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명품 브랜드 도약 등용문전세계 170여 업체 새 트렌드·디자인 경연·미래스타 디자이너 발굴

이탈리아 패션의 본고장, 밀라노!

매년 봄, 가을 한 차례씩 패션쇼가 집중되는 패션 위크 기간 밀라노 시내는 더더욱 활기를 띤다. 올 가을 시즌 밀라노 패션 위크 주간은 지난 9월의 마지막 주.

2009년 봄 여름 시장을 겨냥한 이번 패션 위크 기간 역시 도심의 호텔과 연회장 등에서는 유명 브랜드들의 각종 컬렉션 전시와 바이어, 방문객들의 비즈니스 모임이 이어지며 꽤나 분주한 모습을 연출했다.

그리고 또 하나, 도심 한 켠 비아 토르토나(Via Tortona) 거리에 자리한 스파지 엑스-안살도 전시장(Spazi Ex-Ansaldo). 이 곳 또한 패션 위크 기간이면 어김없이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다. 역시 화려한 ‘패션쇼’가 열리기 때문에? 아니, 감각적이고 화려한 ‘패션 디자인 전시회’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전시회 이름은 ‘터치-네오존-클라우드나인(Touch-Neozone-Cloudnine)’. 획기적이며 실험적인 디자인을 바탕으로 한 최고급 수준의 여성 패션 전시회로 해마다 패션위크에 맞춰 밀라노 시내에서 개최되고 있다. 전시 주관은 이탈리아 대표 전시 기업인 피티 이마지네(Pitti Immagine).

“우수하고 훌륭한, 젊은 디자이너들의 작품들을 중심으로 엄선해 한 자리에서 보여주는 여성 전문 패션 디자인 전시회라 할 수 있습니다. 품목도 여성복 뿐 아니라 액세서리, 구두, 가방, 스포츠 의류 등 패션 전 분야에 걸쳐 있습니다.” 전시 주관처인 피티 이마지네의 홍보 담당 리사 키아리 양은 “전시 참가 업체는 물론, 바이어 등 고객까지도 모두 이탈리아나 유럽 만이 아닌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전시회 이름에서 드러나듯 실제 전시도 품목, 분야별로 구분해 진행되고 있다. 주최측에 따르면 ‘터치’는 개성있는 페미닌 엘레강스 존, ‘네오존’은 쉬크하면서도 컨템포러리한 럭셔리 스포츠웨어, ‘클라우드나인’은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액세서리 존으로 각각 표현된다. 3개의 전시장은 각각 다른 공간에, 다른 콘셉트로 꾸며 놓았다.

“패션 위크 기간 밀라노 시내에서는 수많은 브랜드들의 패션쇼가 열립니다. 보통 20~30여분 간의 쇼를 보고 나서는 곧바로 비즈니스 상담과 만남들이 이어지는 형식이죠. 하지만 그 바쁜 와중에도 패션 관계자들이 짬을 내 이 전시회를 찾는 이유는 ‘뉴 트렌드’의 발굴 때문입니다.”

리사 키아리 양은 “젊고 우수한 디자이너와 패션 작품들을 위주로 하는 이 전시회는 이탈리아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명품 진출의 전초전 역할을 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아직은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실력이 있고 가능성 높은 디자이너들이 전시회를 통해 발굴이 되면 이들에게 유명 디자이너 혹은 명품 브랜드로 도약하는 등용문이 된다는 것.

때문에 전시회에 참가한 브랜드나 디자이너들의 부스 규모만을 보면 결코 크다고는 할 수 없다. 이들이 아직은 자본이라든가 디자인의 산업화 혹은 비즈니스화 경험 등에서 대부분 일천하기 때문. 그럼에도 ‘미래의 명품’을 꿈꾸는 이들 디자이너나 패션 업체들은 창의성이나 작품성에서 획기적이고 실험적이면서도 최고급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주관사인 피티 이마지네가 전시회를 위해 쏟는 정성과 노력도 각별하다. “담당자들을 전세계 각지로 보내 재능있고 참신한 인재들을 찾아내도록 합니다. 그리고 이들이 미래의 스타가 될 수 있도록 전시회를 통해 캐리어를 쌓아 나가도록 돕고 있지요. 하지만 저희들이 고르는 기준은 무척 까다롭고 매우 ‘선택적’입니다.”

올 해 전시에 참가한 디자인 패션 브랜드는 대략 170여개. 전시를 주관한 아고스티노 폴레토 부총지배인은 “피티 이마지네는 해마다 반짝반짝하고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채용하는데 더욱 중점을 둔다”며 “다른 전시회에서는 찾아 보기 힘든 혁명적인 디자인의 집합과 배합을 매번 보여주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고 설명한다.

실제 이 전시회를 거쳐 유명 디자이너나 패션 브랜드로 스타덤에 오른 경우도 적지 않다. 바이어 담당 안드레아 무그나이니 씨도 “전시회가 발견한 미래의 인재들이 성장해 가면서 유명해지는 것을 자주 본다”며 “그럴 때 마다 대부분 우리들의 선택이 옳았음을 확인하게 된다”고 덧붙인다.

더불어 전시회를 찾는 방문객들의 숫자도 해마다 크게 늘어나고 있다. 집계되는 바이어 숫자만 평균 6,500여명. 일반 관람객까지 계산하면 더 늘어난다. 물론 이탈리아 국내는 물론, 유럽, 미국, 일본 등 전세계에서 찾아 오는 이들을 합한 숫자다.

그렇다고 이들이 이 전시회를 애써 찾는 이유는 단순히 새로운 트렌드나 독특한 디자인, 미래의 스타 디자이너 발굴 때문 만은 아니다. 다름 아닌 ‘명품으로부터의 탈출’이란 효과도 더불어 얻기 때문이다.

“지금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소비자들이 그냥 이름만 보고 제품을 구입하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과거 많은 이들이 유명 제품이라는 브랜드만 보고 비싼 가격을 주고 제품을 사던 시절도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그런 트렌드가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피티 이마지네의 로베르토 루타 브랜드 오피스 팀장은 “그래서 이 전시회를 찾은 이들 또한 결코 이름에 집착하지 않고 디자인이나 작품성을 보고 제품을 선택하려는 현명한 소비자 구매선택 성향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해석한다.

피티 이마지네에서 일하는 일본인 주재원 세이코 루루벨 히라바야시 씨는 이에 대해 “만약 당신이 ‘좋은 눈(안목)을 갖고 있다면 이 전시회는 천국(파라다이스)’라고 한 마디로 요약한다. 수많은 제품들과 함께 뒤섞여 전시돼 있지만 그 안에서 잘 찾기만 하면 훌륭한 제품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는 의미인 것.

이미 이름값이나 유명세에 의한 명품 구매 패턴 변화가 감지되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로는 일본이 꼽힌다. 해마다 이 전시회를 찾는다는 단스 라비에사의 일본인 디자이너 겸 바이어 리라 수가와라 씨는 “일본에서는 자기만의 독특한 개성있는 패션을 추구하는 성향이 날로 강해지고 있다”며 “이들이 이 전시회의 제품군과 딱 들어맞는 신 소비자층”이라고 전한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이름이 좌지우지하는 소위 ‘명품 바람’이 마냥 계속된다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소비자의 성향은 항상 변화(Shift)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전시회를 취재차 찾은 일본 패션 잡지 ‘FN’의 사라 안도 기자도 “뛰어나지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패션 상품들이 눈에 많이 띈다”며 “전시처나 이 곳 디자이너들 입장에서 일본이 주요 시장으로 인식된다”고 분석한다.

그렇다고 이 전시회가 기존의 유명 브랜드 제품들과 따로 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신진 디자이너들의 신제품군과 함께 명품 브랜드들 중에서도 함께 전시에 참가하는 곳들도 적지않다. 하지만 이 전시회는 전시(exhibition)에 치중할 뿐 다른 개별 패션 브랜드들처럼 패션쇼(show)를 내세우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이 전시회가 또한 관심을 집중시키는 이유 중의 하나는 패션과 문화, 아트, 예술을 접목시킨다는 데 있다. 이번 전시 기간에 맞춰 동시에 ‘이탈리아 전통 실내 여성복 패션쇼’와 ‘환경 의류 전시회’를 같이 열고 있는 것이 당장의 사례. 특히 1900년 초부터 중반까지 이탈리아 여성들이 집에서 입었던 의상들만을 모아 전시하는 내용들은 사진과 함께 책으로도 발간돼 인기를 모으고 있다.

전시와 문화 예술과의 통합은 이 전시회가 거두는 부수적인 효과에서도 또한 확인할 수 있다. 전시회가 열리는 지역은 한 때 중공업 공장들로 가득 찼던 공업 지역. 전시장도 예전에 공장으로 쓰던 건물을 외벽과 실내 대부분을 그대로 둔 채 일부만을 개조해 사용하고 있다. 공장의 구조와 시설은 여전히 살아 있지만 벽면이나 바닥 조명 등 필요한 시설들을 예술적으로 개조(?)한 수준.

하지만 피티 이마지네가 이 곳에서 패션 디자인 전시회를 열면서 인근 거리도 패션과 문화 예술 거리로 변모하고 있다. 최근에는 아틀리에와 쇼룸, 사진 스튜디오 등 각종 문화 공간을 비롯, 주요 명품 숍들도 모여들며 또 하나의 트렌드 공간을 창출하고 있는 것.

피티 이마지네의 로베르토 루타 브랜드 팀장은 “피티 이마지네의 전시회는 단순한 제품 진열이나 패션 행사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패션과 음식, 와인, 그리고 문화와 예술까지 어우러진 또 하나의 문화 트렌드를 창조해 내는 데 목표를 둔다”고 강조했다.

■ "트렌드·패션 새 안목의 장 되길"
라파엘로 나폴레오네 피티 이마지네(Pitti Imagine) CEO
이탈리아 최고 전시 컴퍼니 최고수준제품·창의력으로 유행 선도


1- 터치·네오존·클라우드나인 전시회가 열리는 밀라노 시내의 스파지-엑스 안살도 전 시장. 중공업 공장으로 쓰이던 빌딩을 현대적이면서 예술적인 공간으로 개조했다.
2- 과거 공업지대에서 패션 문화 예술의 거리로 변모하고 있는 비아 토르토나 거리
3- 터치 전시장 부스
4- 디자인 전시와 함께 열리고 있는 특별 기획 환경(이콜로지컬) 의류 전시회
5- DJ가 전시장에 흘러 나오는 음악을 틀고 있다.
6- 전시장 휴게실
7- 이탈리아 전통 실내 여성복 패션쇼

"한국의 패션 소비자들이 터치-네오존-클라우드나인 전시회를 통해 유행의 새로운 안목을 발견하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젊고 혁신적인 패션 아이디어의 컬렉션 '터치-네오존-클라우드나인' 전시회를 주관하는 곳은 이탈리아 최고의 전시 컴퍼니인 피티 이마지네(Pitti Imagine). 이 회사의 수장을 맡고 있는 라파엘로 나폴레오네 최고경영자(CEO)는 "이 전시회는 제품이나 의류를 단순히 보여주는 것이라기 보다는 트렌드와 패션을 소개하는 공간이자 기회"라고 요약했다.

"비전을 제시하면서도 창조적이고 또 실용적이면서도 강력한…" 그는 전시회의 성격에 대해 화려한 형용사들을 대거 동원해 표현하는 것으로 먼저 말문을 열었다.

피티 이마지네는 이탈리아 피렌체(플로렌스) 지방을 근거로 활발한 비즈니스를 벌이고 있는 전시 전문 회사. 공기업 성격이 강해 회사의 자체 수익을 남기는데는 거의 신경쓰지 않고 대신 전시 사업을 통해 산업 부문에 한 해 3,000만 유로 이상의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우리가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는 여성 의류 뿐만이 아닙니다." 피티 이마지네는 남성정장, 아동복, 음식과 와인, 향수 등 생활 문화와 관련한 이탈리아 대표 전시회를 주최하고 있는 것으로도 이미 유명하다.

"무엇보다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부분은 최고 수준의 제품력과 창의력입니다. 한 마디로 최고 지향의 전략이지요." 나폴레오네 대표는 "피티 이마지네는 시장에서 최고만을 지향한다"고 강조한다.

"디자인이나 제품들은 각각의 역사와 품질, 정체성을 갖고 있습니다. 패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어떻게 표현되어야 하는 가를 먼저 봅니다."

그는 최근 이탈리아에서 자신의 취향에 따라 차량을 제작하는 피아트의 신차량 치코첸토나 루이뷔통의 한정판(리미티드 이디션) 제품들이 특히 인기를 끄는데 주목한다. 사람들은 보다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보이는데 더욱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데 패션에서도 그 같은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것.

때문에 피티 이마지네가 주최하는 전시회는 고품격이란 점에서도 탄탄한 명성을 유지해오고 있다. "이번 전시회 경우 해 마다 200여개 내외의 디자이너나 소기업들이 참여합니다. 하지만 참가를 제의했다가 거절당하는 곳도 100여 곳이 넘을 정도입니다." 나폴레오네 대표는 "얼마나 까다롭게 디자이너와 전시 제품을 선정하는지 둘러보면 알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전시회에 참여하는 신규 회사나 디자이너의 비율도 매우 높다. 해마다 새롭게 전시회에 참여하는 디자이너와 제품 비율은 무려 40~50% 이상이나 된다. "어떤 디자이너들은 한 해만 참가하고 다음부터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도태됐다구요? 아니, 커다란 바이어를 만나거나 후원자를 얻어 독점적으로 제품을 공급해 달라는 제의를 받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만큼 수준이 높다는 얘기이지요."

"피티 이마지네는 가장 창의적이면서 문화적인 전시회를 개최하는 것으로도 이름 높습니다.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내기도, 또 문화와 예술과 접목시키는 시도를 하는 것도 이탈리아에서 가장 먼저 시도한 것들입니다."

1950년 대 피렌체에서 첫 여성 전문 패션 전시회를 가지면서 역사를 쌓아 온 피티 이마지네가 여성 패션 전시회를 위해 밀라노로 옮겨 온 것은 최근의 일. "패션위크 기간에 맞춰 전시 장소만 옮겨 온 것입니다. 더욱 큰 시너지 효과를 얻기 위해서죠." 하지만 피티 이마지네의 전시회 대부분은 피렌체를 근거로 여전히 진행중이다.

"일본에서 패션 전시회를 주기적으로 갖고 있습니다. 한국도 관심을 쏟고 있는데 머잖아 시장이 무르익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곧 반응이 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명품 브랜드에만 집착하는 듯한 한국 시장도 개별 디자인의 가치와 잠재력을 높이 사주는 시장 트렌드로 옮겨가게 될 것"이라고 진단하는 그는 "앞으로 한국 시장을 자주 찾아 오겠다"고 말했다.



글ㆍ사진 밀라노(이탈리아)=박원식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