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309점중 27%에 달하는 86점이 개인·단체 등 소유… 삼성家 가장 많아사립미술관·박물관에 다수 집중…가격은 추정 불가능

국보는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 인류문화의 관점에서 볼 때 그 가치가 크고 유례가 드문 것’으로 문화재보호법에 정의돼 있다. 수많은 문화재 가운데서도 으뜸 중의 으뜸인 셈이다.

숭례문 화재 사건을 계기로 새삼 소중함을 다시 깨닫게 된 국보는 말뜻 그대로 나라와 겨레의 보물이다. 우리의 통념 속에서도 국보는 모든 국민이 함께 감상하고 향유할 수 있는 문화재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뜻밖에도 국보 중에는 마음대로 볼 수 없는 것들이 제법 많다. 국가가 소유하지 않고 특정 개인이나 단체가 소장하고 있는 ‘사유(私有) 국보’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이용경 국회의원(창조한국당)은 지난 국정감사 기간에 한 가지 흥미로운 자료를 공개했다. 개인, 단체 등이 소유하고 있는 국보 현황이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국보 309점 가운데 약 27%에 해당하는 86점이 개인, 재단 등의 소유물로 나타났다. 국보 4개 중 1개는 사유 재산인 셈이다.

가장 많은 국보를 보유한 소장자는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었다. 이 전 회장은 전체 국보의 8%에 달하는 무려 25점의 국보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삼성문화재단도 전체 국보의 3.8%에 이르는 12점의 국보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가(家)가 우리나라 국보의 약 12%를 소장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가는 고 이병철 창업주의 생전부터 많은 문화재를 수집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가 다음으로 국보를 많이 보유한 소장자는 12점을 가진 전성우 화백이다. 전 화백은 한국 최초의 사립박물관인 간송미술관의 설립자 고 간송(澗松) 전형필 선생의 장남이다. 전형필 선생은 일제 강점기 시절 사재를 털어 문화재를 수집, 보존함으로써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일본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는 데 큰 힘을 기울였던 선각자다.

국보 8점을 보유한 성보문화재단도 손꼽히는 국보 다량 소장처다. 성보문화재단은 삼성미술관 리움, 간송미술관과 함께 국내 3대 사립박물관으로 꼽히는 호림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호림박물관은 도자기 전문 박물관으로 국립박물관 못지않게 귀한 유물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

한화그룹의 (재)아단문고도 국보 3점을 보유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아단문고는 고서와 고문서, 근현대 문학자료 등 희귀 서적류를 다량 소장해 ‘희귀본의 보고’로 통한다. 아단문고는 김승연 회장의 어머니 강태영 여사가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설립됐다.

조병순 성암고서박물관 관장도 국보 3점을 소장하고 있다. 성암고서박물관은 사립 고문헌박물관으로 고서, 고문서, 고활자, 간찰(簡札) 등 7만여 점의 자료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병순 관장은 국립중앙도서관 고서위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고 이규훈 전 용인대 이사장이 설립한 우학문화재단과 서정철 씨가 각각 국보 2점을 소장하고 있다. 또한 총 19명의 개인 혹은 단체가 국보 1점씩을 보유해 ‘국보 소장자’의 영예를 누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중 한솔제지가 기업으로는 이례적으로 국보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눈길을 끈다. 이길녀 가천길재단 이사장도 눈에 띄는 국보 소장자다.

일반인 입장에서는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개인들이 어떻게 이처럼 많은 국보를 소장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보의 사적(私的) 소유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또한 국보를 사고 파는 매매행위도 가능하다. 사유 국보는 국보로 지정되기 이전부터 개인이나 단체의 재산이었기 때문이다. 국가가 개인의 사유 재산권을 침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국보 소장자에게는 몇 가지 조건이 따라 붙는다. 첫 번째가 국외 반출이나 수출 금지다. 해외 전시 등을 이유로 국보를 반출할 때도 재반입을 전제로 문화재청장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는 우리 민족의 얼과 혼이 담긴 국보가 ‘돈에 팔려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법적 장치다. 또한 국보의 소유자나 관리자가 변경되는 경우에는 문화재청에 신고를 해야 한다.

반면 국보 소장자에 대한 지원도 이뤄진다. 국보를 온전하게 관리, 보호, 수리하는 데 필요한 경비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부담 혹은 보조하는 제도가 그것이다.

그렇다면 개인들이 소장 중인 국보의 ‘몸값’은 얼마나 될까. 이용경 의원실에 따르면 전성우 화백이 소유한 청자상감운학문매병(국보 제68호)의 경우 최소 250억 원대의 금전적 가치를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500억 원도 충분히 받을 수 있다는 감정을 내놓기도 한다.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은 고려상감청자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풍만하면서도 유연한 선의 아름다움이 특징이다.

삼성가가 보유한 겸재 정선(1676∼1759)의 그림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와 금강전도(국보 제217호) 등은 가격을 추정하는 게 불가능할 만큼 매우 가치가 높다.

6- 2004년 리움미술관 개관식에 참석한 이건희 회장 부부가 참석자들과 함께 건배를 하고 있다.
7- 간송미술관
8- 호림박물관

영조 27년(1751) 그려진 인왕제색도는 이전의 산수화들이 중국을 모방해 그린 데 비해 직접 경치를 보고 그린 작품으로 조선 후기 ‘실경산수화’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꼽힌다. 겸재의 400여 점 유작 가운데 가장 큰 작품이며 그의 화법이 잘 나타났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실 국보는 가격을 매기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대부분 세상에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데다, 외국처럼 공개 경매시장에서 거래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간혹 매매가 이뤄진다 하더라도 매매 당사자들이 구체적인 가격 정보를 비밀에 부쳐 외부에서는 알 수가 없다.

이용경 의원실 관계자는 “국보는 ‘부르는 게 값’이라고 보면 된다. 어차피 매매 당사자의 의향이 가장 중요한데 꼭 갖고 싶다면 어떤 가격이라도 지불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 국보의 매매 거래가 자주 일어나지는 않는 편이라고 한다.

국보를 소유하는 것 자체가 개인이나 가문의 영광인 데다, 국보를 돈벌이나 과시의 수단으로 삼는다는 세간의 시선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화재청 송민선 동산문화재과장은 “국보와 같은 국가지정문화재의 소유권 변동은 주로 상속이나 기증에 의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으며 매매는 드물다”고 밝혔다.

사유 국보는 국유 국보와 달리 개인 재산이라는 점에서 국민들이 쉽게 감상할 수 없다는 제약이 있다. 더러 국ㆍ공립박물관 등에서 특별전을 열어 개인 소장 국보를 초청 전시하는 경우가 있지만 한시적이라는 아쉬움을 지울 수는 없다.

때문에 사유 국보를 보다 많은 국민들이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용경 의원실 관계자는 “국보의 효율적 관리와 국민 향유 기회 제고라는 관점에서 국가가 국보 소장자들에게 ‘위탁 전시’를 하도록 유도하고 그에 상응한 대가를 지급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라고 밝혔다.

■ 주요 국보 보유자 현황

▦이건희: 인왕제색도, 금강전도, 금동미륵반가상, 청화백자매죽문호, 초조본대반야바라밀다경 권 제249 등 총 25점 소장

▦삼성문화재단: 아미타삼존도, 금동대탑, 군선도병,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 금관 및 부속금구 일괄 등 총 12점 소장

▦전성우: 훈민정음, 동국정운 권 제1 및 6, 청자상감운학문매병, 혜원풍속도 등 총 12점 소장

▦성보문화재단: 분청사기박지연어문편병, 청화백자매죽문호, 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주본 권 제2 및 75 등 총 8점 소장

▦아단문고: 대방광불화엄경진본 권 제37, 개국원종공신녹권, 대승아비달마잡집론 권 제14 등 3점 소장

▦조병순: 동래선생교정북사상절, 대방광불화엄경주본 권 제6 및 36 등 3점 소장

▦서정철: 고산구곡시화병, 소원화개첩 등 2점 소장

▦우학문화재단: 백자대호, 청화백자산수화조문대호 등 2점 소장

▦한솔제지: 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주본 권 제36 소장

▦곽영대: 삼국유사 권 제3, 4, 5 소장

▦이길녀: 초조본유가사지론 권 제53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