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요리법 표준 주도, 국내 외식문화 고급화… 한국 고유 맛 세계화에도 앞장

미국의 명문 요리사관학교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미국 요리학교)가 오는 11월 한국에 문을 연다. 뉴욕에 본원을 둔 CIA는 프랑스의 르 꼬르동 블루, 일본의 쯔지와 함께 세계 3대 요리학교로 꼽힌다.

존 애쉬(John Ash), 존 니호프(John Nihoff) 같은 세계적인 쉐프들이 CIA 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두바이 칠성급 호텔 '버즈 알 아랍'의 수석총괄주방장 권영민 등 걸출한 요리사들이 이 학교를 졸업해 세계 곳곳에 퍼져 있다. 미국 조리사가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명예인 조리기능장 'CMC(Certified Master Chef)' 50인 중 11명이 CIA 출신이다.

온·오프라인 에듀테인먼트 전문업체 시너전스 박원용 대표는 지난해 8월 CIA 본원과 독점계약을 맺었다. 박 대표는 3년 전, 세계적으로 공신력을 인정 받는 영국의 와인교육 전문기관 'WSET(Wine Spirit Education Trust)'을 국내에 오픈해 성공시킨 바 있다.

그는 "'와인의 토플'로 불리는 WSET을 들여와 소믈리에를 양성시키다 보니, 요리까지 욕심이 생기더라"고 했다. 그래서 요리교육 기관 중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며, 세계 요리 교육기관 중 최고의 랭킹을 차지하는 CIA와 손을 잡았다는 것.

르 꼬르동 블루는 2002년 숙명여자대학교 안에, 쯔지는 올해 초 강남구 압구정동 포도플라자에 각각 분원을 열었다. CIA만 문을 열면, 세계 3대 요리학교가 모두 한국에 진출하는 셈이다.

"우리나라도 식문화가 발달하면서 음식의 질을 중시하는 경향이 굉장히 강해졌어요. 직업 조리사는 물론이고, 일반인들도 백화점 문화센터가 아닌 권위 있는 요리학교에서 최고급 요리를 배우고 싶어해요."

CIA 교육과정은 크게 학위(degree)과정, 조리사 재육과정인 아카데미 과정, 전문 조리사 양성 과정인 프로셰프과정, 와인과정 그리고 일반인을 위한 취미과정으로 나뉜다.

한국분원엔 학위과정을 제외한 모든 교육과정이 개설된다. 와인과정과 일반인을 위한 취미과정은 강남 분원에서, 전문 요리사 과정은 강북 분원에서 각각 가르칠 예정이다.

"CIA는 세계에서 유일한 요리전문 대학이에요. 르 꼬르동 블루나 쯔지엔 정식 학위과정이 없어요. 모두 요리전문 학원이죠. 국내에는 4년제 학위과정이 들어오지 않지만, 추후 CIA대학과 협의해 학위과정도 개설하려고 합니다."

박 대표는 요리전문 대학인 만큼 CIA는 다른 요리학교와 달리 더욱 체계적인 교육으로 세계 레시피(요리법)의 표준을 주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CIA 본원은 20개국 125명의 전문 조리강사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 분원엔 CIA본원의 마스터 쉐프 급 강사 2명이 파견돼 상주하게 된다. 한국 쉐프 2~3명도 상주 강사로 뽑을 예정이다. 그는 한국 시장에서 이미 성공을 거둔 르 꼬르동 블루와의 경쟁에서 이길 자신이 있다고 장담했다.

이밖에도 박 대표는 CIA에서 배출한 학생들이 최고급 외식문화를 선도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르 꼬르동 블루는 학생들의 창업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저희는 학교 내에 창업 컨설팅 부서를 만들어 학생들의 레스토랑 창업을 도우려고 해요. 외식산업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요즘, 전문적이고 차별화된 지식 없이 레스토랑을 열었다간

백전백패하죠. CIA는 요리를 허영이나 사교의 수단이 아닌, 최고급 외식산업을 선도할 전문가로 양성할 것입니다."

그는 또 국내 요리학교 중 유일하게 조리사 재교육 프로그램이 있다는 점도 CIA의 장점으로 내세웠다.

"전문 조리사를 재교육시키는 기관도 지금껏 국내에 없었어요. 국내 특급호텔 쉐프 등 내노라 하는 요리사들이 CIA 본원에 가서 재교육을 받고 돌아왔죠. CIA가 들어오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어 하는 조리사들이 몇 년 간 휴직을 하고 외국에 갈 필요 없이, 국내에서 마음껏 실력을 갈고 닦을 수 있을 거예요."

CIA 상륙이 국내 외식산업에 변화를 몰고 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CIA에서 공부하면 미국진출에도 용이하다. 한국 분원에서 프로셰프과정 1·2단계를 마치고 미국 본원에 가면 곧바로 3단계를 이수할 수 있고, 이후 미국 조리사 자격증을 딸 수 있다. CIA 프로셰프과정을 마치고, 미국 조리사 자격증을 따면 미국내 웬만한 레스토랑에 취업이 가능하다고 박 대표는 덧붙였다.

한국 내 모든 수업은 전부 영어로 진행할 방침이다. CIA를 들여오는 궁극적인 목적이 우리나라 요리 전문가들을 세계로 진출시키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별도로 영어교육과정도 개설한다. 전세계의 요리를 총 망라해 다루고, 세계 레시피의 표준을 주도하고 있는 세계 최고의 요리 전문학교에서 공부하고 나면 해외진출 전망은 매우 밝다는 게 박 대표의 생각이다.

"현재 CIA 교재번역이 50% 정도 끝났습니다. 본원의 교수들과 협의해 한국에 없는 요리재료의 경우 어떤 것으로 대체할지 등을 면밀히 연구하며 번역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CIA의 강점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표준화예요. 예를 들어, 똑같은 재료가 없다고, 아무 재료나 요리하는 사람 마음대로 사용하는 식이 아닌 교수진이 가장 객관적인 기준점을 물색해 가장 근접한 재료를 찾는 것이죠. 한국음식과 요리사들이 세계진출에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부분이 표준화가 안 돼 있다는 점이에요. 요리하는 사람에 따라 각기 다 다른 주먹구구식 요리법으로는 세계진출에 한계가 따를 수 밖에 없어요."

박 대표의 꿈은 한국 CIA에서 공부한 학생들이 한국음식의 세계화에 공헌하는 것이다.

"김치찌개에 치즈를 넣는 게 아니라 한국음식을 표준화해 우리 고유의 맛을 세계에 전파하는 겁니다. CIA 교육생들이 레시피 표준화 교육을 받은 후에 한국음식의 세계화에 일역을 담당해 주었으면 하는 게 제 소망이에요."


전세화 기자 cand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