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우물 안 개구리' 벗어나라"한식을 알고 영어 통하는 전문인력 양성·공격적 마케팅 필요

“내 방 안에서 문 걸어 놓고 ‘한국 음식 최고야!’라고 아무리 외쳐도 지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듣지 못합니다.”

두바이 최고의 호텔로 일컬어지는 ‘7성급(seven star)’ 호텔인 ‘버즈 알 아랍 호텔’ 의 수석 총주방장, 에드워드 권(권영민). 남양유업의 치즈 ‘드비치’ 광고 모델로도 유명한 그가 ‘한식의 세계화’에 대해 ‘무척 쓴 소리’(?)를 던졌다. 10월 16일 서울 aT센터에서 열린 코리아 푸드 엑스포에서의 ‘한식 세계화 세미나’ 연단에서다.

“한국 음식의 세계화요? 하지만 우리 내부를 들여다 보면 아직도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보다 더한 문제는 우리 스스로가 여전히 ‘우물 안’에만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음식의 세계화 방안에 대한 토론에서 나온 그의 첫 마디는 매우 매서웠다. 일반적으로 그가 연사로 나선 포럼이 우리 음식의 우수성이나 잠재성을 소위 ‘칭송하거나 찬양(?)’하는 자리가 되기 쉽다는 청중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소리이기도 하다.

먼저 그는 여러 발표 주제 중 첫 제목을 ‘우물 안 개구리?’로 잡았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음식을 세계화가 되지 못하게끔 만들고 있지 않냐는 의문에서다.

“음식이라 함은 문화적 접근입니다. 음식은 문화이자 즐거운 경험이고 음식을 통해 삶 속에 자리 잡아 가야 합니다. 일례로 서울 시내 대부분의 특급 호텔들은 한식당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외국인이 찾는 관문인 호텔이 이렇다고 한다면 과연 몇 명의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해 제대로 된 한국음식을 먹고 간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호텔 외부의 한식당들이 정답도 아니다. 그는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외부 식당이 많고 그들이 찾을 수 있는 곳이 많다’라고 말하지만 과연 서울시 몇 군데의 식당이 외국인이 접근하기가 쉽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요?”

실제 외국인들에게 한식은 고작 돌솥비빔밥, 우거지 설렁탕, 해장국, 북어국이나 미역국 정식 정도로 전락해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 ‘적잖은 현실’이라고 그는 진단한다.

강연을 마친 에드워드 권 셰프가 청중들에게 둘러싸여 사인해 주고 있다. 인기 폭발!

에드워드 권이 두바이의 주방 현장에서 겪은 경험담은 ‘마냥 기대에만 부풀어 있는’ 우리를 더욱 실망케 한다.

“최근 제가 몸담고 있는 두바이의 호텔에서 한국 음식 페스티벌을 했습니다. 손님이 많은 시기에 열리기도 했지만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그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뼈 아픈 수준 차이’를 실감했다.

“행사가 열리기 전 4개월 전부터 언론을 통해 홍보가 됐습니다. 당연히 한국 음식에 대한 기사이지요. 그런데 보도를 보고 제게 가장 먼저 달려온 이들은 일본인이었습니다. 일본 식자재를 공급해 줄 테니 써보라는 제안입니다.” 처음에 거절했지만 그는 이후 무려 40여 통이 넘을 정도로 집요하게 이메일을 받았다.

“정말 끈질겼습니다. 일본산 생선과 야채 육류 등의 품질이 우수하니 일단 써보라는 권유였지요. 그런데 더한 것은 그들이 개인 사업가가 아니라 일본의 한 지방자치단체 공기업이라는 점입니다.” 여기서 그는 ‘우리나라 음식은 그런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고 있는가?’라는 의문에 부닥친다.

역으로 현지에서 한식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 애썼던 그의 노력은 더욱 애절(?)하다. “한식을 준비하기 위해 재료들을 찾아 뒤졌는데 두바이 어디에도 원하는 재료가 없었습니다. 소주를 마련하려 백방으로 애쓰다가 겨우 대사관에서 미리 주문해줬던 재료를 가로채(?) 구할 수 있었습니다.”

해외에서 한식이 사랑과 관심을 받으려면 먼저 식재료가 유통이 돼야 하는데 그는 이와 관련, ABC~부터 필요한 작업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더불어 “해외에서 열리는 한국 음식 전시의 자세부터 전환이 필요하다’고 그는 역설한다.

“세계 음식 전시회에 참가한 한국 부스를 보면 으리으리합니다. 많은 돈을 들여 크기도 큽니다. 하지만 관계자들은 영어가 안되서인지 그냥 앉아 있고 현지 아르바이트 직원들이 간단한 설명을 해주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야 어떻게 한국 음식이 세계화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는 현실적으로 한국 음식이 세계화되기 위해서는 전시회 참가 보다는 식재료 주문 권한을 쥐고 있는 각 호텔 주방장들을 먼저 찾아 방문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고 제시한다. 똑 같은 돈을 들일 바에야 공격적인 마케팅이 더욱 실효를 거둘 수 있다는 것. “과연 우리는 시장을 제대로 읽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김치에 대한 그의 지적은 대다수 일반인들의 자존심과 기대를 차라리 ‘짓밟는’ 수준이다. “우리가 김치의 세계화를 많이 얘기하죠. 하지만 실제 외국인들에게 얼마나 파고 들었냐를 따지면 현실은 다릅니다.” 우리 스스로는 김치가 이미 세계적인 음식이 됐다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 김치에 대해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 “아니, 오히려 김치가 세계적인 음식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것이겠지요. 그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일례로 삼합이나 김치찌개가 유럽이나 미국의 외국인들에게 통할 것이라고 그는 보지 않는다. 굉장히 힘들다는 것이 그의 진단. 하지만 중국이나 일본, 동남아에는 파고들 여지가 많다고 그는 본다. 우리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논리다.

“우리와 같은 아시아 국가인 태국은 세계적인 요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왜? 스파이스가 태국의 맛이라고 하면 그런 스파이스는 이미 유럽이나 미주의 요리에 사용되고 있었던 덕분이기도 합니다.” 이에 비해 한국 음식은 서양인에게 전혀 낯선 요리라 더욱 접근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우리 것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라고 그가 단언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넓은 안목으로 깊고, 길게 봐야 합니다. 또 해외에서처럼 국내 시장에서도 스타 셰프가 출현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는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인력 양성과 투자 지원을 제시한다. 무엇보다 한식이 세계화되기 위해서는 한식을 잘 이해하면서도 영어가 통하는 전문 인력이 반드시 양성돼야 한다는 것이 그가 제시하는 첫번째 전제조건이다.

“국내 방송을 보니 푸드 프로그램은 드라마나 예능이 아니면 안된다고 얘기들었습니다. 하지만 음식은 전문가와 함께 나아가야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제가 많은 돈을 들여 한국에 자주 오가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셰프 반열에 든 그는 국내에 머무는 동안 미나리와 깻잎을 잔뜩 사들고 두바이로 돌아갈 예정이다. “외국에 사는 유명 셰프라는데 비닐 봉다리에 채소만 싸서 간다니 우습죠!”



글ㆍ사진 박원식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