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미술을 만나다'의 저자 15~20세기 교회미술서 인간고민·갈등 현실 반영으로 변화

서양의 역사와 문화를 알기 위해서는 꼭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바로 성경과 그리스, 로마 신화다. 유학과 불교가 우리 국민의 역사와 의식을 지배하듯 성경과 신화, 이 두 개의 코드는 서양의 의식을 지배한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단지 기독교 경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는 하나의 종교에 머물지 않고 서양 문명의 토대가 됐다.

미술사에서도 기독교가 끼친 영향은 절대적이다. ‘위대한 서양미술’의 시작은 위대한 교회미술에서 비롯됐으니까. 성서는 근대사회로 들어서기 전까지 중세 이후 서양미술에서 가장 중심 되는 화두였다. 미술이 교회를 위해 존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서양미술에서 가장 중심 되는 주제였던 성서는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실생활에서 종교가 쇠퇴하면서 화두에서 벗어났다. 현대미술은 자연을 재현하거나 내용과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형식과 본질, 조형성의 법칙을 발달시키면서 형식주의로 나아가게 된다. 당연히 현대 미술은 종교와 결별했다.

현대미술을 감상하는데 기독교는 이제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일까? 책 <성서 미술을 만나다>는 중세와 근대 미술은 물론 현대 서양 미술을 이해하는 데도 여전히 성서의 영향력은 유효하다고 말한다. 다만 현대 미술가들은 종교의 역할이나 교회의 목적을 위해 종교화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주제를 통해 시대와 개인의 구원을 희망하고 인간 실존의 문제에 화두를 던진다.

책의 저자 김현화 교수는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사학을 가르친다. 책 출간에 대해 그는 “한국에서 성서를 주제로 한 미술사 관련 서적들이 대부분 19세기 이전 미술로 한정되어 있다”며 이 책의 차별성에 대해 설명했다. 저자는 15세기부터 추상미술이 등장한 20세기까지 서양미술가의 작품에서 성서가 어떻게 등장하고 활용되고 있는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했는지에 주목한다.

■ 성서는 미술의 원천


책은 서양미술사에서 종교의 역할이 끝난 근대 미술에서 시작된다. 미켈란젤로는 신이 아담을 만든 ‘천지창조’의 신비를 1508년부터 4년 동안 높이 20m, 길이 41.2m, 폭 13.2m의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재현했다.

신은 최초로 빛을 창조하고, 해, 달, 초목과 짐승 등 모든 생물체를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흙으로 사람을 빚어 코에 숨을 불어 넣어 생명체를 만드니 그가 아담이다. 미켈란젤로는 아담이 코 대신 손가락 끝으로 생명의 숨결을 받아들이는 모습으로 ‘아담의 창조’를 그렸다.

해바라기의 작가 반 고흐 역시 성서와 관련된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특히 귀를 자른 후 입원한 생 레미의 폴 정신병원에 입원한 후 1년 동안 그는 300점에 가까운 유화와 소묘를 제작하면서 많은 종교화를 남겼다. 천사가 나타나 자신을 구원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천사’(1889)를 그렸고, 수많은 화가들의 영감을 자극한 ‘피에타’(1889)도 그렸다.

피에타는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를 안고 슬퍼하는 마리아에 관한 그림이나 조각을 말한다. ‘천사’는 렘브란트의 그림을, ‘피에타’는 들라크루아의 것을 보고 개작한 것이다. 저자는 “청색과 노랑의 대비는 반 고흐의 희망과 절망이 교차되는 심리상태를 반영하는 듯하다”고 설명한다.

반 고흐와 함께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로 꼽히는 폴 고갱은 성서를 그리긴 했으나, 그림 속에 신앙을 담지는 않았다. 대표적인 작품이 ‘설교 후의 환영’(1888)으로 브르타뉴 여자들이 설교를 듣고 난 후 환영 상태에서 경험하는 상상의 세계를 묘사했다. 작품을 통해 고갱은 성서의 이야기를 충실히 전하기보다는 브르타뉴 지방을 배경으로 현실과 환상을 결합시켜 풍요로운 상상과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샤갈에게 종교는 일상생활이었다. 샤갈의 그림에서 종교적 주제는 교리나 특별한 신념, 신앙심을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평범한 일상 중 한 장면으로 나타난다. 그가 그리는 성서 이야기는 1930년대 후반으로 들어가면 어둡고 암울한 분위기로 바뀐다.

동물, 어릿광대, 행복한 신랑 신부가 펼치는 환상적인 시적 세계는 30년대 말부터 십자가의 그리스도가 목격하는 참혹한 비극의 세계로 전환된다. 1938년 작 ‘흰 색 십자가 책형’에서 샤갈은 예수를 유대인으로 묘사했는데 이는 1930년을 전후로 유대인이 나치로부터 고통 받은 이후 작품의 세계가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 추상미술이 된 성서

‘절규’로 알려진 20세기 천재화가 뭉크에게 기독교는 어떤 의미 일까? 죽음의 두려움, 불안, 불륜, 질투로 멍든 뭉크는 20세기를 예수가 책형당해 죽은 절망의 땅, ‘고골다’로 묘사했다. 이 작품은 뭉크가 20세기에 그린 첫 작품이다. 우울한 청색을 배경을 노란 그리스도가 못 박혀 있고, 예수가 흘린 피는 구름이 되어 잿빛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다.

‘고골다’ 속 사람들은 예수가 죽든 말든 각자 자기 생각과 문제에만 몰두해 있다. 김현화 교수는 “고골다는 분명 종교화지만 종교적인 감동은 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예수의 죽음이 현대인에게 어떤 의미도 주지 않는 다는 것이 뭉크의 고골다는 보여주고 있다.

초현실주의 화가 달리는 유다에게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고 ‘십자가의 책형’에서 유다를 재해석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유다는 죄인이 아니라 제자로서 당당히 예수와 마주하고 있다. 저자는 “유다와 예수의 미묘한 갈등이나 대립을 묘사하지 않은 달리는 아마도 두 사람의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더 깊은 애정을 느낀 것 같다”고 해석했다.

무신론자 피카소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수 많은 십자가 책형을 드로잉했고 종교적 주제를 다룬 데생을 남겼다. 1930년에 유채로 ‘십자가 책형’을 제작했는데, 예수의 모습의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축소돼있는 대신 주변 인물이 강조되어 있다.

십자가 책형을 기독교 성서에 국한 시킨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 의식과 동일시 한 셈이다. 이에 더 나아가 십자가 책형과 스페인의 투우 문화를 같은 맥락에서 풀이했는데, 이는 타인의 고통과 죽음에 무관심한 인간의 이기성과 사디즘을 표현한 것이다.

책에는 이외에도 칸딘스키의 ‘노아의 홍수와 최후의 심판’, 몬드리안의 ‘마을 교회’,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아’등 성서에서 모티프를 얻은 21명의 작가와 이들의 작품이 실려 있다.

저자는 책 끝머리에 “위대한 현대 미술가는 교회를 떠났다”고 말한다. 그들은 종교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형태와 주제를 탐색하며 미술을 발전시켰다. 이제 현대의 화가는 성서를 통해 인간의 고민과 갈등을 드러낸다. 저자는 “과거 사람들이 교회미술을 통해 종교를 보았다면 이제 현대인은 종교화를 통해 현실을 본다”고 정리한다. 종교화는 현대미술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며 현대 종교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