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문학 할 수 있다""고독·적막 즐긴 5년간의 행복한 귀양살이"

“청안(淸安) 하세요.”

도종환 시인과 나눈 첫 인사는 ‘안녕하세요’도 ‘반갑습니다’도 아닌 ‘청안 하세요’ 였다. 몸과 마음이 모두 맑고 편안한지를 묻는 도종환 시인에게서 삶의 여유 같은 것이 느껴진다.

2003년 ‘자율신경실조증’이라는 희귀병이 발병해 교단을 떠나야 했던 그는 그 뒤 충북 보은군 내북면 산 속에서 홀로 요양생활을 시작했다. 인적이 드문 외딴 산골에서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며 지내온 지 5년이 지난 지금 그의 건강은 몰라보게 좋아져 있었다.

구구산방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며 치료에 전념해온 도종환 시인. 2004년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에 이어 새로운 산문집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를 들고 4년 만에 우리 곁을 찾아왔다. 또 최근에는 ‘한국작가회의’의 새로운 사무총장으로 선출됨으로써 왕성한 활동을 예고하고 있다.

“그 동안 지지 않기 위해 무단히 노력해왔습니다. 마치 뒤에서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뒤쳐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쳤어요. 살면서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건데 이기려고만 한 거죠. 결국 몸도 마음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지쳐버렸습니다.”

도종환 시인은 스스로가 주위를 둘러볼 여유조차 없는 쫓기는 삶을 살았노라고 고백했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자율신경실조증’이라는 병이 그의 몸과 마음을 옭아매버린 후였다.

“저는 영양이 결핍됐을 때만 실조가 생기는 줄 알았는데 신경에도 균형이 깨지면 결핍이 생겨 신경실조가 발생하더군요.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신경균형이 깨지면서 자율신경실조증이 생겼고, 작은 병도 회복이 어려울 뿐더러 정상적인 생활 자체가 불가능해졌어요.”

발버둥치며 살다 '자율신경실조증' 걸려… 외딴 산골 산방서 나홀로 투병생활
병석 털고 일어나 한국작가회의 신임 사무총장 맡아

그는 일에 쫓기고 여유가 없는 현대인들일수록 이런 ‘마음의 병’을 조심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산방생활 초기에는 귀향살이를 하는 것처럼 막막하고 고독했어요. 아무도 없는 산 속에서 혼자 명상이나 하면서 지내는 게 쉽지 않았거든요.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면서는 이런 적막함이 소중하게 느껴졌고, 작가에게 오히려 꼭 필요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정신이 바닥 끝까지 추락한 상태에서 적막과 고독의 산방생활을 즐기며 ‘그대 이 숲에 언제 오시렵니까’를 써내려 간 도종환 시인은 사막에서의 삶과 숲 속 삶을 비교하며 언젠가 돌아가야 할 곳이 있다면 그 곳은 바로 ‘숲’일 것이라고 말했다. 비록 지금은 쫓기듯 불안하고 목마른 ‘사막’에서 살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소중히 해야 할 것들이 있는 상생의 ‘숲’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가끔 좋은 음악이나 풍경에 질 때도 있어야 하고, 넋을 잃고 주저앉을 만큼의 ‘감동’ 역시 삶에서 꼭 필요하다고 말하는 그는 이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되 뇌이고 있었다.

“제가 전교조활동이나 문화운동을 많이 해와서 그런지 이런 얘기를 하면 의아해 하는 분들이 계세요. 사실 저는 지금껏 싸워서 이기려는 운동을 한 것이 아니라 고통 받고 있고, 잘못됐음을 보여주기 위한 운동을 했어요. 짊으로써 깨달음을 주고자 운동을 한 셈이죠.”

여전히 몸을 더 추스러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많음을 더 걱정하고 있었다.

“올해 민족문학작가회의가 새롭게 한국작가회의로 개명하면서 심임 사무총장이 됐어요. 2년의 임기동안 또 임기가 끝난 후에도 할 일들이 많아요. 외국과의 문학교류나 각종 문학행사를 활성화하는데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무엇보다도 신인작가를 발굴하는데 집중할 계획이에요. ‘한국 문학원’ 같은 작가 양성기관을 만들고 싶습니다.”

도종환 시인은 “예술종합학교에도 영상원이나 미술원, 음악원은 마련돼 있지만 문학원은 없다”며 “이런 예술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기초 중에 기초라고 할 수 있는 ‘문학’이 제대로 살아서 탄탄한 뒷받침이 돼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문학도를 양성하는 문예창작과에서도 대학간 치열해지는 경쟁으로 인해 ‘기교’ 가르치기에 더 급급하고, ‘문학상’ 수상에만 혈안이 돼있을 뿐 정작 작가의 깊이에 대해서는 경시하게 만들고 있다고 꼬집었다. 글 재주는 뛰어나지만 깊이가 없는 작가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문학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고, 그 사람의 인생 자체를 바꿔놓을 수도 있다는 그는 많이 고뇌하고 깊은 생각을 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문학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또 풍부한 인문학적 교양을 심어줄 수 있는 사람들을 길러내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가 올바른 방향을 잡아가는데 기여하는 것이 바로 작가회의가 추구하는 신념이자 문학원을 설립하고자 하는 이유인 셈이다.

다시 산방생활을 하면서 5월께는 ‘동시집’을 출간할 계획이라는 도종환 시인. 그는 현대인들이 바쁜 일상 속에서도 휴식을 취하며 스스로 청안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바라고 있다.

“사막에서 벗어나 숲으로 와주세요.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기다리고 있습니다.”

환하게 웃으며 숲으로의 초대를 권하는 도종환 시인의 모습이 청안(淸安)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윤선희 기자 leonelga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