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포크 열풍 산실 내쉬빌 멤버 참여대중음악 사상 최강 옴니버스 앨범 합작방의경·김광희·양병집 등 전설의 시작을 알린 공동 데뷔 음반

모든 예술장르에 있어 창작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대중음악도 마찬가지다. 과거 인기가수의 신곡 발표를 위해 무의미한 곡들을 단순 나열식으로 모아놓은 음반과 창작자들이 작심을 하고 제작한 앨범의 가치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무한간극이다. 비록 똑같이 옴니버스 음반으로 분류되겠지만 말이다.

70년대 국내 포크 신에는 전설적으로 회자되는 노래운동이나 음악 감상실 그리고 클럽들이 무수하게 존재했다.

명동 YWCA 청개구리를 필두로 카톨릭 여학생회관의 해바라기, 맷돌, 참새를 태운 잠수함 같은 정기적인 노래운동부터 쎄시봉, 오비스 케빈, 내쉬빌, 닐바나, 르시랑스 등이 당대 젊은 층의 사랑을 받았던 명소였다. 하지만 전설적으로 회자되지만 후대에 이어지는 당대 포크음악씬의 실황이나 기획음반 등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 포크의 열풍이 뜨거웠던 1972년에 내쉬빌 멤버들의 참여로 발표된 [아름다운 사람아 아름다운 노래들] 앨범은 ‘맷돌 공연’ 음반과 ‘참새를 태운 잠수함’ 일부멤버들이 참여한 기획음반과 더불어 당대의 최고의 아마추어 대학생 창작자들이 남긴 소중한 대중음악 유산이다.

흔희 ‘우리들’ 음반으로 통칭되는 이 앨범은 대중음악사상 최강의 옴니버스 음반이다. 처음 발매된 초반의 경우 인터넷 경매낙찰가격이 100만원을 훨씬 넘는 희귀아이템이라는 설명은 이 앨범의 진정한 가치를 반감시키는 지극한 세속적인 표현일 뿐이다.

음반 발표이후 포크 명곡으로 자리매김 된 창작곡이 다수 수록되어 있는 이 앨범은 가히 ‘한국 3대 포크명반’으로까지 회자되고 있다. 앨범을 통해 대중에게 첫 선을 보인 포크 싱어송라이터는 전설적인 방의경, ‘세노야’의 김광희, 양병집, 김태곤, 박두호, 고경훈 등이다. 그들 모두에게 전설의 시작을 알린 공동 데뷔음반인 셈이다.

이 앨범은 대학생 작곡가들이 직접 노래를 불러 발표한 국내 최초의 프로젝트 옴니버스 음반이다.

기획자는 경기고 출신으로 정보국장의 아들이었던 이수일, 기업체 사장 아들 김무영(작고), 가난했지만 음악적 기둥이었던 김유복 등 3인이다. 한국 포크의 메카를 꿈꿨던 이들은 상업적인 가수들을 배제하고 자신의 창작곡으로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들을 우대했던 한국 포크음악의 숨겨진 개척자들이다.

내쉬빌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화제사건으로 유명한 서울 명동 대연각 호텔 옆에 위치했었다. 정확한 확인인지는 알수 없지만 내쉬빌의 역사는 ‘여자 김민기’로 회자되는 방의경의 개인 리사이틀 무대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곳은 인기가수 조영남이 무대에 서겠다고 했지만 거절했을 만큼 유명 대중 가수보다는 무명의 싱어송라이터들을 우대했던 무대였다. 이후 소문을 듣고 전국에서 싱어송라이터들이 모여들면서 대학가 아마추어 포크가수들의 사랑방 같은 역할을 했다. 당시로서는 새로운 대중문화 공간이었기에 주간지 선데이 서울의 요청으로 10여명의 대학가 노래 친구들이 단체 인터뷰를 통해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다.

앨범기획의 단초는 청계구리홀의 멤버였던 김민기 1집이 제공했다. 1971년 말 3인의 내쉬빌 운영자들은 창작곡으로 포진된 그 앨범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강력한 자극은 곧 내쉬빌 멤버들의 창작곡들에 대한 음반제작 기획으로 이어졌다. 1972년 초. 녹음은 특별한 방식으로 마장동 스튜디오에서 시작되었다. 뮤지션이 시간을 정해 함께 참여하는 작업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진행되었다.

전속개념도 아니고 자유롭게 클럽에 드나드는 학생 창작자들이 참가대상이었기 때문에 빚어진 변칙 녹음시스템이었다. 그래서 실제로 음반취입에 참여했던 뮤지션들은 녹음작업이 얼마간의 기간 동안 총 몇 명이 참여했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증언하지 못한다. 다만 수록곡이 제각각인 초반 재반을 통해 대략 10여명 정도가 참여했음을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