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은 현실의 허기로 충족시킨다가난하고 외로운 부자에게 선물처럼 나타난 외계 생명체

홍콩영화가 전성기를 구가할 때 한국의 재개봉관은 홍콩영화로 도배되었다. 나머지 한편은 <뽕>과 <감자>같은 문학과 에로티시즘을 잘 섞은 한국 성애영화로 변두리 관객을 위로했다.

전성기 홍콩영화계는 감독과 배우의 황금어장이었다. 지금은 전설이 된 서극과 오우삼이 현장에서 종횡무진하고 있었으며 남자 배우는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는 유덕화와 주윤발 그리고 장국영이 건재했다. 여자배우는 장만옥과 매염방, 왕조현, 임청하 등이 계보를 이으면서 홍콩영화가 동아시아 상업영화의 패권을 장악한 적도 있다.

홍콩영화가 전성기의 꼭짓점을 찍고 하향곡선을 그을 때 명문가의 부활을 위한 젊은 피로 수혈되었던 배우가 주성치였다. 주성치는 배우에서 출발하여 지금은 감독을 겸직하면서 화려했던 홍콩영화의 부활을 위해 현역으로 권토중래 중이다.

주성치는 타고난 연기력이나 연출력도 부정할 수 없지만 여전히 홍콩영화의 대표성을 지니고 있는 힘을 다른 요소에서 찾아져야할 것 같다. 그것은 바로 코미디다.

주성치의 코미디는 겉으로는 할리우드의 코미디와 닮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나친 과장이나 기존 영화를 거칠게 흉내 내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주성치 스타일을 내장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주성치는 코미디로 홍콩의 강우석으로 군림하며 비밀은 주성치식 코미디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주성치의 <소림 축구>는 스포츠 영화 장르에 무협영화의 대결 장면을 과장하여 집어넣어 주성치식 코미디로 완성했다. 그의 작업은 주성치식 코미디에 대한 관객의 변함없는 지지로 계속 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당분간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주성치의 는 SF 장르와 코미디를 섞어 기존의 주성치 코미디의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달라진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스포츠 영화나 무협영화에서 SF장르로 넘어와 코미디와 혼합하였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주성치의 인생에 대한 시선의 변화다. 중견 감독의 삶의 휴머니티가 개입되어 이 영화는 어른과 어린이를 위한 SF 교육용 영화로 둔갑하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보여준 교훈은 일방통행식의 도덕적 강요는 배제되고 있으며 또한 주제가 무겁거나 어렵지도 않다. 다만 이 영화를 관람하는 누구라도 부정하기 힘든 올바름의 권유라는 힘이 존재한다.

아버지(주성치 역)는 공사장에서 노동을 하는 자신의 삶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서 아들 샤오디(서교 분)는 사립학교에 보낸다. 아버지의 유일한 당부는 가난하지만 싸우지 말고 거짓말하지 말고 남의 것 탐내지 않아야한다는 도덕적 올바른 삶에 대한 강조다. 이 사소한 신념을 지키려는 아버지와 계급적 한계로 인해 학교에서 주변인으로 몰리는 아들이 빚어내는 어려움이 무겁지 않게 코미디로 흡수되어 설득력을 얻는다.

아들 샤오디는 싸우지 않고 거짓말 하지 않으려고 하나 주변 친구들의 폭력과 횡포로 일방적인 싸움에 말려든다. 샤오디는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받고있다.

이유는 그의 얼굴이 지저분하고 옷차림도 누추하고 신발은 재활용한 운동화만 신고 다닌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당부는 주변의 비협조와 샤오디의 꾀로 인해 번번이 위반되어 부자 갈등이 생겨난다. 이 갈등은 대부분 가족애를 보여주려는 영화가 그렇듯이 보다 견고한 가족애를 확인하기 위한 일시적인 장애와 시련일 뿐이다.

두 부자는 물질적으로 가난하지만 정서적으로는 부유하다. 정서적 부유함은 부자간의 친밀한 유대와 세상에 대한 올바른 삶의 태도에서 발원한다. 샤오디와 아버지는 재개발 중인 건축물에서 바퀴벌레를 잡는 놀이를 하면서 작동되지 않은 선풍기를 두고 가난하게 살고 있다. 가난하다는 조건은 바르게 살아가는 태도를 더욱 빛나게 한다.

현실의 결핍은 환상의 참여공간을 넓혀준다. 첫 번째 결핍은 가족구성원에 누락된 어머니의 빈자리다. 어머니의 공백은 관객의 연민이 개입할 문을 열어둔다. 영화는 결핍을 늘 환상으로 채운다. 어머니의 빈자리는 학교에서 모두들 멸시할 때 샤오디를 위로하고 얼굴을 닦아주는 선생님(장우기 분)이 채워준다.

선생님은 샤오디가 아버지를 잃고 침대로 가서 잠을 잘 째 문밖에서 눈물 흘리며 위로와 슬픔을 공유한다. 샤오디에게 두 번째 결핍은 가난이며 계급차이로 인한 학교에서 소외다. 이는 외계생명체 CJ7호가 환상으로 해결해준다. 가난하고 외로운 인물은 그들의 결핍을 채우고 보상해줄 희망이 선물로 지급된다. 가난한 이들에게 환상의 선물 만들어 주는 것이 영화의 서사다.

샤오디는 쓰레기통에서 아빠가 주워온 외계생명체와 만나게 된다. 이 외계 생명체는 아버지가 던진 헌 운동화에 맞아 작동된 UFO가 지구를 떠나면서 남기고간 것이다.

CJ7호는 샤오디의 외로움을 채워주는 환상적 선물이며 올바르게 살아가려고 힘쓰는 두 부자의 인생에 조력자이다. 그는 선풍기를 고치고 공사장에서 사고사한 아버지를 살려내고 자신은 죽게 된다. 외계 생명체는 성경의 ‘사람이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처럼 자신의 생명을 샤오디를 위해 사용하고 떠난다. 외계 생명체는 떠났지만 샤오디는 그를 기억 속에서 살려냈다.

마지막 장면에서 UFO를 타고 도착한 CJ7호 종족들은 CJ7호가 돌아올 것을 희망하는 샤오디의 기대를 환상으로 충족하는 주성치 코미디의 백미다.

희극지왕 주성치는 홍콩의 신토불이 코미디를 실험하고 완성했다. 그의 코미디는 모든 장르를 물먹는 늪처럼 흡수한다. 영화적 과장이 관객을 사로잡는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동시에 과장이 웃음의 급소임을 영화로 말한다. 이 영화는 그동안 웃음이 지루함 해소에 특효약임을 역설해왔다면 환상은 현실의 허기를 충족시킨다는 사실을 하나 더 추가하여 업그레이드된 주성치 코미디를 완성했다.

■ 문학산 약력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현 세종대 강사, 영등위 영화등급 소위원, 한국영화학회 이사.저서 <10인의 한국영화 감독>, <예술영화는 없다><한국 단편영화의 이해>. 영화 <타임캡슐 : 서울 2006 가을>, <유학, 결혼 그러므로 섹스>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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