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일본 등 국가별 20가지 메뉴 개발 직접 한국의 맛 전수

“해외의 유명 한식당에서 한국 음식을 제대로 먹어 보지도 못한 외국인들이 한국 음식을 만들어 내놓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한식과 한국 음식 문화에 관한 최고 전문가가 최근 외국의 한식당들을 다녀왔다. 윤숙자 한국전통음식연구소장. 6~7월에 걸쳐 진행된 방문 목적은 한국 음식과 식문화에 대한 올바른 교육과 홍보를 위해서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식당들만으로 대상으로 한 이번 방문의 공식 명칭은 ‘국외 한식당의 문화적 고품격화 사업’. 농림수산식품부가 한국전통음식연구소, 한국외식산업경영연구원과 함께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벌인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해외 최고의 한식당인데도 주방에 한식 전문 조리사가 거의 없었습니다.” 먼저 중국과 일본의 한식당 교육을 마치고 돌아 온 윤 소장이 내린 평가 점수는 별로 높지 못하다. 한 마디로 “한식이 갈 길이 바쁘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 그가 내린 결론.

“중국 한식당의 많은 조리사들은 제대로 된 한식을 먹어보지도 못했고 제대로 된 한식교육은 받아보지도 못한 채 자신도 모르는 한식을 만들어서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이라고 사정이 그리 나은 것 만도 아니다. “일본 한식당의 조리사들 또한 대부분 일본에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한국교포들이었고 생계형이었습니다. 그들 역시 한식조리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 상황이었습니다.”

중국 베이징의 한식당 몇몇 곳에서는 안동찜닭을 만들어 보는 실습 기회를 가졌다. 공통적인 현상은 달지만 윤기가 흐르지 않았다는 것. 여러 이유 중 전반적으로 레시피를 적지 않고 오직 시각적 기억만으로 조리하는 탓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닭을 청주와 생감즙에 재는 과정 등을 설명하고 원리를 얘기해 주자 현지 조리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면이 더 풀어지는 경우도 해소됐다.

정확한 계량과 시간이 없다 보니 드러나는 ‘맛의 폐해’는 특히 해물전골에서 두드러졌다. 대부분의 식당에서 국물이 공통적으로 ‘쓴 맛’을 가졌던 것. 새우의 내장을 제거하고 국간장을 사용해 우리 고유의 레시피에 의해 조리해 주니 깊은 맛을 낼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줬다. 또 더덕 샐러드를 만들 때 더덕의 껍질을 벗겼을 때와 벗기지 않았을 때의 무게에 차이를 둬야 하는데 이를 혼동해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견됐다.

“일부 중국인 조리사들 중에는 마늘과 파를 양념으로 사용할 때 ‘다진다’는 의미를 모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강사가 잘게 다지는 이유를 설명하자 더 적극적으로 다지는 모습도 보였죠.”

교육은 국가별로 개발된 20가지 한식 메뉴를 강의하고 직접 주방과 홀에서 조리해 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반응도 뜨거워 일부 한식당에서는 주변의 다른 한식당 경영자와 주방 직원들까지 직접 찾아와 강의를 경청하는 열의도 보였다.

특히 중국에 있는 한식당들이 한식 메뉴를 만들 때 ‘제대로 된’ 한식 식재료들이 없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일례로 해물 전골을 만들 때 미더덕이 없어 바지락을 대신 이용하라고 추천했다.

윤숙자 전통음식연구소장(오른쪽 두번째)이 일본 도쿄에 있는 한식당‘처가방'에서 직원들에게 한국 음식의 조리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 옆은 오영석 처가방 대표.
윤숙자 전통음식연구소장(오른쪽 두번째)이 일본 도쿄에 있는 한식당'처가방'에서 직원들에게 한국 음식의 조리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 옆은 오영석 처가방 대표.

또 중국 배는 수분이 별로 생기지 않아 대신 물을 약간 넣도록 조언하기도 했다. 유자감로빈을 만들 때는 현지 찹쌀 가루를 써보니 멥쌀이나 다른 전분이 첨가된 듯 쫄깃한 맛이 살아나지 않았다. 현지 떡집을 이용해 찹쌀 가루를 직접 구입해 오기도 했다.

“한국 요리의 특징과 재료를 준비하는 과정이 중국과는 다르다는 것을 체감하도록 해 주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윤 소장은 “이들이 한국 요리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돼 흥미진진해 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돼 보람을 느꼈다”고 전한다.

식당 주인과 조리사 중에 상대적으로 한국인이 많았던 일본내 한식당들에서는 좀 더 수준높은 교육이 이뤄진 편이다. 이미 한식에 더 익숙해져 있기도 하지만 수강생들이 세세한 부분까지도 관심을 갖는 등 매우 진지했다는 것이 총평.

‘양념은 양념재료를 모두 한데 섞어 설탕이나 소금이 다 녹은 후 사용해야 맛이 동일하게 난다.’ ‘고기를 구워 낼 때는 타지 않게 중불에서 구워 내어야 한다. 불의 온도도 중요하다.’ ‘궁중떡볶이의 굳은 떡은 삶아 찬물로 헹구어 낸 후 참기름으로 유장 처리한다’ ‘숙주는 살짝 단시간에 데쳐 물에 씻지 않는다’ ‘센불에서 채소들은 흰색부터 센불에 볶아 주어야 물이 생기지 않는다’ ‘핏물제거한 고기는 결대로 썰어야 깔끔하다(불고기나 편육은 결의 반대반향으로)’ ‘풋고추는 볶을 때 소금을 약간 넣어야 더 푸르다’ 등등 대표적인 세부 교육 내용들은 제법 깊이가 있다.

교육 효과도 즉시 나타날 정도로 반응도 뜨거웠다. 많은 조리사들은 강사가 만들어 준 맛을 기억해 다시 본인 스스로의 조리만으로도 같은 맛을 만들어 내는 집중력을 보였다. 윤 소장은 “한국 음식의 맛이 더 이상 왜곡되지 않는 신호”라고 받아들인다.

특히 외식 산업의 특성상 중국은 메뉴 개발이 주기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상황. 때문에 이번에 국가별로 20여가지 한식 정통 메뉴 조리법이 전수돼 현지 식당 경영주들과 조리사들은 “큰 도움이 됐다”며 환영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교육을 마친 윤 소장은 특히 한류를 한국 음식의 세계화와 연관 지어 우려를 잊지 않았다. “한류열풍이 양국에 상륙, 그와 더불어 한식에 대한 관심과 선호도가 증가한 것도 사실입니다. 일례로 일본의 식당에는 한류 스타 사진과 그가 머물고 간 자리에 열성 팬들이 모여서 빈 의자에 둘러 앉아 그 스타의 생일잔치를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윤소장은 이어 “그렇다면 한류가 지나가면 한식당은 무엇으로 승부해야할 지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제는 한식의 맛으로 승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진정한 한식의 맛을 먼저 알리고 그 나라 현지인의 입맛에 맞게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지요”

“처음 조리교육을 시도하려고 했을 때 그저 덤덤하던 그들이 한식 메뉴 개발 조리교육을 받은 후 스스로 연구하고 개발하려는 자세를 보였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와서 더 배우고 싶다고도 했습니다.” 윤 소장은 “강의에 참가한 한식당 관계자들은 물론, 현지인들에게 한식의 정체성을 제대로 알려 줄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며 “이런 과정을 통해 한식 세계화가 더욱더 앞당겨 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원식 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