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를 통해 강원도의 힘 남기고 싶다"다큐멘터리 흑백사진 30점 경인미술관 전시… 매년 강원도 유산 사진 작업 지휘도

갑자기 미술관 입구가 술렁거렸다. 행사의 주인공이 들어서고 있었다. 김진선(62) 강원도지사. 이날만큼은 화려한 명함의 공직자이기에 앞서 첫 개인전을 맞는 사진작가였다.

내내 조심스럽고 겸연쩍어하는 모습으로 작가는 하객들의 인사를 받았다. “ 인사 분위기가 결혼식의 혼주 같다”고 하자 옆에서 누군가가 웃으며 되받았다. “저 안(전시실)에 있는 것들이 사실 자식이나 다름없지요.” 모두 번듯하게 키워낸 자식들이다.

■ 냇가에서 송아지를 만나다

월간 ‘사진예술’사가 기획한 초대전이자 김진선 지사의 개인전 ‘소(牛)’ 사진전이 서울 경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장에 약 30점, 동시 발간된 사진집에 약 40점이 실렸다. 제목 그대로 소를 주연으로 삼은 다큐멘터리 흑백사진들이다. 한 점 한 점 사진 속의 소들이 살아 움직인다. 말도 건다. 본인의 겸손한 자평과는 달리 취미형 아마추어의 담을 넘은지 한참 오래된 것들이다.

강원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김 지사는 동년배의 시골 소년들이 으레 그랬듯 소 꼴을 베러 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고교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여행을 다닐 때면 촬영은 으레 그의 몫. 읍내 사진관에서 카메라를 빌어 찍은 뒤 인화를 맡기곤 했다. 그의 솜씨를 눈여겨 본 사진관 주인은 그를 직접 암실에 데려가거나 함께 작업을 하기도 하는 등 자진해 암실작업의 기초를 가르쳐주었다.

“ 그 분을 통해 사진작업에 대한 전반적인 감을 배웠던 셈이죠. 하지만 그땐 이건 너무 복잡하고 어렵구나, 전문가들이나 할 일이라는 생각에 더 이상 깊이 들어가지 않았어요.”

마음이 바뀐 건 90년대초. 강릉시장으로 재직하던 중, 공직에서 은퇴한 뒤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단오제 현장 등을 오가며 사진을 찍던 한 지인을 바라보면서부터였다.

“ 그 모습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나도 나중에 저렇게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죠. 그러면서 93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내무부 연수원 시절, 그는 갓 개설된 사진강좌의 열강생 중 하나였다. 전문서를 찾아 공부하는 등 진지한 독학이 시작됐다. 초기엔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을 찍었다. 그러다 94년경 고향인 동해의 큰 댁에 갔다가 우연히 냇가에서 송아지 한 마리를 만났다. 특유의 눈 빛으로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카메라에 바로 담은 뒤 서울로 돌아와 인화해 보았다. 기억 속 송아지의 눈빛이 좀처럼 잊히지 않았다. 소를 주제로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 이때부터다.

“ 소의 표정이 다 비슷할 것 같지만 앵글로 보면 전혀 아니예요. 소마다 천태만상이지요. 소는 우리에게 한 가족 같은 존재이기도 하고, 우직하고 순수하며 정직한, 아주 오묘한 존재예요. ”

■ 강원도의 힘, 사진 기록으로 남기고파

사진에 대한 그의 각별한 애정은 지역의 문화예술사에도 여러 형태의 기록을 낳고 있다. 그는 2002년 동강사진마을 선포와 사진축제, 동강사진박물관을 마련한 주역이다. 현재도 해마다 강원도의 자연과 변천사를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남기는 작업을 계속 진행, 살아있는 사진 기록들을 강원도의 유산으로 남기는 작업을 지휘하고 있다.

사진을 찍으러 나섰다가 고생하기도 부지기 수. 3,4년전 기억만 해도 한 떼의 소 무리를 보자마자 무작정 찍으러 들어갔다가 ‘만신창이’가 되어 나오기도 했다.

“ 온통 소 촬영에만 몰입해 있다보니 어느 순간 제가 소떼에게 포위된 채 둘러싸여 있더군요. 발밑으론 온통 질퍽거리는 땅에 넘어지고, 흙이 튀고....나중에 나와보니 완전히 온 몸이 진흙범벅이었습니다. 한번 몰입에 빠지면 땅이고 뭐고 다른 건 전혀 보이지 않기 마련이지요.”

10여년 전부터 ‘사진나루’라는 이름의 순수사진 동호회를 만들어 해마다 회원전에 참여하고 있다. 그나마 사진작업에 대한 그의 갈증의 해갈이 이뤄지는 기회다. 작년말에는 서울의 한 화랑에서 열린 ‘명사 사진전’에도 초대 출품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한 갤러리가 그의 작품을 소장용으로 사들였다. 그의 작가적 실력은 이미 여러 방식으로 공인됐다.

디지털 카메라라곤 몇 달 전 처음으로 사 봤다. 필름 카메라의 장비상 불편을 덜어볼까 했는데, 아직 사용법조차 익숙치 않다. 사진작업에 쏟을 시간 여유조차 여의치 않다. 기껏해야 1년에 한두번이 고작. 강릉시장 시절 이후부터 오늘까지 내내 같은 처지다.

■ 세상사 우행처럼

촌로에서부터 정치인까지 고루 그의 첫 걸음을 축하하러 찾아든 이날, 행사는 본인의 계획대로 ‘최대한 민폐없이’ 조용하고 단출하게 진행됐다. 공교롭게도 한창 광우병 문제로 시끄러운 시점에 열린 ‘소’ 테마전. 예상한대로 ‘혹시 이와 관련된 무슨 숨은 메시지가 담긴게 아닌가’라는 질문이 이따금씩 그에게 던져졌다. 본인과 관계자들에 따르면 양자무관. 원래 계획돼 있던 일정이 우연히 ‘뜨거운’ 시기와 겹쳤을 뿐이다.

“ 제가 찍은 소들이 100% 우리 한우라는 사실만은 틀림없습니다(웃음). 그냥 세상사 우행(牛行)이라고나 할까요. 소걸음처럼 가면 될 일들을 너무 아글아글하게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갈색빛 선명한 김 지사의 눈동자가 초여름 저녁 저무는 햇빛 속에서 나직히 빛났다. 상대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호전적인 느낌 없이 당당함과 순한 기운을 동시에 지닌 그런 눈빛은 오랜만에 보았다. 몇 년전부터 사진계의 권유와 닦달을 받으면서도 내내 고사, 결국 초청 형식으로 끌려나오다시피 마련된 그의 우직한 이번 사진나들이는 3일에 막을 내린다.

■ 김진선은

1974년 동국대 행정학과 졸업. 같은 해 행정고등고시 합격. 강원도 강릉시장, 경기도 부천시장 등 역임. 현 강원도지사(1998년~현재. 전국 유일 3선). 1997년 황조근정훈장 수훈 등 표창 다수. 저서 <지방의 비전과 도전>(2006.랜덤하우스중앙), 첫 사진집 <소(牛)>(2008.사진예술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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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주 기자 pinpl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