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 전문가 심사위원 활동… 성향따라 수상자 정해져

최근 문단에서는 때 아닌 표절논란이 한창이다.

신인 작가 주이란 씨는 조경란 작가가 자신이 재작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공모했던 단편 <혀>를 표절해 장편소설을 발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 조경란 작가는 신춘문예 예심 심사위원으로 참여했고 주이란 작가는 공모에서 떨어졌다. 공모에 냈던 원작은 파기된 상태다.

주이란 씨는 조경란 작가가 올해 동인문학상 후보에 오르면서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저는 영혼을 도둑맞았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고 부제를 “조경란의 소설 <혀>는 표절입니다”라고 달았다.

주이란은 올해 9월, 2006 동아신춘문예에 공모했던 단편 <혀>를 포함한 단편집을 냈고, 소설집 띠지에 “<혀>의 작가 조경란이 2006년 심사한 주이란의 혀”라고 적어 표절의혹을 노골적으로 밝혔다. 그 후 조경란 작가가 올해 동인문학상을 수상하며 표절논란이 일파만파로 퍼지게 된 것이다.

인터넷의 뜨거운 반응에 비해 전문가들의 반응은 조용하다. 비교적 진보적 성향의 평론가들조차 “표절이 아니다” 혹은 “표절로 보기에 논거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표절논란으로 문학상과 문단권력에 대한 비판이 수면 밖으로 나왔지만, 사실 문학상으로 점철되는 문단권력 비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작가의 등용문인 등단제도와 신인상 심사에서 기존 작가들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등단 후에도 기성문단의 문학상 수상은 작가의 이름을 알리는데 중요한 구실을 한다.

각 출판사의 주간과 문학평론가, 거장의 반열에 오른 중견ㆍ원로 작가는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며 후배 작가들에게 ‘작품성’을 부여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는 전문가가 한정돼 있고, 이들의 성향에 따라 문학상 수상자가 정해진다는 점이다.

국내 문학상은 대략 200여 개. 그러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는 전문가 또한 그와 비슷한 숫자다. 결국 명성을 확보한 소수의 전문가가 여러 개의 문학상을 동시에 심사하며 영향력을 끼친다는 말이다. 조경란 작가는 신춘문예 심사위원을 담당하면서 기성문단의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점에서 스스로 문단 권력인 동시에 그 수혜를 입었다는 시각이 있다.

계간지 <시평>은 재작년 가을 호에서 젊은 시인을 대상으로 국내 문학상 심사제도에 대한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작가들은 심사과정 기준의 불투명성(40%)과 같은 심사위원이 여러 문학상을 심사하고(40%) 한 작가 여러 개의 문학상을 수상하는 점(27%) 등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작가들의 ‘심증’은 ‘팩트(fact)’를 근거로 한 것일까? 2000년부터 올해까지 국내 주요 문학상의 수상자와 심사위원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 중복 수상, 심사위원을 주목하자

2000년 이후 한 작가가 여러 개의 문학상을 수상하는 현상은 예전에 비해 더 늘어났다. 소설가 김영하 씨의 경우 2004년 한 해에만 동인문학상과 이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해 스스로 ‘그랜드슬램’이란 표현을 썼다. 소설가 김 훈 역시 2001년 동인문학상을 비롯해 2004년 이상문학상과 2005년 황순원문학상, 2007년 대산문학상을 수상하며 ‘한국 문학에 벼락처럼 쏟아진 축복’이 됐다.

전문가들은 한 작가가 여러 개의 문학상을 수상하는 배경에 대해 ‘수상 작가에 대한 심사위원의 신뢰’때문이라고 말한다. 한 평론가는 “한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아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가 다른 영화제에서 연거푸 수상하는 것처럼 문학상 역시 한번 수상함으로써 ‘명성’을 쌓게 되면 심사위원의 신뢰를 받게 된다”고 말했다.

심사위원은 자신이 참여했던 문학상에서 수상한 작가에 대해 신뢰를 갖고 있기 때문에 다른 문학상을 심할 때도 후보작으로 추천하게 되고, 또한 눈여겨 읽게 된다.

이런 경향은 2000년 이후 주요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와 심사위원의 상관관계에서도 드러난다.

한국일보문학상,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시, 소설부문), 대산문학상(시, 소설부문), 이상문학상, 이산문학상, 만해문학상, 백석상, 미당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 10개 주요 문학상의 2000년 이후 수상작을 분석한 결과 2개 이상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18명 중 11명이 적어도 한 명 이상 같은 심사위원에게 최종 심사를 받았다.

조경란 소설가는 2003년 현대문학상과 올해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는데 두 번 모두 김화영 문학평론가와 오정희 소설가가 최종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김화영 평론가는 최근 표절논란의 중심에 선 소설 <혀>의 단행본 출간 때 평론을 담당했다.

최승호 시인은 2000년 대산문학상과 2002년 현대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유종호 문학평론가와 정현종 시인이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2003년 <텔레비전>으로 미당문학상을 수상했을 때도 유종호 평론가가 심사에 참여했다. 김연수 소설가 역시 2005년 대산문학상과 2007년 황순원 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박범신 소설가, 조남현 문학평론가가 두 번 모두 최종 심사위원이었다.

이외에 김광규 시인이 2003년 대산문학상과 2007년 이산문학상을 수상했을 때는 신경림 시인이 최종심사위원으로, 김명인 시인이 2000년 현대문학상과 2001년 이산문학상을 수상했을 때는 황동규 시인이 최종심사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여러 문학상을 받는 작가의 경우 심사위원이 중복되는 경우가 많았다. (도표 1. 참조)

물론 심사위원과 수상자 상관관계가 우연의 일치 일 수도 있다. 2000년 이후 4번의 주요문학상을 수상한 김 훈 소설가의 경우 2001년 동인문학상과 2007년 대산문학상 최종심에서 박완서 소설가가 심사위원으로 활동했지만, 최종 심사위원을 모두 살펴보면 ‘우연의 일치’라고 밖에 볼 수 없다. 황석영 소설가 역시 2000년 이산문학상과 2001년 대산문학상을 수상할 당시 김병익 문학평론가가 최종심사위원으로 참여했지만, 황석영 작가의 작품성을 의심하는 독자는 없다.

■ 정해진 인맥풀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는 전문가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2000년부터 올해까지 9년간 10개 주요문학상의 108개 최종 심사위원단(현대문학상과 대산문학상은 시와 소설 두 장르만 분석)을 분석한 결과 심사위원은 89명에 그쳤다. 적게는 2~3명에서 많게는 8명이 심사위원단을 구성한다는 점에 비춰보면 한 심사위원이 여러 문학상을 심사한다는 말이 된다.

이런 일은 이미 문단에서 관행이 된 지 오래다. 일례로 명지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인 김윤식 평론가는 2000년부터 올해까지 현대문학상 소설부문 최종심사위원으로 활동한 것 이외에도 황순원문학상과 한국일보문학상, 이상문학상 등 주요 문학상 중 한 해 평균 2~3개의 문학상 최종심사에 참여했다.

김화영 문학평론가는 2000년부터 올해까지 한국의 양대 문학상이라고 불리는 동인문학상과 현대문학상(소설부문) 최종 심사를 담당하고 있다. 유종호 문학평론가 역시 2000년부터 올해까지 동인문학상 최종 심사를 담당하고 있으며 2002년부터 올해까지 현대문학상 시 부문을 심사하고 있다.

원로 소설가 박완서 씨는 2006년 한 해에만 동인문학상과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황순원 문학상 등 4 개 문학상을 심사했고, 원로 소설가 오정희 씨 역시 올 한 해에만 동인문학상과 현대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 3개 문학상을 심사했다.

평단과 대중에게 두루 인정받은 문학 전문가가 그 만큼 적다는 뜻과 함께 우리 문단의 보수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오창은 문학평론가는 “국내 문학상이 많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문학상의 특징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문학상의 심사위원이 한정 돼있기 때문이다. 젊은 작가의 파격을 높이 사는 문학상이 있는가 하면, 사회문제에 대한 깊은 견해를 높이 사는 문학상도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올해 수상자가 내년 심사위원

심사위원이 정해져 있다 보니 이름 있는 문인들은 심사와 수상을 번갈아 하는 현상을 보인다. 대표적인 예가 미당 문학상이다. 2001년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이 상은 중앙일보에서 주관하고 있다. 8년 간 수상자와 심사위원을 분석해 보면, 문학상 수상자가 이듬해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제 1회 수상자인 정현종 시인은 이듬해 2회 심사위원으로 활동했고, 2회 수상자 황동규 시인 역시 3회 심사위원이 됐다. 3회 수상자 최승호 시인은 4회 째인 2004과 2006년에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5회 수상자 문태준(38) 시인을 제외하고 매년 이런 방식이 되풀이 되고 있다. (도표 2. 참조)

역시 2001년부터 중앙일보에서 주관하고 황순원 문학상도 총 8회 심사 중 3회가 이전 해 수상자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형태다. 1회 수상자인 박완서 소설가가 2회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고 2회 수상자 김원일 소설가는 3회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2006년 제 6회 수상자 구효서 작가는 이듬해 심사위원이 됐다.

수상자가 이듬해 바로 심사위원이 되는 사례는 두 문학상뿐이 아니다. 2000년 <그로테스크>로 8회 대산문학상을 받은 최승호 시인은 이듬해 제 9회 대산문학상 시부문 예심 심사에 참여했다.

2003년 <처음 만나던 때>로 제 11회 대산문학상(시 부문)을 수상한 김광규 시인은 이듬해 12회 이 상의 본심 심사위원으로 활동했고, <그 여자의 자서전>으로 14회 대산문학상(소설 부문)을 수상한 김인숙 작가는 이듬해 15회 대산문학상 소설부문 예심 심사를 담당했다. <바다의 호수>로 6회 백석상을 받은 이시영 시인 역시 이듬해 7회 백석상 본심 심사위원이 됐다.

그러나 대산문학상과 백석상이 비영리재단과 출판사(창비) 주관의 문학상인데 반해 미당문학상과 황순원 문학상은 메이저 언론사에서 주관한다는 점에서 “문인의 언론 길들이기”란 것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대산문학상은 16회 중 3회, 백석상은 10회 중 단 1회 수상자가 이듬해 바로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이런 문학계 풍토를 바라보는 문인들의 마음은 착잡하다. 한 평론가는 “문학상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식어버린 지 오래다. 문단은 ‘그들만의 잔치’를 즐기는 학생들의 학예회 같다”고 꼬집었다.

황정산 대전대 교수는 ‘누구를 위한 문학상인가’란 기고글을 통해 “작금의 현실은 거의 모든 문학상이 상업성에 의해 조종되고 있는 현실”이라며 “문학상의 권위가 떨어졌다는 사실은 (차라리)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비판했다.

문학상이 넘치고 문인들이 길을 잃으면서 한국 문학이 위기에 빠졌다는 자성의 소리가 나온지 오래다. ‘등단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였던 시절, 그래서 소수의 문인들로 채워졌으나 한국 문학계가 시대를 대변하던 때가 ‘전설’로 기억되는 요즘, 문학상 제도의 전환과 개선이 요구되고 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