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첫 소개 비약적 발전… 예술적 독창성·관객과의 소통은 풀어야 할 숙제

20세기 전환기에 미주와 유럽의 몇몇 선구자들에 의해 태동했던 현대무용은 한 세기 남짓한 기간 동안 경이로운 발전을 거듭해왔다.

현대무용은 현재, 전세계적으로 주요한 극장예술의 한 분야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20년대 처음 소개되고 1960년대 보다 전문화된 도입단계를 거친 이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비약적인 진보를 거듭함으로써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우리나라 현대무용은 많은 잠재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극복해야할 과제 역시 지니고 있다.

■ 한국 현대무용의 발자취


우리나라에 현대무용이 소개된 시점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의 현대무용가 이시이 바쿠가 1926년 첫 내한공연을 했고 이에 자극 받은 최승희, 조택원 등이 그를 따라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그리고 최승희, 조택원 등이 귀국하여 1930년대에 개인발표회를 갖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의 현대무용은 엄밀히 말해서 서양의 현대무용을 직접 받아들였다기보다 일본예술가에 의해 한 번 걸러진 채 받아들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좀 더 전문화된 현대무용이 도입된 시점은 196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바로, 서양의 현대무용을 직접적으로 교육받은 무용가 육완순이 등장하고,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최초로 체육과와 분리된 무용과가 개설되던 시기였다.

이후, 전국적으로 대학 무용과의 현대무용 전공생들은 전문화된 무용가로 양성되어갔다. 한국 현대무용이 빠른 기간 내에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이러한 대학의 무용교육이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현대무용에 있어서 1980년대는 한 마디로 비상(飛上)의 시기였다. 이때부터 한국의 현대무용계는 눈에 띠게 팽창되고 다각적으로 향상되어 갔다. 극장의 확산과 함께 무용공연의 수가 엄청나게 증가했고 공연의 기획력도 높아져 각종 페스티벌들이 등장하였다.

여기에 발맞춰 많은 신진무용가들이 창작 일선에서 활동을 개시하였으며 그들의 춤 역시 다채로운 양상을 보이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무용계 안에서 자급자족하던 예술 공급과 소비의 유통구조가 일반 관객에게 개방되어갔다. 이 모든 변화가 1980년대 이래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음을 고려할 때 얼마나 폭발적인 발전상인지 알 수 있다.

20세기 말부터는 한국의 현대무용이 국제화 추세에 발맞춰 세계의 무용시장과 폭넓게 교류해가고 있다. 외국의 유수한 무용단들의 내한공연이나 국내 무용가들의 해외진출은 우리 무용계와 세계 무용계와의 거리를 좁혀가고 있다.

한국 현대무용을 대표하는 안무가 4인-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전미숙 홍승엽 안은미 안성수.

■ 한국 현대무용의 과제와 전망


위와 같은 대대적인 발전상을 거치면서도 한국 현대무용이 풀어야만 하는 과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그 하나로, 우리 현대무용계는 세계 무용계의 주목을 이끌어낼 만한 예술적 독창성을 함양하는데 다소 약점을 드러내왔다.

적지 않은 무용가들이 예술적 자각 없이 스스로를 좁은 테두리 안에 가둔 채 자위적인 작업을 답보하거나, 미적 수준을 스스로 검열하여 예리하게 뻗어나갈 수 있는 창작적 가지를 무디게 만들거나, 무용 추세를 일종의 트렌드로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춤의 모양새를 발 빠르게 변화시키기도 한다. 이 모두는 창작자의 국제 경쟁력에 그다지 도움을 주지 못한다.

예술가라면 그만의 특권, 즉 도전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창조적 자유를 만끽하면서 예술적 독창성을 치열하게 찾아가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관객과의 소통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문제로 부각되어 있다. 우리나라 현대무용계는 끊임없이 일반 관객층과의 교감을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여전히 소수의 무용가들에게 보내는 관심을 제외하면 일반 관객층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하다. 관객들이 한가한 사람도 아니고 적지 않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여 극장에 왔을 때는 그 만큼의 기대감을 갖고 있다.

그 기대치에 상응하기 위해서는 관객들의 감성과 감각을 충족시킬 수 있는, 즉 극장예술 시장에서 살아남을만한 창작 작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무용가들은 자기 과시적인 작품 활동에서 벗어나, 좀 더 치열한 창조 과정을 통해 탄생시킨 춤을 선보여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일반 관객들이야말로 날카롭고 타협의 여지가 없는 평가자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현대무용계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은 매우 크다. 우선 한국의 춤추는 무용수들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은 높아져 가고 있다. 세계의 유수한 무용단에서도 우리 춤꾼들의 이름을 심심치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이는 기교, 표현 그리고 정신적인 면에서 우리 춤꾼의 경쟁력이 최고 수준으로 도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무용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훌륭한 창작자의 발굴이 더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확산된 독립적인 무용가들은 우리 현대무용의 창작력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있다.

이미 안성수, 안애순, 안은미, 홍승엽(이름 순) 등이 해외무대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으며 젊은 창작자들 역시 많은 가능성을 확인시키고 있다. 특히, 젊은 창작자들은 동작을 엮어가는 능력이나 그것을 표현해내는 능력에서 장점을 보이는가하면, 예술적 호기심도 남달라서 현재진행 중인 춤 동향을 흡수하는데 민감하다. 그들에게서 한국 현대무용의 더 밝은 미래를 기대해 본다.

이와 함께 세계무용축제(Sidance), 국제공연예술제(Spaf), 국제현대무용제(Modafe) 등 국제적인 규모의 페스티벌은 국내외 무용가들의 실제적인 교류의 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국에서 개최되는 국제적인 춤 관련 페스티벌들은 다년간 쌓아온 기획력과 선별력 그리고 네트워킹을 바탕으로 세계무용동향을 우리무대에 소개하고, 우리무용을 세계무대로 진출시키는 일등공신으로 역할해가고 있다.

한국의 현대무용은 채 한 세기가 되지 않는 짧은 기간에 다양한 성장의 모습을 보여 왔다. 그리고 현재 현대무용은 한국의 무용역사에 한 획을 그으면서 보다 진보적인 시대로의 전환을 수용하며 21세기에 더욱 발전적인 지향을 모색하고 있다. 우리 현대무용계가 극복해야할 과제는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 무용가들의 잠재력은 충분히 빛나는 미래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고 있다

■ 심정민 약력

이화여대 박사. 제11회 PAF 비평상 수상. 저서 <서양 무용비평의 역사>,<무용비평이란 무엇인가>, <21세기 전환기의 무용변동과 가치>. 현재, 아르코예술극장 기획위원.


심정민 무용평론가 21critic@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