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1600 연거푸 우승 레이싱계 돌풍… 가요차트 1등보다 더 좋아

1995년 히트곡 ‘달팽이’로 가요계를 휩쓸었던 패닉의 김진표. 가수에서 레이서로 변신한 그가 올 해는 자동차 경주장을 강타하고 있다. 프로 선수로 출전하고 있는 2008 CJ수퍼레이스 챔피언십 수퍼1600 종목에서 연거푸 우승을 달리며 종합성적 1위를 구가하고 있는 것.

지난 9월 말 용인의 스피드웨이 경기장. 경기를 마친 후 소속팀 알스타즈 부스를 찾은 김진표는 손에 붕대를 감고 나타났다.

“손가락이 탈골 됐나 봐요. 트랙을 한 바퀴 돌면서 접촉사고가 났는데 손가락이 핸들에 끼여서…손가락을 살살 만져 주니 뼈가 제자리로 돌아온 것도 같아요. 큰 부상이 아니라 다행이죠. 뭐!”

김진표의 이 날 경기 성적은 꼴찌. 그가 타고 있던 레이싱카가 다른 차량과 부딪치면서 파손돼 간신히 경기를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올 시즌 5번의 경기를 마친 그의 종합 성적은 48점으로 랭킹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 날 5전 경기에서 비록 꼴등(?)에 그쳤지만 ‘완주’를 했기 때문에 선두 자리를 지킬 수 있어서다.

“경주용 차량은 일반 승용차와 달리 파워 핸들이 아니잖아요. 순간 핸들을 손에서 놓치거나 커다란 힘을 받아 돌게 되면 손이나 손가락에 엄청난 압력이 가해집니다. 중력에 의해 엄청난 속도로 핸들이 돌아 버리니 매우 위험하죠.” “눈 깜짝할 새 다쳤다”는 그의 설명을 듣다 보니 새삼 실감나는 사실 하나. “아차, 지금 그는 가수가 아닌 레이서잖아!”

사고의 원인을 해설(?)하는 그는 프로 레이서임이 더욱 분명해진다. “ 두 째 코너에서 자리 싸움을 벌이는데 이 때가 매우 중요합니다. 최종 순위로 까지 이어지기 쉬운데 마치 전쟁터에서처럼 살아 남기 무척 힘듭니다.” 이 날 가장 마지막 순번에서 출발했던 김진표는 ‘앞서기 위해 무리를 하다 보니’ 차 구동축에 충격을 받는 비교적 ‘대형 사고’를 당했다.

“어제 예선에서 비가 많이 온 것이 직접적인 패인이에요. 평소 우천시 레이싱 경험이 적은데다 비 오는 날 훈련량도 적다 보니 성적이 안 좋았어요. 결국 차가 미끄러지면서 사고가 나 차가 반파됐는데 하룻 밤 만에 미캐닉(정비공)들이 수리를 마쳐 주는 바람에 오늘 경기에 참가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는 “레이싱은 그만큼 완주가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다시 한번 승부욕을 드러낸다.

김진표가 레이싱을 시작한 것은 3년 전이다. 하지만 유혹(?)을 받은 것은 그 보다 더 오래됐다. 그를 레이싱 경기장으로 끌어들인 ‘1등 공신’은 다름 아닌 한류스타 레이서 류시원.

“시원이 형이 10년 전부터 꼬셨어요(?). ‘너랑 잘 맞을 거다’면서 형이 적극적으로 제게 권유했거든요.” 결국 “넌 무조건 (레이싱을) 좋아하게 될 것이다”는 류시원의 예언(?)은 적중했다. “집 앞에 테니스 장 가기도 힘든데 레이싱은 오죽하겠어요? 한 번 미친 척 해볼까 시작했는데 정말 매력이 엄청난 거에요. 전까지만 해도 골프가 최고의 스포츠라 생각했는데 왜 그 동안 골프를 쳤나라고 후회할 정도입니다.”

레이싱에 대한 그의 노력도 상상 이상이다. “집에 용인 레이싱 서킷을 그려놓고 계속 쳐다 보며 지냅니다. 코스를 익히기 위해서죠. 지금도 그렇지만 저를 미치게 만드는 스포츠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는 소속팀에서도 어느 선수 보다 열심히 연습하는 선수로 정평이 나 있다. “경기 3일 전부터 위장 장애가 생깁니다. 신경을 써서 그런 것 같고, 그래도 사람이 더 욕심을 내게 되는 것 같아요. 운도 좋고 성적도 잘 나오고 있고…”

훈련량 때문에라도 올 해 그의 성적은 눈부시다. 올 시즌 5전을 마친 수퍼 1,600클래스 부문에서 연거푸 우승컵을 받아 들며 종합성적 48점으로 줄곧 선두를 달리고 있다. 같은 팀의 이동훈 선수와는 3점 차이. 특히 그가 달리고 있는 수퍼 1,600클래스는 류시원 안재모 이세창 등 대표 연예인 레이서들이 우수한 성적을 내며 거쳐간 전문 프로 레이서의 등용문 코스이기도 하다. “못하는 건 절대 못봅니다. 계속 잘 하게 만들어야만 하는 게 직성인 것 같아요.”

레이서와 가수의 차이에 대해서도 얘기가 나온다. “트랙을 달릴 때 앞 차를 추월하는 기분이 끝내줍니다. 상대 선수가 실수하든, 제가 잘 해서이든 어쨌든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니까요. 가요 차트에서 1위 하는 것 보다 더 기분 좋은 것 같아요.”

이 부분에서 그는 민감한 듯 다시 덧붙인다. “제가 가요 차트에서 1등 한지가 오래 돼 잊어버린 것도 있겠지만…. 여하간 가요 차트는 회사나 주변에서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부분이 크지만 레이싱은 트랙에서 오로지 혼자 만의 열정과 에너지로 승부가 결정이 나니까요. 아니, 미캐닉들의 도움도 있네요…”

많은 팬들은 그가 가수 활동을 안 하는지도 궁금하다. “가수 생활에는 솔직히 지장 없습니다. 매주 목, 금요일은 레이싱 연습날인데 절대 빠지지 않습니다. 요즘 음반 시장이 안좋기는 한데, 나머지 시간에는 여전히 음악 활동을 하고 있거든요. 때가 되면 무대에서 보여드릴 계획입니다. 제가 천부적 재능이 있다기 보다는 노래로서 저를 표현하는 것 뿐이에요.”

하지만 김진표는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여전히 레이싱에 열중해 있는 듯 하다. “처음에 취미로 시작했을 때는 큰 스트레스가 없었는데 이젠 스트레스가 있어요. 챔피언이란 부담감도 있고 어느 순간 제가 즐기고 있는 게 아니라 긴장하고 조바심을 내고 있는 것도 느끼거든요. 하지만 올라 갈수록 더 부담을 이겨 내야죠.” 레이서로서 그는 “1년 농사(종합성적)를 잘 지어 잘 하는 모습을 여러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힘 줘 말한다.

지난 5월 배우 윤주련과 결혼한 김진표는 현재 2세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는 예비아빠다. “다행히 제가 레이싱을 먼저 시작하고 집사람을 만났어요. 아마 결혼 후 레이싱을 한다고 했으면 결코 시작하기 어려웠을 테지요. 하지만 아내도 레이싱을 좋아하고 응원해 줍니다.” 휴대폰을 들어 만삭인 아내에게 전화를 건 그는 다정한 목소리로 ‘경기를 잘 마쳤다’고 안부를 전한다. “집에 들어갈 때 손에 감은 붕대는 풀고 들어갈 겁니다. 크게 다친 건 아니니까요.”

그를 미치게 만드는 레이싱의 매력은 과연 뭘까? “희한합니다. 욕심 부리면 차가 돌아 가고 욕심을 버리면 기록이 단축돼요. 결국 저 자신과의 싸움인 것 같습니다. 또 멋지게 추월할 때 환호해 주시는 팬들로부터 얻는 쾌감도 좋구요.”

“레이싱걸 팬들이 있음으로 해서 레이싱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레이싱걸에 대한 관심도 고마울 따름입니다. 하지만 레이싱 경기도 재미 있습니다. 깃발과 코스 선수 특성 등에 대해 조금만 들여다 보면 깜짝 놀랄 만큼 흥미와 관심이 배가되지요.” 김진표는 “레이싱걸에만 관심을 두지 말고 레이싱 경기에도 신경써 달라”고 당부했다. 김진표 선수 경기를 비롯한 CJ슈퍼레이스 6전 대회는 10월 19일 용인 스피드웨이에서 열린다.



글·사진 용인=박원식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