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문명의 용광로

터키는 동양과 서양을 잇는 요충지로서, 끝없이 펼쳐지는 비옥한 평원은 만년을 이어 10개 이상의 문명을 낳았고 또한 수많은 전란을 불러오기도 했다. 그래서 터키로 떠나는 길은 오랜 역사로의 여행이고 찬란했던 문명과의 엄숙한 만남의 시간이다.

■ 터키 안의 그리스와 로마


그리스 신화를 이야기하고, 로마의 영웅을 논할 때 터키를 빼놓을 수 없다. 터키 그 자체가 그리스와 로마의 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터키 남부 지중해변에는 로마의 흔적이 많다. 로마시대 귀족들의 인기 있는 휴양지였던 올림포스에는 지금 전세계 젊은이들이 트레킹을 하러 찾아들고, 산타클로스로 알려진 성 니콜라스의 교회로 유명한 미라에는 암굴묘와 로마식 원형극장이 온전히 남아있다.

에게해 인근의 디딤에는 아폴로신을 모신 신전이 있다. 그리스시대 신탁을 받던 곳이다. 호메로스의 고향 이즈미르는 터키에서 3번째로 큰 도시로 해변의 공원은 자유롭게 연애를 즐기는 청춘들로 뜨겁다.

이즈미르 남쪽의 에페소는 지중해와 에게해 투어의 정점이다. 알렉산더의 휘하 장수 리시마쿠스가 BC 3세기에 세운, 수천년의 역사가 그대로 살아있는 고대도시다. 로마 보다 더 로마답고, 그리스 보다 더 그리스 다운 곳이다. 2개의 원형극장, 도미티안 황제의 신전, 헤라클레스 문, 하드리안 신전과 켈수스 도서관 등의 유적을 둘러보다 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온듯 황홀해진다.

에페소를 상징하는 켈수스 도서관(왼), 미라의 암굴묘(오른)

■ 1,600년 제국의 도읍지 이스탄불


터키의 경제, 문화의 중심지는 이스탄불이다. 비잔티움, 콘스탄티노플 등의 옛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이스탄불은 동로마제국의 중심으로, 오스만제국의 수도로 1,600년간 제국의 도읍지였다. 유럽과 이슬람의 문화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아야소피아는 이스탄불의 상징으로 비잔틴 건축의 최고 걸작이다. 로마 황제가 만든 성당 이었다가 오스만 제국에 넘어가선 회칠이 칠해져 회교사원으로 사용됐던 곳이다. 훗날 건물에 덧칠한 회벽을 벗겨내자 찬란한 비잔틴 모자이크 벽화가 그대로 남아있었다고 한다. 오스만제국의 회칠이 되레 기독교의 유적을 가장 잘 보존한 셈이다.

아야소피아에서 200m 건너편에 있는 회교사원이 블루모스크. 술탄 아흐메트1세가 아야소피아보다 더 큰 규모로 짓도록 해서 만든 오스만제국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블루모스크만큼 빼어난 회교사원은 이스탄불 대학 인근의 슐레이마니에 모스크다. 28개의 돔으로 뒤덮인 이 모스크는 화려한 장식이나 규모도 놀랍지만 관광지의 분위기 대신 이슬람 사원다운 차분함이 있어 좋다.

아야소피아 옆의 톱카프 궁전은 오스만 제국의 24명의 술탄이 400여년 거처했던 궁이다. 성 안은 잘 꾸며진 공원이다. 특히 술탄의 여인들이 기거하던 하렘은 그 화려함에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든다. 화려한 실내 장식은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여인들이 그 욕망을 치장하는데 쏟았기 때문이란다. 궁전의 동북쪽 언덕 위에 서면 보스포러스 해협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바다에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쾌속선과 화물선이 부지런히 오가고 있다.


이성원 기자 sungw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