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상품 완성도 높이는 기술에서 삶의 질 혁신하는 디딤돌로정부도 '세계 5대 문화산업 강국' 도약 비전 세워 육성 가속화

문화와 기술. 언뜻 보면 양립하기 어려운 두 낱말이다. 문화가 감성, 따뜻함, 인간 등을 떠올리게 한다면 기술은 이성, 차가움, 기계 등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의 시대이자 디지털기술의 시대인 21세기는 문화와 기술의 융합을 요구하고 있다. 삶의 질을 높이는 문화적 향유의 장(場)에 디지털기술이 빼놓을 수 없는 필수요소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시대적 요청에 따라 등장한 것이 이른바 문화기술(Culture Technology)이다.

문화기술은 통상적으로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등 각종 문화상품과 문화예술 등의 기획, 개발, 제작, 생산, 유통, 소비 등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아울러 지칭하는 말이다. 보다 넓게는 과학기술 및 인문사회학, 디자인, 예술분야의 지식과 감성적 요소를 바탕으로 문화적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총체적인 기술을 뜻한다.

문화기술의 대두 배경에는 문화상품(콘텐츠)의 양상 변화가 중요한 동인으로 작용한다. 즉, 과거 아날로그 방식으로 제작되던 문화상품이 이제는 급속하게 디지털화 추세로 가고 있는 까닭에 기술적 요소의 비중이 한층 커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가령 특수효과, 컴퓨터그래픽 등이 작품 완성도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영화산업이나 콘텐츠 자체가 100% 디지털기술로 만들어지는 게임산업 등의 예만 보더라도 문화기술의 중요성과 가치를 쉽사리 알 수 있다.

아울러 과학기술 패러다임의 변화도 빼놓을 수 없다. 20세기 산업시대에는 ‘먹고 사는 기술’이 대접을 받았다면 21세기 지식정보화 시대에는 인간의 지적, 감성적 만족감을 충족시켜주는 ‘즐기는 기술’이 더욱 인정받게 됐다는 것이다. 기술은 필요의 산물, 곧 사람들이 원하는 기술이 이제는 확연히 달라졌다는 뜻인 셈이다.

문화기술은 문화산업의 성장을 이끄는 견인차라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국내 문화산업은 2000년대 들어 소득증대, 주5일 근무제 확산, 웰빙 열풍 등에 따른 국민들의 문화욕구 다양화 및 고급화 덕분에 빠른 속도로 커나가고 있다.

2000~2004년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연 평균 5.4%에 그친 반면 문화산업의 성장률은 연 평균 9.7%에 달했다. 또한 같은 기간 동안 문화산업의 고용 증가율은 연 평균 7.86%로 전체 고용 증가율 2.16%의 4배에 육박했다.

이처럼 두드러지는 각종 경제지표는 문화산업이 단순히 문화적 영역에 머무는 게 아니라 한국경제의 신(新) 성장동력으로 떠올랐음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우리 정부도 문화산업 성장의 토대가 되는 문화기술 육성을 위해 일찌감치 발벗고 나섰는데, 정부의 정책 목표는 ‘문화기술을 통한 세계 5대 문화산업 강국 견인’이라는 미래 비전에 압축돼 있다.

문화기술이 정부 차원의 정책 이슈로 처음 떠오른 것은 지난 2001년이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대통령 주재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문화기술을 정보기술(IT), 바이오기술(BT), 나노기술(NT) 등과 함께 차세대 전략산업으로 지정함으로써 문화기술 육성의 깃발을 올렸다. 이어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5년에는 ‘문화기술 비전 및 로드맵’이 수립되면서 정책이 점차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정권교체가 이뤄진 올해 들어서도 지난 1월 ‘문화기술 개발 5개년 계획’ 수립, 2월 ‘핵심 문화콘텐츠 집중육성 및 투자확대’ 국정과제 보고, 7월 ‘문화기술 R&D(연구개발) 기획단’ 발족 등 문화기술 강국을 향한 발걸음이 더욱 분주해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지난 수 년 동안 정부의 정책지원과 민간의 기술축적을 통해 이뤄낸 국내 문화기술 개발의 성과는 괄목할 만하다. 세계 일류 수준에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는 분야도 적지 않다.

우선 영상 분야의 주요 성과로 ‘디지털 크리처’(Digital Creature)를 들 수 있다. 디지털 크리처는 인간, 동식물, 외계인 등 생명체를 실사(實寫) 수준으로 표현하는 기술이다. 올해 개봉해 박스오피스 1위에도 올랐던 할리우드 영화 <포비든 킹덤>은 디지털 크리처 등 특수효과 부문을 국내 업체 기술로 완성해 화제를 모았다.

문화유산을 3차원(3D) 입체영상으로 제작 및 복원하는 ‘디지털복원기술’도 매우 높은 수준에 올랐다는 평가다. 숭례문, 창덕궁, 남한산성, 거북선 등 중요 문화재가 이 기술을 통해 3D 디지털 콘텐츠로 제작돼 게임,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문화기술의 궁극적 지향점은 어떤 모습일까. 21세기는 인간의 감성이 중시되는 감성의 시대라고 했다. 이런 전망에 비춰 문화기술 역시 인간의 감성적 만족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내는 다양한 문화 콘텐츠의 기반 기술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오감(五感)정보처리기술’이 문화기술 발전의 정점으로 예상되고 있다. 오감정보처리기술은 말 그대로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 인간의 오감을 총체적으로 충족시키는 ‘오감형 콘텐츠’의 제작을 가능하게 하는 미래형 기술이다.

오감정보처리기술이 등장하게 되면 문화상품은 더 이상 간접체험의 도구에 머무르지 않고 사용자에게 현실세계와 거의 흡사한 가상현실의 경험을 제공하는 수단이 될 것이다. 그런 신세계는 결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추락, 충돌, 화재와 같은 극한 장면 촬영에 사용될 수 있도록 핸드퍼펫이라는 원격조정장치로 직관적인 무선제어가 가능하게 한 인간형 애니메트로닉스 RAMeX 기술.(위)
개인의 관심영역에 대한 정보를 미리 찾아 쉽게 전달하는 미래형 정보검색 방법을 체험할 수 있는 인포월.(아래)

◇ 문화기술의 분류 및 개념

▦공통기반 기술

-창작기술: 콘텐츠 제작의 초기단계에서 영상, 음향, 색채 등의 디자인 및 시나리오 제작 등의 지원 기술

-표현기술: 인간의 오감(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감성 및 뇌파와 연계해 콘텐츠를 표현하고 사용자가 인지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기반이 되는 기술

-유통/서비스기술: 콘텐츠의 패키징, 전달, 저작권 보호 등 유통과 서비스를 위한 기반 기술

▦산업장르별 콘텐츠 제작기술

-애니메이션기술: 애니메이션의 실제 제작을 위한 비디오 및 오디오 관련 제작기술

-방송기술: 영상, 음향, 데이터 등 각종 방송 콘텐츠의 제작, 전송, 수신 서비스의 각 단계에 적용되는 기술

-음악기술: 디지털음악의 제작, 유통, 판매 및 사용과 관련된 기술

-게임기술: 온라인, PC, 아케이드, 비디오, 모바일 게임 등 다양한 게임 제작에 필요한 기술

-영화기술: 영화 콘텐츠의 제작, 배급, 흥행 등 각 단계에 적용되는 기술

-출판기술: 전자출판을 중심으로 한 출판물 제작기술

▦공공기술

-문화유산기술: 우리 고유의 문화유산을 측정, 복원, 아카이빙(보관)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기술

-문화복지기술: 문화적으로 소외된 계층에게 문화 콘텐츠를 효율적으로 전달하고 체험하게 하는 기술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