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서리 서리 깊어 만 간다. 하루종일 오간 비 덕분에 찬란하던 단풍빛은 어느새 우수수 낙엽으로 내려 앉는다. 찬 기운이 휘모는 그 너머엔 푸른 가을 하늘이 드러난다.

당장이라도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이 가을의 그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두고 우리는 쪽빛 하늘이라고 한다.

그저 푸르다고 표현하기에는 너무도 아름다운 그 빛깔을 왜 하필 쪽빛이라 했을까? 그 해답은 식물에서 찾을 수 있는데 바로 ‘쪽’이라는 식물이 남빛으로 물들이는 염료식물이기 때문이다. 옛 사람들에게 푸른빛이란 대부분 이 쪽으로 물들여 졌으므로 쪽빛은 곧 남빛이 되었다.

그러나 색깔을 알고 보니 아주 친근한 것도 같은 이 식물의 제 모습을 찾아내기란 그리 쉽지 않다. 우선 쪽을 심어 놓아도 이를 한 눈에 알아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예전에는 그저 마당 한 구석에는 의례 쪽을 심어 놓고, 염료로는 물론이고 약으로도 쓰곤 했다는데 말이다.

쪽은 마디풀과에 속하는 일년생풀이다. 문헌에 따라서는 여러해살이풀이라고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길가에 흔한 여뀌와 같은 형제식물이어서 여간 눈썰미가 좋기 전에는 그 귀한 풀이 옆에 있어도 그저 잡초려니 하고 지나칠 수 있다. 다 자라면 키는 50~60cm 정도 자라고 여늬 마디풀과 식물들처럼 마디가 발달한다.

긴 타원형의 잎은 짧은 자루를 가지고 서로 어긋나게 달린다. 꽃은 늦여름 혹은 초가을에 핀다. 줄기 끝에 작은 분홍색 꽃이 줄줄이 그리고 빼곡하게 매달려 전체적으로는 끝이 휘어진 수상꽃차례를 만든다. 사실 꽃이나 잎이나 줄기나 어느 한 구석 남빛은 없는데 식물체만 보고는 어떻게 그토록 고운 푸른 빛을 술술 풀어내는지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그런데 이 쪽은 본래의 고향은 중국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염료가 중국산이라니.

하지만 이 쪽은 아주 오래 전에 들어와 우리의 전통적인 방법으로 염색기술이 발전한 경우로, 벼나 삽살개처럼 자생 종은 아니지만 오랜 기간을 통해 완벽하게 토착화 된 토종이라고 할 수 있다. 빙허각 이씨가 지은 규합총서에 남(藍)물을 들이는 방법에 의하면 ‘쪽잎은 둥글고 두껍고 두틀거리는 것이 좋고, 얇고 귀난 것은 좋지 않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전통을 이어 가는데 다소 게으른 우리들이 한동안 볼 수 있었던 것은 우리나라를 통해 건너간 것으로 알려진 일본에서 가져온 길쭉하게 귀난 잎의 쪽과 그 기술이었었다.

하지만 십여 년 전 한 전통염색공예가(그이는 그후 이 족빛 염색으로 전승공예대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의 진짜 우리 색과 기술을 찾겠다는 진념으로 사방으로 수소문하였고 이를 눈여겨 본 원로 식물학자가 수원 서호의 저수지 둑에서 둥근 잎을 가진 아마도 전통에 가까울 것으로 추측되는 야생상의 쪽을 찾아내어 현재는 많이 증식되어 있는 상태이다.

쪽빛 물감은 그 염색방법이나 반복하는 숫자에 따라 그 푸른 정도를 달리한 수많은 색깔을 만들어 내어 옷감을 물들였을 뿐 아니라 방충, 방부효과까지 있어 오래두고 보아야 하는 불경 등을 만드는 한지 등에도 이용되었다.

쪽은 염료이외에도 한방에서도 약으로 이용되었는데 잎을 우려낸 물에 석회를 넣고 만든 것을 청대(靑黛)라고 하며 그 침전물을 남전이라고 한다. 청대는 폐열에 의한 기침 가래, 고열로 인한 소아경풍. 열과 독을 내려 피부발진이나 각혈 등에 처방하였고 열매 남실(藍實)은 청열 해독작용이 있어 인후통, 발진, 종독을 제거하는데 이용되었다고 한다.

쪽빛 하늘을 이고 있는 이 가을, 아름다운 우리의 식물과 그 식물에서 풀어 낸 빛깔하나 제대로 아는 것도 나라사랑, 자연사랑, 우리사랑이 아닐까?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