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상업영화' 전제 재고돼야… 전용관 등 제도 개선도 필요

장훈 감독의 단편 독립영화 <불한당들>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월드컵 당시 도심의 한 주점에 간 베트남 노동자들이 인종적 편견에 가득찬 한국인 손님들과 시비가 붙는다. 갑자기 모두 좀비로 변해버린 한국인들에게 베트남 노동자들은 은단을 넣은 장난감 총을 쏘며 가까스로 그 곳을 탈출한다.

‘이게 뭐야’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황당한 스토리지만 영화는 월드컵 당시 한국인이 집단적 광기에 휩싸여 외면했던 문제들을 재치있게 풍자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시선은 그들이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과 관계없이 지나치게 왜곡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극장가의 영화시장에서 이 같은 참신한 독립영화들은 알려질 기회조차 얻기 어렵다. 영화 속 한국인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시선처럼 독립영화는 주류영화들의 문법과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때문에 오늘날 한국에서 독립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주류 영화의 관습적 문법, 그리고 독립영화에 대한 대중의 편견과 맞서싸우는 작업의 다른 표현일 수 있다.

지난해 장편데뷔작 <은하해방전선>으로 해외와 국내의 유수의 영화제에서 주목받고 독립영화감독상을 거머쥔 윤성호 감독은 ‘영화=상업영화’라는 대중의 전제가 먼저 재고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영화는 그냥 영화입니다. 하지만 ‘영화’ 앞에 ‘독립’이라는 라벨을 굳이 붙이려는 움직임이 있을 때 그 움직임을 촌스럽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영화는 당연히 상업영화여야 한다’는 괴상한 전제에 무심히 동의하는 분들이 너무 많으니까요. 그 앞에서 ‘어, 그건 그렇지 않아요’ 하고 말을 건네기 위한 정교한 운동이 필요한 거죠. 한국에서는 그 제일 간단한 요약이 ‘독립영화’입니다.”

올해 관객 1만을 돌파하며 독립영화의 새로운 기록을 작성하고 있는 <우린 액션배우다>의 정병길 감독은 그런 면에서 대중의 편견을 불식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한국 독립영화의 현실은 여전히 암울하다고 말한다.

“재미있고 좋은 영화는 많지만 스타배우도 없고 홍보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관객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극장을 잡기가 어려워서 개봉을 하기조차 쉬지 않아요. 독립영화 전용관 등의 제도적인 개선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구조가 만들어질 때 본격적인 활성화 논의가 시작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독립영화가 어렵다는 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여기서 ‘어렵다’는 영화 자체가 어렵다는 이야기도 되고 제작환경이 어렵다는 이야기도 된다. 하지만 상업영화시장이 신자유주의 트렌드의 극단에서 고착화된 규모의 경제학의 폐단은 다시금 독립영화에서 그 해법을 찾게 하고 있다.

최근 열린 한국독립영화협회 10주년 기념포럼에서 “지금 독립영화에게는 시장을 경유하여 독립영화의 영역을 넓혀나가든가, 아니면 대안적 시장을 형성해내든가 하는 실질적 고민과 실천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원승환 독립영화배급지원센터 소장의 조언은 그래서 의미있게 다가온다.

■ "나의 독립영화 꿈은 진행중"장편 독립영화 '아스라이'의 김삼력 감독 인터뷰


지난해 인디포럼 폐막작인 '아스라이'는 가난하고 재능 없는 지방 독립영화 감독의 외로운 고군분투기를 그려 주목받았다. 영화를 꿈꾸는 자들은 많지만 재능이 없음을 아는 자는 드물고, 그걸 알면서도 창작에의 열정을 포기하지 못하는 자는 더 드물다.

어쩌면 영화를 하는 모든 자들의 자화상이기도 할 이 이야기를 가지고 30살의 김삼력 감독은 중심부 밖에서 작업을 지속해온 자신의 경험을 투영시켜 독립영화의 중심부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10년 동안 30여 편을 만들 정도로 치열하게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그에게 독립영화 환경의 현실을 물어봤다.

- 장편 '아스라이'의 관객 반응은 어땠나

“크게 ‘아주 공감된다’와 ‘그렇게 힘들면 영화 안 하면 되지 않느냐’ 두 가지로 갈렸다. 영화팬들은 재밌게 봤는데 일반관객들은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 많았다. 나와 비슷한 세대들은 대체로 재미있게 보는 것 같다”

- 요즘 독립영화를 보러오는 일반관객들의 추세는 어떠한가

“예전보다 많이 늘어났다. 소위 ‘작가’라고 할 만한 분들이 자기만의 색채를 강하게 내다보니 온 가족이 다 볼 수 있는 보편적 영화가 나올 수 없는 문제는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보다는 관객 유치의 문제는 전용관의 불안정한 유지에 있다. 전용관이 한 자리에서 10년, 20년씩 꾸준히 운영되어야 관객들이 조금씩 늘어나는데 알다시피 전용관들은 몇 년을 못버티고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갈 수밖에 없다. 하나의 문화로서 독립영화 보기가 정착되기 어려운 이유다”

- 독립영화 안에서도 스타감독들이 많다. 유명세에 따라서 부의 편중(?) 같은 게 있나

“영화제 수상보다는 영화제 자체에 출품을 얼마나 많이 했느냐, 혹은 얼마나 꾸준히 작업을 해왔느냐에 따라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부의 편중은 있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다 가난하니까. 독립영화는 영화를 통해서 제작비를 회수하지 못해서 다시 다른 작업에 동력으로 쓸 수 없다는 구조적 맹점이 있다. 이 때문에 상업영화 쪽으로 재원들이 많이 빠져나간다”

- 본인은 절대 상업영화 쪽으로 가지 않을 생각인가

“나는 아직 독립영화의 꿈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물론 상업영화에 뜻이 없는 건 아니다. 독립영화가 가치가 있는데 순환과 배급을 잘 해서 다시 제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는 없을까 하는 고민을 다들 하고 있는데, 이게 해결이 안 된다. 감독이 제작비 지원을 받는다고 해도 결국 자기 사비는 들어가기 마련이다. 결국 그렇게 영화 한 편 찍고 나면 시쳇말로 거지가 되어서 한 3~4년 쉬어야만 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는 거다”

- 한국영화 위기설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하지만 독립영화계는 상업영화가 잘 될 때도 가난했던 곳 아닌가. 요즈음의 한국영화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궁금하다

“전체 파이가 작아지면 독립영화의 몫은 더 작아진다. 관객들이 영화관을 자주 찾을 때 독립영화에의 관심도 나올 수 있다. 한국여화의 위기는 우리에겐 직결타가 된다.

제작지원 같은 것도 영화계가 불황일 때는 더 적어지거나 없어지기까지 한다. 독립영화는 주류 상업영화의 근간이 된다. 지금 상업영화 감독 중에는 독립영화 출신들이 많다. 지금 독립영화가 잘 안 되는 것은 좋은 상업영화가 나올 수 있는 토양을 없애는 거다”

- 이렇게 계속 어려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계속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영화라는 장르가 어두컴컴하고 폐쇄적인 공간에 관객들을 가둬놓고 돈 내라고 하는 장르 아닌가?(웃음) 이런 데서 오는 매력들, 또 제작과정에서 겪는 모든 재미들. 이런 것들이 이 작업을 여전히 그만 둘 수 없게 한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