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헤이든·미셀르 그랑·클리포드 브라운·쳇 베이커 음반 강추

여름내 뜨거운 햇살에 익숙해졌던 몸은 갑작스레 스산해진 가을이 참기 힘들다.

서늘한 가을바람이 마음 속까지 파고드는 듯한데, 이럴 때 어쿠스틱 사운드와 그루브한 리듬을 가진 따스한 분위기의 재즈음악을 찾게 되는 건, 긴 팔 옷을 꺼내 입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재즈와 함께 살아가는 재즈 뮤지션들은 이 가을, 어떤 음반을 듣고 있을까? 그들이 무르익은 가을의 분위기를 만끽하게 해줄 재즈 음반을 추천했다.

실험적인 음악적 행보를 보였던 시적인 베이시스트 찰리 헤이든과 퓨전재즈 기타리스트 팻 메스니의 듀엣앨범 는 서정미의 극치를 들려준다.

찰리 헤이든과 피아니스트 곤잘로 루발카바가 연주한 과 함께 소위 ‘잘 팔렸던’ 이 앨범은 재즈보컬 말로가 ‘이 가을, 홀로 침잠하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는 음반이다. “더블베이스와 어쿠스틱 기타가 만들어내는 고요와 적막이 아름답습니다.

절제된 음과 음 사이로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는 느낌”같은 감상은 그녀만의 것은 아닌 듯하다. 가을에 듣는 찰리 헤이든의 연주는 재즈 뮤지션들에게도 특별한 감성으로 다가 가는 것 같다.

두 장의 앨범을 소개해준 재즈 피아니스트 이노경은 그 중 한 장으로 찰리 헤이든이 1987년 결성한 밴드 ‘Quartet West’의 를 선택했다.

“1930-1940년대 영화와 관련된 음악을 주로 연주했던 이 밴드는 대체로 로맨틱하면서도 그윽한 향취를 지니고 있는데, 찰리 헤이든이 개인 소장하던 레코드 판의 소리를 그대로 녹음해 ‘지직’하는 노이즈가 들리는 것이 더 매력적”이라는 것이 추천의 이유다. 음악에 추억이 담기면 더욱 각별해진다는 그녀에겐 로맨틱한 춤곡으로도 기억된다.

이노경이 선택한 또 한 장의 음반은 이태리계 프랑스인 리차드 갈리아노의 다. 탱고, 재즈, 그리고 프랑스의 민속음악 뮤제트를 멋스럽게 퓨전한 음악을 아코디언과 반도네온으로 연주하는 그는 지난해 첫 내한공연을 통해 국내 팬들을 만나기도 했다. “음악에 대한 해석의 여지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는 특별함이 있어요. 낭만적이면서도 올드패션하다고 할까” 그녀는 특히, 1, 2, 5번 트랙 곡에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영화 <쉘브르의 우산>을 비롯해 수많은 명곡을 남긴 영화음악의 거장 미셀 르그랑의 는 재즈 하모니카 마스터 전제덕의 애장음반 중 하나다. 음악신동이었던 그가 백발이 되어 자신의 주옥 같은 명곡들을 직접 피아노 연주로 들려주는 앨범이다.

“미셀 르그랑이 명 작곡가이기 이전에 명 연주자임을 깨닫게 해주는 앨범이에요. 편안하고 여유로운 그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제목 그대로 추억의 따뜻한 그늘에서 쉬는 듯합니다.” 베이스, 드럼과 함께 트리오로 연주되는 앨범엔 하모니카의 전설로 불리는 투츠 틸레망이 두 곡을 협연했는데, 특히, <쉘브르의 우산>의 ‘I will wait for you’에는 애잔함이 눈물이 되어 흐를 것만 같다. 재즈 평론가 남무성은 마음을 녹일 듯한 두 명의 트럼펫터의 음반을 권했다.

찰리 헤이든의 감성을 사랑하는 재즈보컬 말로.

천재 트럼펫터로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26살에 교통사고로 요절한 클리포드 브라운의 와 재즈 계의 제임스 딘이라 불렸으나 마약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쳇 베이커의 . ‘현악과 함께’라는 앨범 제목에서부터 ‘달콤하고 무디(Moody)한 사운드’의 느낌이 전해진다는 남무성은 “ ‘Blue Moon’ ‘Smoke Gets In Your Eyes’등 귀에 익은 스탠더드 넘버들을 재즈 관악기의 취주법과 클래식 협주곡의 이상적인 조화를 보여준 작품”이라고 클리포드 브라운의 음반을 평했다.

는 ‘My Funny Valentine’으로 미성을 들려줬던 노래하는 트럼펫터 쳇 베이커의 전성기 이후의 작품. “일생 동안 따라다녔던 마약중독의 그늘에서 녹음한 1974년 작입니다. 그러나 초연한 목소리와 정제된 솔로연주는 전성기 때의 장점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수작”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 ‘Autumn Leaves’를 첫 곡에 담았을 정도로 가을에 어울리는 대표적인 재즈 음반이기도 하다. 재즈 피아니스트 이노경이 말하듯 음악 자체보다 그 안에 추억이 담기면 음악은 더욱 다채로운 빛깔을 띠게 마련이다. 이 가을, 재즈 뮤지션과 평론가가 추천한 재즈 명 음반 속에 아름다운 추억과 진한 여운을 마음에 간직해보는 건 어떨까.


글·이인선 객원기자 sun9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