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서 김창환과 13년만에 새 앨범레게·하우스·솔등다양한 장르 담아

“그루브가 뜻이 뭐야?” 대뜸 날라오는 질문에 “‘흥’ 정도가 아닐까요”라고 소심하게 답했다. 가만히 생각에 잠기는 이 남자는 “이번에는 딴 거 없어. 그냥 그루브야” 하며 혼자 결론을 지어버린다.

‘까만콩’ 김건모와의 인터뷰는 그렇게 직설적이고 즉흥적이었다. 곁에서 몰래 사진을 찍는 팬이라도 눈에 띄면 인터뷰를 잠시 멈추고 먼저 다가가서 익살스러운 포즈로 사진을 찍혀(?)줬다. “음악 새로 나왔는데 듣고 있지?”하며 팬을 관리 하는 모습에서 연륜이 제법 느껴진다.

그에게서 한결 편안해짐이 느껴지는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다. 자신을 톱 스타의 반열에 올려준 프로듀서 김창환과 13년 만에 재결합한 데에서 오는 여유가 묻어나왔기 때문이다. 편안한 옆집 삼촌 같은 모습으로 흥겨운 그루브를 타며 돌아온 김건모를 만났다.

김건모 그리고 김창환. 기자가 지난 4월 두 사람이 13년 만에 재결합한다고 처음으로 보도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믿을 수 없다는 게 대부분이었다. 혹자는 ‘오보’가 아니냐고 되물을 정도였다. 당대의 프로듀서가 혼을 받쳐서 키워낸 최고의 스타. 둘은 <잘못된 만남><스피드>로 최고의 스타와 프로듀서로 위세를 떨쳤다.

3집 <잘못된 만남>은 28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앞으로도 깨지기 힘든 단일앨범최다판매 기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정점의 순간에서 등을 돌려 버렸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두 사람은 이후 단 한번도 마주한 적이 없을 정도로 감정의 골은 깊었지만 그 깊이만큼 서로를 그리워했을 지도 모른다.

먼저 손을 내민 것은 김건모였다. 지난해 11월 ‘기러기 아빠’가 된 김창환이 포장마차에서 구준엽 채연과 술잔을 기울인다는 얘기를 듣고 김건모가 의도적(?)으로 합석해 잔을 부딪혔다.

바로 어제 헤어졌던 이들같이 ‘미안하다’‘섭섭했다’‘서운했다’‘고마웠다’ 같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지만 서로 이미 마음은 통했다. 그리고 김건모는 방배동 서래마을로 이사를 했다. 김창환의 집과는 걸어서 5분 거리다. 이들은 꾸준하게 교감을 나누다가 작업을 시작한 지 2개월 만에 ‘뚝딱’ 그간의 맺힌 한을 풀듯이 작업을 끝내버렸다.

“서로 너무 잘 아니까. 그냥 툭툭 하다 보면 다 끝나 있는 거야. 이제 아무 걱정 안해. 형이 나랑 가장 잘 맞는 음악을 아는 만큼 믿고 그냥 가는 거지. 나 평생 형하고만 할 거야. 재킷 사진 봤어? 맞춤옷 같지? 이게 딱 우리야. 멋있지 않아?”

우선 이들은 앨범 앞에 12집이라는 거창한 숫자를 거둬냈다. 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K.C.하모니’는 프로듀서 김창환의 애칭이다. 12라는 거창한 숫자 대신 두 사람의 공동작품이라는 의미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리고 '그루브'(흥)를 강조한 덕분에 <솔 그루브(Soul Groove)>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다.

김건모는 “형하고 작업한 게 3집까지인데, 4집이라고 할 수도 없잖아. 그렇다고 12라는 숫자를 붙이기도 고민돼서 다 빼버렸지. 앞으로도 앨범 낼 때마다 컨셉트을 붙일 거야. 누구랑 같이 음악을 하는 게 중요하지. 앨범 앞에 붙은 숫자는 아무 의미가 없더라고”라고 말했다.

두 사람이 만들어낸 이번 앨범은 긴 세월 동안 익힌 와인을 보는 듯하다. 김건모는 악천후와 같은 시련을 견뎌내며 농익은 목소리를 뿜어내는 포도나무와 같은 존재다. 김창환은 포도나무가 맺은 열매를 와인으로 숙성시키는 중책을 맡았다.

두 사람의 연륜이 빚어내는 이번 음악은 비춰보는 빛에 따라 색이 달리 보이고 첫 맛과 끝 맛이 차이가 있는 와인에 견줄만하다.

이번 앨범은 ‘그루브’라는 테마에 맞춰 레게(사랑해) 하우스(어설픈 변명) 솔(키스) 보사노바(하루) 블루스(너를 위해서) 펑키(그러지마) 발라드(아파) 일렉트로닉(잘 될꺼야) 등 현란할 정도로 다양한 장르를 김건모의 음색으로 뽑아냈다. “아무리 들어도 그때마다 깊고 다른 맛을 느끼면 좋겠어. 식상한 것이 난 제일 싫거든”이라는 김건모의 설명이 이번 앨범과 제법 어울린다.

김건모는 이제 앞만 바라보고 걷는다고 강조했다. 앨범을 내기만 하면 수백만장 씩 팔려나가던 옛날 얘기를 하기에는 앞으로 해야 할 음악이 많이 남아있다는 얘기다. 김건모는 이제 30대가 된 자신의 주된 팬 층이 주었던 사랑만큼 음악으로 되돌려주고 싶단다.

“난 옛날 얘기 잘 안해. ‘제네시스’가 나왔는데 아직도 ‘소나타’ 얘기하는 사람 문제 있는 거 아냐?(웃음) 그래도 내 팬들이 요즘 반갑다는 얘기 해줄 때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 예전 그 느낌 그대로라는 얘기를 많이 해주더라고. 가수들이 많이 나오지만 30대 팬들이 들을 노래가 딱히 있는 건 아닌 것 같아. 내 식대로 내 분위기대로 그렇게 계속 노래하고 싶어.”


김성한 기자 wing@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