 능력이나 자질과는 별개로 불필요한 논란을 자초한다는 것이다. 실제 이팔성 회장이나 김주성 실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직접 해당 기관장으로 발탁한 인물들이다. 범 MB맨인 셈이다.

또한 신홍순 사장은 임명권자인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10년 이상 친분을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청승 사장의 경우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소속기관인 서울시와 임명권자인 오세훈 시장을 지나치게 의식한 듯한 경영 청사진을 밝혀 논란을 빚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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