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보며 쇼핑 등 여가생활 변화 주도… 요금·콘텐츠 개선은 시급

역대 최고 시청율 조사에서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국민 드라마’들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드라마 시작 시간이 직장인들의 ‘퇴근 시계’였다는 점. ‘퇴근 시계’라는 말을 처음으로 유행시킨 <모래시계>의 경우, 방영 시간에는 길거리에 인적마저 드물었다는 일화는 이미 유명한 이야기다. 당시 TV 시청이 여가 생활에 미친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TV는 오늘날에도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에서 여전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2006년 말 기준으로 성인 10명 중 9명은 여가 시간에 TV를 시청한다고 보고됐다.

서울시가 지난해 주민 4만8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역시 TV 시청이 31.3%, 인터넷과 게임이 14% 등으로 나타났다. 즉 이러한 결과는 우리의 여가 생활의 폭이 여전히 좁다는 것과 함께 TV가 우리 생활과 얼마나 밀접한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퇴근 시계’와 같이 TV에 종속된 라이프 스타일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방송의 일방향성에 있었다. 시청자는 방송국이 정한 시간에, 송출하는 프로그램을 기다려 보는 수동적인 소비자였다. 그날의 저녁 약속은 신문의 TV 편성표를 점검한 후 결정된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본 방송을 볼 수 없는 경우에는 주말을 기다려 재방송을 보거나 비디오 예약 녹화를 해야 했다. 시청자는 방송국에 전화로 문의하거나 인터넷 게시판에 의견을 올려 의사를 표현할 수 있지만 실현되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대개 이루어지지 못했다.

■ IPTV, 여가문화에 변화의 바람 일으킨다

지난 2005년부터 케이블TV 디지털방송은 주문형비디오(VOD) 서비스를 선보이며 쌍방향성 방송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시청자는 안방에서 사업자의 프로그램에 들어있는 최신 영화를 고른 뒤 일반 VCR처럼 영화를 중지시키거나 인상적인 화면을 되감아 다시 볼 수도 있었다.

이달 말 본격적인 상용서비스를 앞두고 있는 IPTV는 이러한 VOD 서비스보다 진일보한 품질을 제공하며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양산할 전망이다. IPTV는 쌍방향성 서비스의 대표적인 매체였던 인터넷과 TV가 만난 디지털 컨버전스의 유형에 속한다. 따라서 초고속 광대역 네트워크를 이용해 디지털 영상서비스는 물론, 양방향 데이터서비스와 다양한 개인 맞춤형 서비스가 가능해진다.

기존의 VOD 서비스가 아직까지는 지상파의 재방송이나 유료 영화 방영에 그치고 있다면, IPTV는 화질과 내용 양(兩)측면에서 고급 콘텐츠가 초고속 통신망으로 TV에 공급돼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다. IPTV 사업자는 시청자의 콘텐츠 소비 패턴을 분석해 그에 맞게 프로그램을 공급하게 된다. 더 이상 시청자는 TV에 예속되지 않고 방송의 주도권도 공급자인 방송사나 중계업자에서 소비자인 시청자에게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또한 TV를 통해 전자상거래나 원격교육, 뱅킹 등을 간단히 처리하여 여가생활에 일대 바람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메가TV를 운영하는 KT는 IPTV 드라마를 시청하다 커서를 움직여 주인공의 의상, 촬영장소, 배경음악 등을 검색해 바로 주문을 할 수 있는 양방향 서비스를 개발해 내년부터 상용화할 예정이다.

마치 인터넷에서 모니터 화면에 마우스를 대고 정보를 검색하고 주문하는 것처럼 리모컨으로 TV 화면에서 커서를 움직여 각종 정보를 탐색하거나 이용하는 방식이다. KT의 최두환 신사업부문 부사장은 “12월부터 시험 서비스를 실시하며 내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가입자에게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 장밋빛 전망을 위해 풀어야 할 과제들

하나TV의 셋톱박스

유럽과 미국, 일본 등에서 먼저 공급된 IPTV 서비스는 콘텐츠 생산과 공급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져 시청자들이 더 많은 콘텐츠와 다양한 형태의 방송을 접할 수 있게 했다.

가입자 확보를 위해 요금 경쟁을 벌이는 통신사업자들의 행보에 인터넷 속도는 빨라지고 요금은 내려가 이용자들은 더 나은 시청 환경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이렇듯 IPTV는 TV 품질 개선과 채널 확대, 디지털 생활 서비스 등의 현상을 유발해 소비자의 여가 문화에 진일보한 변화를 초래한다.

하지만 현재 KT, SK브로드밴드, LG데이콤 등 3개 IPTV업체가 시험서비스를 제공 중이어서 긍정적인 전망만을 내놓기는 이르다. 물론 시험서비스 결과 아직까지는 만족하는 이용자가 많게 나타났다.

K리서치가 일반인 1만819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뉴미디어 방송서비스 품질 만족도 평가’에서 IPTV는 5점 만점에 3.07점의 품질 점수를 기록해 매체 중 가장 좋은 점수를 얻었다. 위성 디지털 방송과 케이블 방송은 각각 2.95점과 2.89점에 그쳤다.

이 같은 긍정적 반응이 현실로 구체화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양질의 콘텐츠의 꾸준한 수급이 전제되어야 한다. 각종 지표에서 IPTV가 상승곡선을 그리고는 있지만 아직 시장을 주도하기에는 부족한 상황이다.

게다가 IPTV가 품질면에서는 우위를 보이고 있지만 내용면에서는 불안요소도 존재한다는 한계도 지적되고 있다. 때문에 IPTV가 유료 서비스를 제공할 때 신규 가입하겠냐는 질문에는 아직 부정적인 대답이 많다. 결국 IPTV가 초기의 청사진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요금과 콘텐츠 부문에 대한 개선이 시급한 것으로 파악된다.

제공되는 콘텐츠의 수익률을 놓고 PP(Program Providerㆍ프로그램 공급업체)들과 힘겨루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IPTV 3사가 주력하고 있는 것은 양방향 교육콘텐츠다. 기존 지상파ㆍ케이블방송과 달리 IPTV가 실시간 쌍방향 교육이 가능하는 점을 집중 부각시켜 초기 시장진입의 교두보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지난 90년대 초반 시작된 PC 통신과 이후 등장한 인터넷 산업은 한국의 경제·문화적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안방문화’의 변화에서 시작될 IPTV의 바람도 어떻게 확장되고 변화될지 알 수 없다. 다만 PC 통신과 인터넷이 그랬던 것처럼 소통 구조의 양방향성이 기존의 TV 문화를 바꾸고 여가 패턴을 변화시킬 때, 진정한 IPTV의 시대가 열린다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