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일 닫혔던 국회 문 열고 상시·상생·소통 국회 강조한미 FTA 합리적으로 풀고 민생·개헌 동시 추진

김형오 국회의장은 인터뷰 내내 ‘신뢰’란 말을 수차례 강조했다. 정부와 국민, 정당과 정당 간에 신뢰가 붕괴돼 국정과 정치권이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김 의장은 “국회가 정치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며 그 동력이 국민의 신뢰라고 했다. 이를 위해 국회를 개혁하고 개헌을 주도하는 등 국회가 명실상부한 정치의 리더 역할을 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지난 24일 국회의장실에서 만난 김 의장은 40여일 간 닫혔던 했던 국회의 문을 여니 할 일이 밀려 있다며 그간의 마음고생도 잊은 채 입법부 수장으로서 강한 의욕을 나타냈다. 취임(7월 10일) 일성인 ‘상시(常時) 국회, 상생(相生) 국회, 소통(疎通) 국회’도 재차 강조했다.

“우선 이화장(초대 이승만 대통령이 거주한 곳)에 가보고 싶다”며 인터뷰를 시작한 김형오 의장은 18대 국회의 좌표와 과제, 비전 등에 대해 시종일관 밝은 표정으로 솔직하게 응했다.

- 이회장을 우선 방문하고 싶다고 했는데

“이화장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머물던 곳으로 역사적 상징성이 있어요.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선 다른 평가도 있지만 건국에 지대한 역할을 한 분입니다. 올해가 정부수립 60주년이 되는 해인데 나라에 ‘건국절’이 없다는 것은 재고해봐야 합니다. 2차 대전후 독립국가 가운데 대한민국처럼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성공시킨 나라가 없어요. 우리 현대사에 대해 자긍심을 가져도 됩니다. 내가 제헌 60주년을 맞아 ‘제2의 제헌’, ‘제2의 건국’ 을 선언한 것도 그러한 맥락이죠. 이처럼 중요한 때에 국회의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무거운 책임을 느낌니다“

- 18대 국회의 최우선 과제를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고는 국회가 정치의 중심에 설 수 없어요. 40여일 간 국회의 문을 닫은 것은 국민에 대한 직무유기입니다. 비판받아 마땅하죠. 국회의원 모두가 새로 태어난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고 봅니다“

-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방안은 있는지요

“국회가 국회다와야 합니다. 민주적인 헌법기관으로 견제와 균형을 철저하게 담보하는 국회가 되고 민의를 대변하는 민의의 전당으로 민의를 정책에 반영하고 그것을 입법으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국회 내부적으로도 운영과 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봅니다“

국회 운영과 제도를 어떻게 개혁하실 겁니까

무엇보다 ‘상시(常時) 국회’가 되도록 할 겁니다. 영국 국민들은 국회의사당의 불빛을 보고 편안히 잠이 든다는 말이 있는데 우리는 거꾸로 광화문에서 촛불은 나부껴도 국회는 불이 꺼져 있어요. 선진국치고 상시국회가 아닌 나라는 드뭅니다. 쇠고기 파동이 났다고 국회의원들이 광장으로 가는 일도 없고요. 국회가 제 기능을 하려면 권능과 책임이 강화되야 하는데 국체적으로 상시국회가 되야 합니다. 또 대정부 질문제 고쳐야 하고 국정감사, 국정조사도 본질적으로 재검토해야 합니다. 청문회 제도는 완전히 뜯어 고쳐야 하고 국회 입법권을 강화하면서 국민들도 입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해 벌 생각입니다“

과거 국회가 통법부 역할을 한 경험에 비춰 거대여당이 등장함에 따라 그런 위험성이 더 커졌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확연히 다른 국회의장이 될 겁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의지가 확고하지만 이 정부가 독재주의 시대의 정부가 아니기 때문에 국회를 컨트롤 하지도 않을 뿐더러 국회 또한 정부에 끌려 다니지 않을 겁니다. 물론 거대여당이라면 수(數)의 힘으로 일을 처리하려고하는 유혹이 있기 마련이고 내부적으로 강경론이 들고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야당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대 여당에 대응하기 위해선 오직 투쟁, 강경 선택만이 존재 의의가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죠. 하지만 온건한 합리주의 방법을 보여주어 다음 선거에서 야당에 기대를 걸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다시말해 여당은 수의 힘에 대한 유혹을, 야당은 강경투쟁에 대한 유혹을 떨쳐내야 합니다“

- 의장으로서 첫번째 난제가 ‘한미 FTA’인준이 될 텐데 야당의 반발이 있을 경우 어떻게 풀어갈 생각입니까. 어제 관훈토론회에서는 국민여론에 따라 직권상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는데요

“한미 FTA 문제는 여야 간에 입장차가 크게 나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어제 밝히지는 않았지만 여야 전원위원회 같은 것을 열어 FTA에 대해 의견을 조율하도록 할 겁니다. FTA 때문에 직권상정할 필요가 없다고 봐요. 합리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습니다“

국회의장으로서 임기 동안 국회개혁과 개헌이라는 두가지 일을 해놓겠다고 했는데 왜 개헌을 해야한다고 보십니까. 민생문제라는 현안이 더 중요하다는 반론이 적지 않습니다

“민생문제는 국정과 국회의 최우선 과제입니다. 그러나 민생 때문에 다른 것을 못한다는 것은 얘기가 안돼요. 우리의 국민소득이나 문화수준은 국회가 많은 사안을 동시다발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과 역량을 갖고 있습니다. 민생과 개헌을 동시에 추진할 수 있죠”

개헌 논의의 방향은

개헌을 하는 이유이기도 한데 87년 헌법은 대통령 직선제를 회복하고 장기집권을 막은 업적을 이뤘습니다. 그러나 직선제 개헌에 집중하다보니 헌법에 담을 다른 가치들에 소홀했어요.

그리고 87년에에는 생각지도 못한 인권, 환경, 생명윤리, 복지, 지구온난화, 다문화 가족 등의 문제도 수용해야 합니다. 또한 헌법 논의는 비정치인, 전문가 중심의 자문기구에서 조용히 진행할 겁니다. 정부에 부담을 주어서도 안되기 때문에 온 나라가 개헌에 매몰되고 이념논쟁의 장이 되는 식으론 진행되어선 곤란하지요“

- 개헌 시기는

“개헌은 이번 대통령 임기가 끝난 뒤 5년 뒤에 적용되는데 18대 국회 상반기에 해야 한다고 봅니다. 후반기에 가면 대통령선거, 총선 등으로 논의하기가 어려울 겁니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원포인트 개헌에 반대한 적이 있는데 권력구조에 관한 입장은 무엇입니까

“원내대표 때 내가 앞장서 반대했는데 노 대통령의 원포인트 개헌은 현재의 단임제의 문제점을 놔둔 채 권력구조만 바꾸자는 것인데 개헌을 할려면 제대로 해야죠. 원 포인트 개헌 자체가 어불성설 입니다. 권력구조와 관련해 꼭 대통령 중임제만 있나요. 개인적으론 내각책임제나 프랑스식 분권형 대통령제에 관심이 더 있어요. 제도의 장단점을 면밀히 검토해야 합니다“

- 현 정부에 대한 낮은 지지율은 국정의 동반자인 국회에도 부담이 됩니다. 집권여당의 중진으로 인수위 부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는데 현 정부의 위기가 어디에 있다고 봅니까

“국회의장 입장에서 말하기 어려운데…조심스럽게 얘기하자면 정부와 국민 간에 놓여 있는 ‘신뢰의 다리’에 금이 간 것이죠. 쇠고기 파동은 생각지도 못하게 커졌고 정부에선 ‘괴담’이라고 하는 광우병 문제를 국민이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수십여일 간 촛불시위가 계속된 것은 기본적으로 신뢰의 문제이죠. 이 신뢰가 회복되면 이명박 대통령이 능력과 역량이 있으니 잘 해나갈 것이라고 봅니다”

- 어떻게 해야 잃은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봅니까

“초심으로 돌아가야죠. 국민을 섬기는”

- 촛불시위가 아직 계속되고 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대의민주주의의에 대한 도전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김형오 의장은 1999년 ‘전자민주주의’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을 만큼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식견이 높다)

“나는 처음 촛불시위를 2002년 월드컵 때의 붉은 악마의 함성처럼 국민적 에너지로 생각했습니다. 물론 2002년 때와는 리뉴얼이 다르고 일부 정치성도 띠었지만 국민 에너지라 여기고 이것을 정치권에서 잘 흡수하면 국가 역량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상당히 긍정적으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6월 10일 이후에 ‘광장의 함성’이 있던 자리에 거리의 함성, 깃발이 대신하면서 부정적으로 봤어요. 내가 이 부분에 대해 공부를 했는데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대의민주주의가 도전을 받지만 그것은 대의정치를 더욱 건강하게 하는 요소로 디지털 문화로 인식해야 합니다. 하지만 거리의 민주주의나 광장의 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를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자칫 중우정치가 될 수 있죠”

- 의장은 14대 때 이명박 대통령과 의정활동을 같이 했고 인수위 부위원장을 하면서 이 대통령을 가까이서 지켜봤습니다. 또 20004년 탄핵역풍 때 천막당사에서 사무총장을 하면서 당시 박근혜 대표와 당을 지켰습니다. 현재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소원한 관계가 당청, 당내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해법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난 친정에서 출가외인이어서…(웃음) 얘기하기 조심스러운데 결국 대화와 신뢰이죠”

박근혜 전 대표 총리론에 대해서는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그것도 신뢰의 문제라고 봐요”

- 어떤 국회의장으로 남기를 바라십니까

“막상 국회의장 되고 보니 권한이 너무 없어요. 원구성 협상에도 끼지 못하고 하지만 나한테 주어진 권한을 최대한 활용해 의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데 최선을 다해 국회가 정치의 중심이 되도록 할 것입니다. 정치의 시작도 끝도 국회가 되야 하고 그래야 이 나라의 정치적 안정도, 민주발전도 할 수 있습니다. 임기 2년 2년 동안 그런 노력을 다했다는 국회의장으로 기억되면 해피할 것입니다“

■ 김형오 약력

경남 고생(47년), 경남고ㆍ서울대 외교학과 동 대학원 졸업(정치학 석사)

한나라당 정보통신위원회 위원장, 사무총장, 인재영입위원장, 원내대표,

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

제14ㆍ15ㆍ16ㆍ17ㆍ18대 국회의원(5선)


박종진 부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