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 가는 산길에 짚신나물 열매가 매달린다. 여름내 산길에 밟히도록 지천이던 이 꽃을 눈여져 보아주지 않은 섭섭함을 이렇게 열매가 되어서라도 풀고 싶은 모양이다.

특별히 보아 주는 이가 없어도, 유난스런 쓰임새가 없어도 그저 이 땅의 곳곳에서 계절의 흐름을 씩씩하게 적응하며 살아가는 짚신나물이 오늘은 어쩐지 애잔한 느낌이 든다. 숲 속, 볕이 드는 길가에 자라 여리 여리 올라와선 무심한 사람들의 발길에 밟혀가면서도 언제나 싱그럽게 우리를 반기는 그 큰 생명력으로 살던 모습이 오늘 새삼스럽다.

짚신나물은 7월에서 9월까지 피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우리나라 전역의 산과 들에서 볼 수 있고 이웃한 일본, 중국, 러시아의 아무르, 히말라야, 인도차이나 등 널리 분포하는 광포종이다. 꽃대까지 모두 올라와 꽃이 필 즈음이면 허벅지쯤까지 올라온다.

서로 어긋나게 갈리는 잎은 깃털모양으로 갈라진 우상복엽으로 5~7개의 작은 잎으로 구성되어 있다. 짚신나물의 잎은 다른 식물과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특징이 있는데 소엽이 아래로 갈수록 작아지며 소엽과 소엽 사이에 더 작은 새끼소엽 같은 잎 조각이 끼어 달려있다는 점이다.

노란 색의 귀여운 꽃은 초여름부터 피기 시작하여 여름 내내 볼 수 있는데 줄기 끝에 혹은 잎 겨드랑이게 옆으로 퍼지지 않는 가늘고 긴 꽃대(수상화서)가 올라와 작고 노란 꽃들이 벼이삭처럼 줄줄이 달린다. 가느다란 꽃차례가 바람 따라 한없이 살랑이는 모습이 참 연약하게 보이지만 짚신나물의 강인함은 그 뿌리에 기원한 듯하다.

땅속에서는 아주 굵고 튼튼한 뿌리가 발달하니 말이다. 꽃은 작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모습이 여간 곱지 않아 이 식물이 장미과에 속한 까닭을 이해할 수 있다. 열매는 꽃받침통안에 들어 있는데 갈고리 모양의 털이 있어 다른 동물이나 식물의 몸에 붙어 다니며 널리 널리 퍼져 나간다.

짚신나물이라 이름 붙여진 이유는 크고 작은 잎들이 들쭉 날쭉 달리는 독특한 잎새의 모양이 짚신을 연상시키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하고, 가장자리가 톱니가 있고 주름진 잎맥이 마치 짚신을 연상시켜 그리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하는데, 짚신나물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산과 들에 흔히 자라며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그러면서도 이러저러한 용도로 긴요하게 쓰이는 모습이 짚신을 신고 사는 민초들의 삶이 이 식물이 사는 모습과 닮은 것도 같다.

한자로는 용아초(龍牙草) 또는 선학초(仙鶴草)라고 하며 그밖에 황아초, 지동풍, 자모초, 황우미, 지초 등 여러 이름이 있다. 우리말 이름으로는 지방에 따라서는 지풀, 개구리눈 등으로도 부른다.

학명에서 속명 아그리노미(Agrinomy)는 그리이스어로 가시가 많다는 뜻인데 사람의 몸에 붙어다니는 열매의 가시가 특징이 된 것이 아닐까 싶다. 파르나소스라는 서양의 산에서는 신하에게 독살될 뻔한 미트라다테스라는 왕이 이 풀을 먹도 독을 풀어 살아났다는 이야기와 함께 마법의 풀이라고 전해진다고 한다.

짚신나물은 긴요한 약재이다. 주로 지사, 수렴, 소염, 해독에 효능이 있어 설사, 지혈, 산후통증. 위계양 등 다양한 증상에 처방하며 뱀이 물리거나 옴, 기생충을 다스리는데도 쓰인다.

수렴작용이 있고 탄닌이 많아 설사와 옻이 올랐을때 특효약이라고 한다. 약으로 쓸 때에는 잎과 꽃, 뿌리를 포함한 전초를 채취, 말렸다가 쓴다. 피부염에 걸리면 이 식물의 뿌리를 삶아 바르기도 한다. 어린 잎은 식용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봄에 나는 순을 여린 잎을 잘라 끓는 물에 데치고 찬물에 우려 떫은맛을 제거한 후 무쳐먹는다. 물기를 말린 생 잎을 튀겨 먹기도 한다.

짚신나물이 미련을 버릴 즈음이면 가을도 간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00@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