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여 미술인 다양한 창작 활동 불구 예술 활성화 프로젝트·정책 아쉬움권녕호 화백- 프랑스서 20년활동 내년 전시 기획중김근중 화백- 관념적 꽃그림… 서울서 전시회 준비육근병 작가- 캐나다 동계올림픽 프로젝트 진행

경기도 양평 곳곳에 터를 닦은 예술가들은 어느새 3-400명을 헤아린다. 문인보다는 화가, 조각가, 설치미술가, 도예가 등 다양한 장르의 미술인들이 대부분이다. 양평이 예술가 마을 혹은 화가마을로 불리는 이유일거다.

하지만 파주의 헤이리처럼 구획된 공간에 조성된 마을이 아니라, 작가들이 개인적으로 작업실을 지어온 터라 일반인에 오픈 되어 있는 갤러리 외에 그들의 집과 아틀리에를 찾아가거나 들여 다 보는 일은 쉽지 않다.

그 덕분에 작가의 개성이 묻어나고 자연과 예술의 어울림이 돋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한적함 속에서 예술혼을 불태우는 곳, 한중망(閑中忙)의 기운이 흐르는 그곳을 찾았다.

서양화가 권녕호 화백은 밤나무, 느티나무, 그리고 백년도 넘은 것 같은 은행나무가 둘러진 곳에 집을 지었다. 나무를 피해 ‘ㄱ’자 모양으로 지어진 작업실과 집 옆으로는 맑은 냇물이 흐른다.

프랑스에서 20여년간 작가와 교수로 활발히 활동해온 권 화백은 8년 전 양평에 들어왔다. 이전에 서울에서 임대했던 4미터 높이 천장의 작업실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었던 탓이다.

“서울에서 다시 그런 작업실을 찾기는 쉽지 않았어요. 친분이 있는 화가의 양평 작업실을 둘러보고 이곳에 오기로 마음 먹었지요.” 작업실을 먼저 짓고, 후에 아내와 함께 살 집도 추가로 지었다. 직접 설계한 작업실과 집은 마치 처음부터 같이 지어진 듯 하나로 어우러진다.

작업실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책상과 책장, 그리고 소파가 놓여 있는 응접실이 먼저 사람을 반긴다. 유리로 나뉘어진 공간을 들어서면 왼편엔 높은 천장을 그대로 이용하는 화가의 아틀리에가 있고 오른편에 있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그의 19살 데뷔작 <축일>이 전시된 갤러리 공간과 손님방으로도 쓰이는 작은 작업실이 나온다.

그가 직접 만든 나무 침대며, 프랑스에서 오랫동안 사용해 손때가 묻은 앤틱가구, 골동품이 된 거울이 멋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아름다우면서도 편안하게 꾸며진 아틀리에의 제 몫을 다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의 아틀리에는 추상화가 그려진 캔버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강렬하진 않지만 부드러운 색감이 가랑비에 옷 젖듯 마음을 적셔온다. 군상 시리즈에서 민화로, 이제는 자연을 소재로 추상화를 작업하는 그는 지금, 또 한번의 도약기를 준비 중이다.

“10년을 주기로 작품이 변화하고 있는데, 현재 변화의 시점이 왔습니다. 청년시절을 유럽에서 보낸 후 작품이 완숙해지는 시기라고 할 수 있는데, 내년쯤 작가로서 역량을 꽃피울 수 있는 전시를 기획 중입니다.”

화가로서 양평에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되는 사이, 걸어서 불과 3분 거리에 사는 김근중 화백(동양화가, 경원대 교수)이 그를 찾아왔다. 평소 친분이 두터운 그들은 자주 왕래하는 사이로, 권 화백을 양평으로 잡아 끈 이도 바로 그였다.

권녕호 화백의 집에서 만난, 자연과 어우러진 푸드 스타일링(아래)

김근중 화백(이하 김) : 어, 이거 어떻게 작업한 거에요?

권녕호 화백(이하 권) : 나이프로 했지.

김 : 나이프로 한 건데 자국 하나 없네요?

권 : 그게 중요해.

김 : 요즘 작업 많이 하시네요.

권 : 응. 그런데 괜찮은지 모르겠어.

김 : 그린 듯 지운 듯, 그게 매력이에요

권 화백 작업실에 놓인 진행 중인 작품을 두고 나눈 대화다. 관념적인 꽃을 그리는 김 화백은 작업실만 양평에 두고 있다. 1994년에 선배의 추천으로 작업실을 마련한 그는 양평에 자리잡은 초창기 예술가 중 한 명이다. “공기와 물이 좋아서 정서적으로 편안해지는 곳이에요. 작가는 생기 넘치는 도시에 있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깊이를 위해서는 자연과 벗삼아야 한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도시와도 가깝고 자연과도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이 좋지요.”

잠시 후 자리를 옮겨 돌아본 김 화백의 소박한 작업실엔 동화적이면서도 원초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꽃들이 캔버스에 가득 피어 있었다. 그는 내달 신사동 가로수 길에 있는 갤러리에서 열릴 작은 전시회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형

태상으로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던 그는 요즘 복잡하고 관념적인 꽃 그림에 심취해있었다. 꽃이 그려지고 있는 작업실 옆 방엔 옅은 파랑이라던가, 옅은 노랑 등의 바탕색이 칠해진 여러 개의 캔버스가 꽃으로 채워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집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엔 비디오 아티스트 육근병 작가가 살고 있다. 누구든 한번쯤은 봤을 법한, 4미터 높이의 무덤에서 우리를 응시하는 깜빡이는 외눈, <풍경을 위한 눈>의 작가다. 하늘에 닿을 것처럼 비탈길을 한참 올라가야 나오는 그의 집은 4년 전에 지어졌다. 양평군 옥천리의 가장 끝에 위치한 집엔 소음 한 점 들어갈 것 같지 않았다.

비디오 아트를 하는 그에겐 최상의 위치인 셈이다. “미세한 소음도 없어서 좋고 작가로서의 삶이 노출되어 있지 않는 삶이 좋습니다. 예술의 궁극적 목적은 현재의 진단이죠. 주위에 치이면 작업은 힘들어집니다.”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8년간 교수로 재직했던 그는 현재 일본 교토대학에 이어 동북예술공과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국내에서의 활동을 7년쯤 멈췄던 그는 내년부터 활동을 재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요즘 그는 캐나다 동계 올림픽에 관련한 프로젝트와 진주 박물관에 전시될 란 작품을 준비 중이다.

그를 닮은 회색 빛의 모던한 작업실에는 가 놓여있었는데, 흘러간 역사가 있는 박물관 로비에 놓여질 ‘미래’라니, 아이러니컬하지만 그 ‘미래’는 그곳에 가는 순간 ‘과거’가 되는 셈이다.

역사는 비디오 아트에서 무척 중요한 자료가 된다는 그는 수많은 자료를 영상으로 저장해왔다. 그 중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에 관한 영상은 방송국에서 자주 빌려가는 자료 중 하나다.

권녕호, 김근중, 육근병. 그들은 각기 다른 시기에, 각기 다른 작업을 위해 양평에 각기 다른 모습으로 터를 닦았다. 하지만 그들은 똑 같은 마음으로 양평을 사랑했고 동시에 예술가 마을이 생겨나면서 일어날 수 있는 문화적 성장, 즉 시너지 효과가 없음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역량이 뛰어난 작가들이 많지만 양평이란 지역 속에서 문화예술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프로젝트나 정책이 부재하다는 것. 그들이 진정 바라는 바는 일시적인 관광코스가 아니라 작가들이 지속적으로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과 그 노고를 인정해주는 분위기인 것이다. 19세기 프랑스 파리의 근교 바르비종엔 밀레를 비롯한 수많은 화가들이 풍경에 도취되어 그곳에 자리를 잡고 그림을 그렸다.

그때 그들이 남긴 그림이 예술사에 적잖은 획을 그었듯이, 머지 않아 양평의 예술가들도 하나의 사조가 되어 예술사에 남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이 피어 올리는 뜨거운 예술혼이 식지 않고 계속해서 타오를 수 있게 하는 것은 그들의 작품을 제대로 보아줄 눈과 정확하게 말해줄 입이다.

■ 양평 가는 길 & 머물 수 있는 문화공간

강변북로를 타고 덕소를 지나 양수리 다음에 만날 수 있는 양평. 북한강과 만나는 서종면, 남한강과 만나는 강상면과 강하면, 그리고 용문산이 있는 용문면을 중심으로 차 한잔과 색깔 있는 전시를 즐길 수 있는 갤러리가 산재해있다. 1998년에 개관한 <갤러리 서종>은 전시와 휴게공간을 갖춘 곳으로 전시기간이 대부분 1개월 정도이다.

개관 이후 해마다 한두 차례의 기획전과 5-6회의 개인전을 하고 있다.(문의:031-774-5530) <갤러리 아지오>는 아프리카의 쇼나조각, 생활 조각품이나 공예품을 전시하고 있다.

사전예약제로 일일 유리공예 체험, 결혼식 또는 세미나 장소 대관도 가능하다.(문의: 031-774-5121) 다큐멘터리 사진 전문 갤러리인 <갤러리 와>는 갤러리 개관 3주년을 맞아 11월 9일까지 <양종훈의 강산별곡>을 전시 중이다.

(문의:031-771-5454) 남한강 경치가 인상적인 강하면에서는 버섯 모양의 희고 둥근 지붕을 가진, 도예전문 갤러리 <몬티첼로>를 만날 수 있고(문의:031-774-9301) 복합문화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바탕골 예술관>에서는 여행과 문화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다.(문의: 031-774-0745) 문화적 교육과 모임의 장소와 갤러리를 가진 <서종 문화의 집>, 아기자기한 그림과 소품이 진열되어 있는 갤러리 <뻬르>도 마음 편히 머물 수 있는 곳이다.(문의: 031-771-6191)



이인선 객원기자 sun9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