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풀이춤 등 원형지키며 변화 모색… 다양한 공연 프로그램 확대도

다른 장르예술과 마찬가지로 한국 전통춤도 다른 춤과의 역관계 속에서 전개되었다.

개화와 근대 초기에 서양춤이 밀려들어왔을 때 전통춤은 뒷전에 밀렸었고, 1960년대에 일어난 한국학의 관심은 간신히 명맥만 유지했던 전통공연예술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이어서 무형문화재로 전통춤이 지정되기 시작하고, 창작춤의 부상과 함께 신무용이 급격히 퇴조하면서, 전통춤은 자기 영역을 되찾게 되었다.

그리고 1980년대 한국 춤계의 창작춤 중심의 르네상스가 끝나자, 1990년대에는 전통춤 공연이 증가하였다. 한국 춤계는 춤 상호간의 세력 관계에 따라 서로 영향을 받으며 흘러왔고, 그 와중에 한국 전통춤이 있었다.

현재 전통춤 공연은 매우 왕성하다. 창작춤 공연이나 외국무용단의 내한공연으로 매스컴이 떠들썩 하다해도, 일 년 내내 끊임없이 이어지고 꾸준히 관객이 드는 춤판은 전통춤 공연이다. 상설공연도 많고 기획사의 기획공연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춤계에 창작춤의 주요한 이슈가 떠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관객들은 전통춤 무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근래 전통춤 공연은 매우 다채로워지고 있다. 우선 전통춤을 재구성하여 무대에 올리며 변신을 하는 중이다. 춤이란 관객과 무대를 전제로 추는 것이므로, 전통춤 또한 현재 대중의 정서에 맞추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동안 무대화 과정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루한 대목은 줄이고, 독무를 군무로 재구성하고, 의상과 소품도 시대적 감각에 맞추었다. 예를 들어 근래에 원형과 변화(재구성)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춤으로 <살풀이춤>을 들 수 있다. 살을 푼다는 의미보다 여성미를 한껏 드러내는 교방춤의 성격이 강화되는 경향이다.

긴 수건이 짧은 수건이 되기도 하고, 소품으로 부채를 사용하기도 한다. 치마는 더 부풀어지며, 독무가 군무로 재안무되면서 좀 더 화사하게 연출되고 있다. 이는 현재 대중의 감수성을 반영한 것일 것이다.

그리고 전통춤의 공연 프로그램들이 확대되고 있다. 1980년대까지 궁중무 무대는 인원과 비용의 부담, 인식의 부족으로 쉽게 올려지지 않았었다. 1990년대 말부터 궁중무 공연이 대중화되며(국립국악원 무용단의 공연 성과이다.) 궁중무의 관객이 확대되었고, 궁중무가 민속춤과 함께 한 무대에서 추어지게 되었다.

또한 문화재 지정 종목 외에 전통춤의 프로그램들이 다양해졌다. <살풀이춤>, <승무>, <태평무> 등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종목들이 전통춤 공연의 주를 이루었으나,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종목들의 공연이 늘어나고 있다. 북춤, 소고춤, 진쇠춤, 장고춤 등의 농악 관련 춤도 빠지지 않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신무용(1930년대에 최승희 조택원에 의해 전통춤을 모던댄스의 기법으로 양식화한 춤을 말한다.) 작품들이 전통춤 무대에 오르고 있다는 점도 짚어볼 일이다. 전통도 아니고 창작도 아닌 신무용의 애매한 현재적 위상 때문이겠지만, 신무용의 소재가 전통춤의 소재와 유사하고, 1930년대 이래 양식화되어 많은 세월을 지낸 신무용이 나름대로의 전통성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2000년을 넘어 2010년을 바라보는 한국 전통춤은 중요한 전환의 시점에 있다고 하겠다. 첫째, 전통 예인들이 살았던 시대의 마지막 전통춤꾼들이 거의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궁중무용 '선유락'

<동래야류>의 인간문화재 문장원선생(1916년 생)은 전통시대 이래 부산 동래의 한량들이 놀았던 모습을 보며 춤을 배웠고, <승무>와 <살풀이>의 인간문화재 이매방선생(1927년 생)도 전통시대에 활동했던 예인들, 기생과 악인들에게 춤을 배웠다.

이러한 분들이 세상을 떠나면 전통시대 예인들의 춤 이야기를 들려주실 분들이 없게 되는 것이다. 이분들은 전통춤의 바로미터이며 지킴이였다. 원로 예인들이 돌아가셔도 전통춤의 원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순리대로 세대는 바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국 전통춤의 전통과 원형을 세우고 지킬 준비를 해야 한다.

둘째, 전통춤의 사회적 기반이 사라진지 이미 오래라, 전통춤의 감수성, 즉 미적 가치도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춤 하면 떠오르는 한(恨), 비애(悲哀)의 정서만이 우리 춤의 고유한 정서가 아님은 이미 알고 있다.

시대의 명무(名舞)라면, 명무가 아니더라도 진정한 춤꾼이라면 자기 인생의 희노애락을 담고, 관객들의 心情까지 춤에 담아 춤꾼 자신과 관객들을 해원(解寃)시키는 춤을 추어야 한다. 그렇다면 관객들은 전통춤을 통해 어떤 미의식을 원하는지, 춤꾼은 전통춤을 통해 어떤 미의식을 보여주어야 하는지 깊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한국 전통춤이 중요한 전환의 시점에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전통춤의 새로운 세대가 새롭게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원로춤꾼들이 돌아가셨고, 그 자리를 중견춤꾼들이 대신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단순한 차세대가 아니다. 40대 후반부터 50대의 중견춤꾼들은 전통춤을 배웠으며 동시에 창작춤을 겪었던 세대이다. 창작춤의 춤꾼으로 안무자로 활동했던 경험들이 전통춤을 바라보는 시각도 다양하게 만들었으며, 전통춤의 무대화 작업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인생의 중년을 넘기며 자신 만의 색깔로 자기 춤을 이뤄보고자 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 전통춤은 현재 변하고 있다. 앞으로의 한국 전통춤 또한 변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전통춤의 근본적인 원리나 기법을 지켜내며, 새로운 전통춤을 만들어갈 것이다. 그 팔색조처럼 펼쳐질 전통춤의 다양한 춤판 속에서 어떤 전통춤이, 누구의 전통춤이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관객들은 전통춤의 원리와 기법을 지켜내며, 시대적 감수성을 놓치지 않는 진정한 춤꾼을 가려낼 것이기 때문이다.


김영희 우리춤연구가 sogochum@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