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자는 자기만의 시각으로 현실을 봐야" 내셔널지오그래픽 등서 명성…9·11테러 당일 찍은 역설적 현실 사진 작품의 백미

"젊은이들이 더 좋은 대학과 직장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부모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꿈과 즐거움을 희생당한 채 지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세계 현장을 누비며 숱한 '현실'을 카메라에 담아온 세계적인 원로 사진기자 토마스 횝커(72ㆍ독일)의 눈에 비친 우리의 모습이다.

횝커는 세계적인 사진가그룹 매그넘의 회장으로,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매그넘 코리아 사진전'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그는 매그넘 소속 사진가 20명이 전시회를 위해 지난해 한국에서 작업한 사진들을 모아 낸 <매그넘 코리아> 사진집의 표지 사진을 찍었고, 이번 전시회의 부대행사로 마련된 초청강연회에서 사진에 대한 강연을 하기도 했다.

1936년 생인 횝커는 1960년 독일의 한 잡지사에서 사진기자로 일을 시작한 이래 반세기 동안 <슈테른>, <내셔널지오그래픽> 등 유수 잡지사와 일하며 명성을 날렸다.

그동안 흑백필름이 컬러로, 필름카메라가 디지털로, 기술은 변신을 거듭했다. 언제나 최신 기술의 카메라로만 작업해온 횝커는 2003년 이후부터는 디지털 카메라만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분명한 주관을 가지고 보고 느낀 현실을 표현해야 한다"는 사진기자로서의 철학은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요즘 유명인들은 완벽한 스타일을 갖춘 후에만 사진기자 앞에 섭니다. 예를 들어, 부시 대통령이 '포토 세션(photo session)'을 갖겠다고 결정하면, 테이블 색상과 어울리는 넥타이를 골라주는 스타일리스트가 동원되죠. 심지어 안아줄 아기까지 뽑아 놓고 포토 세션을 진행해요. 이처럼 사전에 각본을 짜고 철저히 연출된 모습으로 나타난 유명인을 그저 카메라에 보기 좋게 담는 동료들을 저는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그건 사진을 찍는 기술자일뿐, 사진가는 아니에요. 물론 사진가는 미학적으로도 아름다운 사진을 찍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자기만의 시각으로 현실을 바라봐야 하고, 그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 애써야 한다는 점입니다."

방한기간 내 솜털처럼 촘촘히 짜여진 일정을 소화해 낸 백발의 거장에게선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사진기자로서의 좌우명을 말할 때 그의 목소리는 또랑또랑해지고, 눈빛엔 힘이 넘쳐났다.

그는 인종차별이 심했던 60년대에 미국 시카고로 건너가 흑인 세계 권투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의 영웅적 모습을 찍어 세계에 알렸다. 그런가 하면, 70년대 독일 분단 시절, 3년간 동독에 머물며 서방세계에 동독인들 삶의 실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9 ㆍ11테러 당일 찍은 사진은 '현실'을 담은 수많은 횝커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다. 뉴욕에 살고 있는 횝커는 사건 당일 아침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세계무역센터가 불길에 휩싸여 있다는 전화였어요. 전화를 끊자마자 저는 차를 몰고 퀸스보로 다리를 건너 브루클린을 향해 가고 있었죠. 라디오에선 2만명이 죽었다는 보도가 흘러나왔고, 저 멀리 맨해튼의 연기기둥이 보였어요. 그런데 브루클린의 한 작은 공원을 지날 때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어요. 다섯 명의 젊은이들이 공원에 앉아 여유로운 평상시의 표정으로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었죠. 곧바로 차를 세우고, 그 장면을 찍었습니다. 불과 몇 킬로미터에서 테러가 발생해 화염이 피어오르고,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아침 햇볕을 즐기며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를 나누는 젊은이들의 모습. 참 역설적인 현실이었죠."

미국 보수진영에서는 이 사진을 두고 횝커가 테러를 평범한 사건으로 위장하려 했다며 비난했다. 그러나 그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주는 게 사진기자의 역할이라며 꼿꼿이 비난에 맞섰다.

횝커는 1989년 매그넘에 가입한다. 매그넘 작가로 가입하면서 그의 수입은 유명 잡지사에 소속돼 있으면서 받았던 어마어마한 연봉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줄었다.

하지만 그는 "나와 같이 작가정신을 추구하는 사진가들과 함께 수준높은 사진작품을 찍는다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한다.

매그넘은 스페인 내전 당시 기관총을 맞고 쓰러지는 병사를 포착한 <쓰러지는 병사>로 유명한 전설적인 사진가 로버트 카파가 1947년 창설한 독립적인 사진가그룹으로, 현재 50명의 핵심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매그넘에 가입하고자 하는 사진가들은 포트폴리오를 제출한다. 핵심 회원들은 포트폴리오를 보고 매년 회의를 통해 약 2명의 회원을 '후보자'를 지명한다. 후보자는 2년 후 다시 포트폴리오를 제출해 심사를 받는다. 횝커와 같은 사진기자뿐 아니라 예술작품을 하는 사진작가도 포함돼 있다.

매그넘의 수입구조는 최근 급변하는 매체환경의 영향으로 바뀌고 있다.

예전엔 매그넘이 벌어들이는 수입 가운데 80%가 잡지와 신문 일이었다면, 요즘엔 그 절반 가량 밖에 안 된다. TV와 인터넷이 뜨면서 인쇄매체의 경영 사정이 전반적으로 열악해졌기 때문이다. 대신 사진예술 시장이 새로운 수입원이 되고 있다는 게 횝커의 설명이다.

"이번 매그넘 코리아 사진전과 같이 전시회 수요가 많아지고 있어요. 그리고 예술작품처럼 사진을 모으는 콜렉터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미술시장에 비하면 사진시장은 아직 초기단계지만 앞으로 가능성이 클 거라고 보고 있어요."

횝커는 어려서부터 사진찍기를 좋아했으나, 부모의 뜻에 따라 대학에서 예술사학과 고고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사진기자에 대한 꿈을 접지 못해 학업을 포기하고 잡지사 사진기자로 입사했다.

아직도 1년 중 300일은 현장에 나가 사진을 찌고, 50일 가량은 사진작업을 하는 맹렬한 사진기자다.
부모의 반대를 무릎쓴 채 학업을 중단하고 선택한 사진기자. 백발 노인이 되어서까지 1년에 350일을 매달려야 하는 녹녹치 않은 직업이다.

"사진기자로 살면서 어떤 점이 좋았느냐?"는 질문에 "무엇보다 세계를 여행하며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사진기자는 부단한 인내가 필요한 직업이에요. 찍는 사진 중 80~90%는 못쓰게 되거든요. 기회는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옵니다. 끈기와 인내로 버티다 순간적인 기지와 창의력을 발휘하는게 이 직업의 묘미인 것 같아요."


전세화 기자 cand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