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문인들이 만드는 방송 '문장의 소리' 공개방송 가을을 수놓다

인터넷 라디오 방송 ‘문장의 소리’는 국내 최초 문인들이 만드는 방송이다. 시인, 극작가, 소설가들이 모여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대본을 쓰고 진행도 한다. 문학 위주의 콘텐츠와 진행자들의 어눌한 말투에 사람들은 ‘얼마나 갈 수 있을지’를 걱정했지만, 청취자는 시나브로 늘어갔다.

일 년에 한두 번 40명 규모의 조촐한 공개방송을 진행해 왔지만, 이번 가을에는 어엿한 공연장에서 300 여명의 애청자와 함께 공개방송을 열었다. 영화 ‘라디오스타’를 연상케 하는 소규모 문학네트워크가 바로 ‘문장의 소리’다. 문인들이 만들어 내는 방송을 어떤 모습일까? 문장의 소리, 가을맞이 공개방송을 구경했다.

■ 발랄한 문학 방송 기대하세요


‘문장의 소리’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사무국이 운영하는 인터넷 라디오 방송(http://www.munjang.or.kr/mai_radio/main.asp)이다. 2005년 6월 첫 방송을 시작한 이래로 매주 1회씩, 월요일 저녁에 업데이트 되며 올해 9월까지 130 여회 방송을 진행했다.

인터넷 사이트에는 작가와의 만남, 창작광장, 정보광장, 문학집배원 등 다양한 문학관련 코너가 있고 방송을 클릭하면 책 속 문장을 작가의 육성으로 들을 수 있다. 진행 중간 나오는 음악은 월드뮤직 마니아 조연호 시인이 선곡한다.

말 그대로 ‘고품격 음악방송’ 인 셈이다. 조연호 시인은 희곡작가 최창근 씨의 바통을 이어 받아 70회부터 이 프로그램을 연출한다. 조 PD는 “넓은 의미의 문학 공동체”라고 설명했다.

“프로그램 만들기 전부터 여기 분위기를 알고 있어요. 초대 손님으로 출연도 했고. 아늑하고 좋더라고요. 그래서 한다고 했죠. 작가가 작가를 만나는 기회가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프로그램 만들면서 작가 초대해서 얘기 나누고, 그런 인연이 굉장히 좋은 거 같아요.”

라디오의 꽃, DJ는 1대 시인 김선우(1회~13회), 2대 소설가 한강(14회~46회), 3대 시인 이문재(46회~69회), 4대 소설가 이기호(70회~130회)씨를 거쳐 현재 소설가 김애란 씨가 맡고 있다.

작품 속 발랄하면서도 섬뜩한 문장, 말괄량이 같은 외모와 달리 속삭이는 듯한 그녀의 말투는 방송을 낭만적으로 만드는 매력이 있다. 목소리가 조용하다고 인사하자, 김 작가는 “콘셉트예요”라며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처음에 약간 부담스러웠는데요, 목소리도 나가고, 실수할 것 같고. 초대 손님 중에 대선배들도 계셔서 걱정도 됐는데, 하다 보니까 재미있더라고요. 잘했다 생각하고 있어요.”

방송을 만드는 작업이 만만치 않다. 초대 손님을 정하고, 질문을 만들어 대본을 쓰고, 문학 작품의 좋은 문구를 소개하려면 제작진 모두가 부지런히 신간을 읽어 두어야 한다.

“처음에는 힘들 줄 알았는데 몸에 배니까 괜찮아요. 부지런히 읽지 않으면 동시대 문학작품과 (제 작품이) 함께 가기 힘든데, 같이 호흡하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요.”(김애란 DJ)

프로그램 제작진이 조연호 PD와 김애란 DJ로 바뀐 후 방송은 한층 발랄해 졌다. 초대 손님의 연령대가 20~30대로 대폭 낮아진데다 문인의 턱을 없애고 한기호 출판마케팅 연구소장, 한상준 이음아트 대표, 이홍용 샨티출판사 대표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초대 손님으로 출연했다. ‘시인 박상의 라디오 만담’, ‘기자 이우상의 아우성’ 등 패널 코너를 마련해 분위기를 띄운다.

“초창기 방송은 차분한 느낌이었어요. 지금 방송과 장단점이 있는데, 저는 발랄하게 웃으면서도 문학을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그렇게 변한 것 같아요. 패널 코너를 만든 것도 그런 취지고요.”(조연호 PD)

“크게 조명되는 작가는 이미 관록이 있으시니까, 그분들만큼 알려지지 않았지만 고군분투하고 있고, 가능성 있지만 주목받지 못한 분, 독특한 문인들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김애란 DJ)

시인 조연호, 소설가 김애란

■ 가을밤을 수놓은 문학의 향연


‘문장의 소리’ DJ와 패널들은 몇 주 전부터 방송에서 “9월 4일 공개방송 오세요”란 말을 무수히 했다. 프로그램이 방송된 지 4년째로 접어들었지만, 300석 이상의 ‘대규모’ 공개방송은 이번이 처음이다. 장소와 패널을 섭외하고 청취자들을 추첨해 초대장을 발송하고 프로그램을 짜는 데 두 달이 걸렸다.

“저희는 사실 아마추어잖아요. 준비할 게 많고 챙길 게 많더라고요. 김애란 씨도 큰 무대에 사회 보는 건 처음이고.”(조연호 PD)

공개방송에는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왔다. 공연장인 문화일보 홀 300석이 꽉 찼다.

소규모 아카시아밴드의 노래로 시작한 공개방송은 패널로 출연하고 있는 박상 시인과 이우성 기자가 시 패러디와 자작시를 낭독해 흥을 돋웠다. 이어 하이라이트인 안도현 시인과 성석제 소설가의 좌담이 펼쳐졌다. 애청자 질문에 대한 두 문인의 답변이 이어지고, 안도현 시인이 자선시 ‘갱죽’과 ‘말뚝’을 낭독했다. 성석제 소설가는 자신의 작품 ‘낚이다 섞다 낚다 엮이다’의 일부분을 낭독했다.

2부 순서인 청취자와의 문답과 DJ 김애란이 자신의 작품 ‘자오선을 지나 갈 때’ 한 대목을 낭독하고 나니 두 시간 30분이 훌쩍 지나갔다. 작가의 목소리와 얼굴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던 애청자들은 한껏 들뜬 표정이었다. 이날 녹음된 방송은 8일 저녁 방송됐다.

“지금보다 더 재미있고 발랄하고 문학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 들어도 ‘재밌다’는 방송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조연호 PD)

“진행하다 보면 목소리도 자주 갈라지고 침이 말라요. 듣는 분은 차이를 모르시겠지만, 진행하는 톤을 밝게 하려고 하고 있어요. 조금씩 좋아지는 것 같아요. 친숙한 방송이 됐으면 합니다.”(김애란 DJ)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