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존중 문화 뚜렷한 페덱스에서 승승장구여성의 사회적 성공 모델로 떠올라

1965년 미국 예일대에서 경제학 과목을 수강하던 프레드 스미스는 자전거 바퀴에서 착안하여 새로운 화물수송 시스템에 관한 학기말 보고서를 제출했다. 바로 ‘허브 앤 스포크’(hub and spoke) 모델이었다.

요지는 화물을 이 지점에서 저 지점으로 바로 보내는 것보다는 미국 내 인구분포 중심지역에 화물 집결지(허브)를 만들고, 모든 화물을 여기에 모은 다음 다시 분류해 자전거 바퀴살(스포크) 모양으로 미국 전역에 배송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지도교수의 생각은 달랐다. 미국 북동부 볼티모어에서 그리 멀지 않은 워싱턴으로 물품을 보낼 경우에도 중부에 있는 허브를 경유해야 한다는 것은 난센스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C학점을 주었다.

그러나 프레드 스미스는 이를 행동으로 옮긴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후인 1971년 자신의 논문을 바탕으로 회사를 설립했다. 소형항공기인 팰컨 8대를 갖고 1973년부터 본격적인 서비스를 실시한다. 사업 첫날 186개의 화물을 운반했던 회사는 35년이 지난 지금은 하루 평균 320만 개의 패키지를 운송하는 세계 최대의 물류 회사가 되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670대의 항공기를 보유한 회사이기도 하다.

페덱스코리아 채은미 대표는 이화여대 불문과를 졸업한 후 국내 항공사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출발점부터 달랐다. 여자라는 이유로 호봉이 달랐다.

이런 회사에서 여성의 앞날은 뻔하다는 생각이 들어 1년 만에 글로벌 기업인 플라잉타이거로 옮겼다. 당시 아시아 최대의 물류회사였다. 그런데 이 회사가 페덱스에 합병되면서 채 대표는 자연스럽게 페덱스 사람이 된 것이다.

일류기업과 이류기업의 차이는 개방성이다. 차별이 없고 모든 사람에게 공정한 것이다. 여성에 대해, 장애인에 대해, 외국인에 대해, 학벌에 대해 차별이 없는 곳이 일류기업이다.

만약 채은미 대표가 예전 한국 회사에서 근무했다면 어땠을까? 사장이 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임원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필자는 그녀가 페덱스의 대표가 되는 것을 보고 페덱스는 정말 괜찮은 회사란 생각을 했다. 글로벌 기업이 왜 경쟁력을 가졌는지 알 수 있었다.

채 대표는 참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 매사에 적극적이며 성실하다. 경쟁심도 강하고 지는 것을 싫어한다. 가정 주부로서 남편과 자녀를 돌봐야 하지만 회사 일도 비슷하게 열심히 한다. 필자는 10년 전 MBA 과정에서 채은미 대표를 처음 만났다. 그 당시 이미 ‘최연소 부장’ 타이틀을 가진 스타 부장이었다.

회사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해서 페덱스에 대해 질문을 하면 눈을 반짝이며 회사 자랑에 열심이었다. 수업 시간에 준비도 열심히 하고 발표도 주도적으로 했다. 외국에서 공부를 한 적은 없지만 영어도 잘했다. 특히 프리젠테이션 솜씨가 상당했다. 그러더니 10년도 되지 않는 세월에 글로벌 기업의 사장까지 올랐다. 역시 좋은 회사는 인재를 알아보는 것 같다.

페덱스의 기업철학은 ‘PSP’이다. 이는 사람(People)-서비스(Service)-이윤(Profit)이라는 뜻이다. 그 중에서도 최우선은 바로 사람이다. 대부분 회사가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직원들이 실제 체감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하지만 페덱스는 이를 실천한다. “회사가 사람을 지성으로 보살피면 그들은 고객에게 완벽한 서비스를 제공해줄 것이고 만족한 고객은 회사 미래를 위해 필요한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것이 페덱스의 철학이다.

PSP는 페덱스의 ‘1:10:100의 법칙’과도 통한다. 불량이 생겼을 때 즉각 고치는 데는 1의 원가가 들지만, 문책 등이 두려워 이를 숨기고 시장에 내보내면 나중에 10의 원가가 들며, 클레임으로 발전하면 100의 원가가 든다는 법칙이다.

채 대표의 주특기 중 하나는 직원 이름 기억하기다. 이 회사는 670여 명의 직원이 있는데 채 대표는 신입사원 몇 명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직원 이름을 알고 있다.

또 아무리 바빠도 신입사원과 반드시 식사를 하면서 환영 인사를 한다. 이 모든 것은 사람을 가장 우선시하는 회사 철학을 실천하는 것이기도 하고 여성 특유의 섬세함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직원들의 충성도가 매우 높다. 한국 기업의 평균이직률은 15%이고 글로벌 기업은 더 높지만 페덱스는 겨우 3%에 그치고 있다.

자신의 직장과 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이승이 바로 천국이다. 채 대표가 그런 사람이다. 그녀는 자신의 일을 정말 좋아한다. 그런 것이 느껴진다. 회사 얘기를 할 때 눈을 반짝이면서 신이 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수많은 스카우트 제의를 뿌리치고 페덱스에 머물러 있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이렇게 회사에 충성을 바칠 때는 뭔가 사연이 있을 것 같았다. 그녀의 답이다.

“저희 회사에는 670대의 항공기가 있는데 직원들이 자녀 이름을 응모해 당첨되면 항공기에 직원 자녀의 이름을 붙여주는 전통이 있습니다. 직원을 존중하는 제도 중 하나입니다. 제 아들 이름이 양재(良財)입니다. 재물을 많이 가진 부자가 되라는 의미로 지었다는 사연과 함께 응모를 했는데 채택이 되었지요. 시간이 흐른 어느날 미국 본사 사장이 한국을 방문했는데 우연히 공항에 있던 양재호(號)의 사진을 찍어 액자를 만들어 제게 선물한 겁니다. 저는 너무 감동했지요. 정말 사람을 중시하는 회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이런 회사에 충성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요?”

글로벌 기업의 사장이 지점의 일개 부장 자녀 이름을 기억해서 사진을 찍고 이를 액자로 만들어 전달했다는 사실 하나는 그 회사가 얼마나 사람을 소중히 생각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니 직원들이 충성하는 것 아니겠는가?

채 대표에게도 물론 어려움과 위기가 많았다. 노조 관련 문제도 있었고 글로벌 기업이기 때문에 당하는 차별의 문제도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다만 지금의 성공이 쉽게 얻어진 것은 아니란 사실만은 분명히 했다.

페덱스는 인사 측면에서 배울 점이 많은 회사다. 정말 사람을 중요시한다는 것을 여러 제도를 통해 보여준다. 대표적인 것이 내부승진 제도이다. 웬만하면 외부 인사를 쓰지 않는다. 특정 자리가 비었을 때는 사내에 잡 포스팅(Job Posting)을 한다. 이러이러한 사람을 찾고 있으니 자격이 있는 사람들은 응모하라는 것이다. 내부 직원에게 우선적인 기회를 주고 마땅한 사람이 없을 경우에만 외부에서 채용한다.

‘CHAMS’ 테스트라는 인성 및 적성검사 프로그램도 그렇다. 이 프로그램은 신입사원 채용에서 각 단계별 승진에 이르기까지 단계별 인터뷰에 관련된 사항을 다룬 프로그램으로 내부 인원의 인성과 적성을 평가하는 주요한 도구이다.

공정대우 보장 프로그램인 ‘GFTP’(Guaranteed Fair Treatment Procedure)도 눈길을 끄는 제도다. 뭔가 공정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될 때 상급자를 뛰어넘어 차상급자에게 이를 호소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일종의 소원수리이다. 이렇게 되면 차상급자는 위원회를 소집해서 사실여부를 파악하고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페덱스는 매년 미국 <포춘>지가 선정하는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 10위권 안에 오르고 있다.

채 대표는 사회공헌 활동에도 열심이다. 세이프키즈(Safe kids)재단과 함께 안전한 등하굣길을 위한 캠페인, 불우아동을 위한 영어캠프, 청소년 경제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면서 페덱스의 기업문화를 전하고 있다.

좋은 세상은 누구에게나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는 세상이다. 노력하면 누구나 사장이 될 수 있고 부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이다. 노력한 사람이 존중을 받는 세상인 것이다. 채은미 대표와의 만남에서 페덱스가 그런 좋은 세상을 압축해 놓은 것 같은 회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 한근태 약력

한스컨설팅 대표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환경재단 운영위원

환경경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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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