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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규 쇳대박물관 관장 "대장간 박물관 꿈 꼭 이루고 싶어"
日 민예관서 쇳대전시… 한국 전통 미학의 정수 선보여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사진=임재범 기자 happyyjb@hk.co.kr

독특한 캐릭터로'쇳대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 최홍규대표. 전세계를 다니며 수집한 4천여점의 쇳대 중 3백여점을 서울 대학로 쇳대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9월 22일 저녁, 도쿄에 위치한 ‘일본민예관’에는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11월 20일까지 계속되는 ‘한국의 쇳대’ 특별전 오프닝의 개막 공연의 마지막으로 소리꾼 장사익이 온몸으로 토해내는 소리였다. 이날 자리를 같이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부인인 정희자씨를 비롯해 한국박물관협회 김종규 명예 회장, 연극복지재단 박정자 이사장, 종이문화재단 노영혜 이사장, 매일유업 김종완 부회장 등 50명이 넘는 한국 참가자들도 노래를 따라 불렀다.

‘일본의 정주영’으로 불리는 오카자키 마사오(岡崎眞雄) 닛세이 동화손해보험 명예회장, 재계의 거물인 고바야시 료타료 후지제록스 최고 고문,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 타니구치 요시오(金木重好) 등 일본 명사들의 바로 앞에서였다. 한국을 사랑했던 야나기 무네요시의 혼이 서린 민예관이라는 점에서, 한국 전통 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자물쇠를 선보이는 전시회라는 점에서 이날의 공연은 즉석에서 펼쳐진 하나의 퍼포먼스였다.

민예관은 일본의 민예 연구가이자 미술 평론가로 일본 총독부의 광화문 철거를 강하게 반대하고, 부적절한 석굴암 복원을 비판하는 등 한국을 사랑한 미학자로 잘 알려진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가 1936년 10월 개관한 박물관. 17,000여 점의 도자기, 칠기, 회화, 금속 공예품 등의 생활 공예품을 소장한 민예관은 일본을 대표하는 박물관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런 민예관에서 한국 공예품 전시가 열린 것은 이번이 자수와 화장품에 이어 이번이 세 번 째. 하지만 전시회를 위해 들어간 쇳대박물관(서울 종로구 동숭동) 측의 노력은 앞선 두 번의 전시를 뛰어넘고도 남음이 있었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자물쇠로 손꼽히며 고려시대 왕실에서 사용 된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연화문 자물쇠’를 비롯해 조선시대 상류층의 혼수 필수품이었던 열쇠패 등 국보급 문화재를 포함해 자물쇠 87점, 빗장 24점, 열쇠패 36점, 노리개 6점을 이번 전시를 위해 쇳대박물관은 2년간의 기획과 준비 기간을 거쳤다.

그리고 일본식 2층짜리 목조 건물인 민예관의 한 공간을 전시를 위해 아예 뜯어 고치는 모험까지 감행했다. 출품작들을 보석처럼 아름답게 보여주기 위해 철을 이용해 전시 케이스를 짜고 전시장의 입구를 나무틀로 새롭게 단장하는 등 대대적 공사에 나선 것.

그렇듯 72년, 민예관 역사에 반하는 도전의 중심에는 쇳대 박물관 관장인 최홍규(51) 최가철물 대표가 서있다. 2003년 10월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쇳대박물관’을 설립한 이래 ‘대장간 전, 두석장 전’ ‘남자를 위한 장신구 전’ 등을 잇따라 성공시킨 최 관장의 집요하고도 남다른 모습이 또한 번 빛을 발한 순간이다.

그런 그에게서 26년 전 학원 비용을 벌기 위해 서울 을지로의 철물점을 기웃거리던 재수생의 이미지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큰 철물점을 구경하다가 아르바이트나 해볼까 싶어서 들어갔는데 그게 제 평생의 업이 됐고, 또 오늘 이 자리까지 서게 됐습니다.”

그렇게 최 관장은 을지로에서 가장 큰 업체이던 ‘순평금속’에 취직했다. 맡겨 진 일은 청소와 심부름. 월급은 한 달에 몇 천원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그는 못과 나사부터 커다란 부품에 이르기까지 철로 만든 물건이라면 무엇이든 있던 그곳에서 ‘인생의 멘토’를 만났다. “가게 사장님이 월남한 분이셨는데 정말 검소하시고 매번 최선을 다하셨어요.”

그리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엄청난 매출을 올리는 철물업계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순평금속’의 최 과장이라고 하면 아마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거에요. 손님 한 명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매일 도시락으로 점심을 가게에서 때웠죠. 그리고 물건을 사지 않을 것 같은 손님에게도 늘 친절하게 대했습니다. 그 진심이 통한 것 같아요.”

비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단순한 원칙을 고수했던 그는 1989년 5,000만원을 투자해 강남에 ‘최가철물’을 설립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래 번 돈으로 사 둔 25평짜리 아파트를 담보 잡힌 돈이었다. “고객들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서는 이름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해 아예 성씨를 이름으로 내걸었죠. 자식들이 자라서 대를 이어주기를 바라는 기대도 있었고요.”

그 이름에 담긴 포부만큼 ‘최가철물’의 경영 방식도 남달랐다. 10평 남짓한 조그만 가게였지만 최 관장은 철물점을 못을 파는 을지로의 철물점과는 180도 다른 곳으로 꾸몄다. “가게에 나무 마루를 깔고, 곳곳에 그간 사 모은 골동품을 장식했어요. 아름다운 ‘철물점’을 꿈꿨다고 할까요.”

일본민예관 한국의 쇳대 특별전 오프닝.


그런 그의 전략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못 하나라도 손님이 원하는 디자인으로 만들어주는 ‘주문자 생산형’ 방식을 도입했다. “당시만 해도 ‘철물’은 싸고 오래 쓰는 게 최고라고 믿고 있었죠. 하지만 저는 그렇게 보지 않았어요. 일상에서 누구든 쓰는 ‘철’이야 말로 인테리어를 위한 소재가 될 수 있다고 본 거죠.”

철과 디자인의 결합이라는 낯선 조합은 폭발적 인기를 불러 일으켰다. 원통형이나 레버 형 두 가지 밖에는 없었던 문 손잡이에 공예 기법을 도입해 사람이나 동물, 상징물을 표현해 만든 손잡이로 그는 특허를 받았다. “문 열자 마자 손님들이 밀어 닥쳤어요. 믿기 힘든 일이지만 물건을 사기 위해 줄을 설 때도 있었죠.”

그렇게 최가철물의 승승장구는 계속됐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전후로 한 차원 높아진 사람들의 욕구를 정확하게 충족시켜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부를 많이 하지 못했다는 콤플렉스랄까, 문화에 대한 ‘갈증’이라고나 할까 그런 게 늘 제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거 같아요.”

이에 대한 그의 해결책은 컬렉션이었다. 처음 삼국시대 토기에 쏠려있던 그의 관심은 다시 목가구로 향했고 마침내 자물쇠에 정착했다. 철물 디자이너와 장인인 그에게 자물쇠야 말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다시금 해석해주는 수단이었다. “한국 가구는 자물쇠를 통해서 완성됩니다. 기술적인 측면이나 미학적 측면에서 세계 어디를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공예품들을 사람들은 쓸모없는 고철 덩어리쯤으로 취급하고 있을 때 였죠.”

그는 전국 방방 곡곡을 돌아다니며 값을 따져 묻지 않고 자물쇠를 사 모았다. 그러게 모은 자물쇠가 4,000여 점에 달한다. 자신의 콜렉션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자 최 관장은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쇳대 박물관’을 떠올렸을 때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왜 하필이면 대학로의 후미진 골목에 그렇게 좋은 박물관을 짓느냐는 말이 많았어요. 하지만 저는 그래서 꼭 그곳이어야 한다고 믿었어요. 제 시작이 그랬듯 중심이 아닌 주변에서 시작해 보자는 배짱이었다고 할까요?”

그가 건축가 승효상씨가 부식 철판을 외장재로 사용해 지은 간결하고 정제된 특유의 미학을 마음껏 그려낸 ‘쇳대박물관’이 문을 열면서 그에게는 또 다른 삶이 열렸다. 하지만 성공한 기업가에서 박물관 관장으로서 변신은 녹녹치 않았다. “박물관을 유지하기 위해 한 해만 몇 억은 쓰는 것 같아요. 대기업도 아닌 ‘최가철물’을 운영하는 대표로서는 부담스러울 때가 많죠. 하지만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보다는 훨씬 아버지가 왜 평생을 ‘철물장이’로 살았는지를 보여주고, 자물쇠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기 위해선 그쯤은 감당해야 겠죠.”

고등학교를 졸업한 철물가게 직원에서 철물 디자이너로 다시, 잘 나가는 철물점 대표로, 최 관장의 삶은 끊임없이 외피를 벗으며 새 살을 돋아왔다. 그러나 그 한가운데는 언제나 ‘철’이 있었다. “사람들이 제 사주에 ‘철’이 들어 있다고 해요. 그래서 일까 몇 년 전 건물까지 지었다가 여건이 어려워 포기한 ‘대장간 박물관’의 꿈을 꼭 다시 이루고 싶어요.”

대장간 박물관을 통해 철을 다루고 이를 통해 자물쇠를 포함해 수 많은 제품을 만들어온 장인들의 역사와 숨결을 보여 주겠다는 게 그의 계획이다. 그렇게 쇳대박물관 최홍규의 자기 정체성을 향한 미학적 탐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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