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유치진엔 연극 정신 배워"연극은 무대예술의 뿌리 예술인 긍지 갖을 만큼 자기 연마 필요

한국 연극 100년을 논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사람이 배우 백성희(83)다. 1944년 연극 ‘봉선화’로 데뷔한 그녀는 현재까지 국립극단 단원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올해 봄만 해도 한국연극 100주년 기념작 <백년언약>의 주인공으로 무대에 올랐다. 함세덕, 유치진 등 당대 최고의 연출가와 함께 작업한 그녀에게 한국연극 100년사에 대해 들었다.

■ 연극의 역사


“함세덕 선생이 서왕석 선생(국립극장 초대 극장장) 각색 작품에 내가 출연한 걸 보시고 연극하자고 말씀하셨죠. 두 분이 친구셨어요. 그때 서왕석 선생 말씀 듣고 ‘저 연극하고 있지 않습니까?’ 말했더니, ‘아니, 이건 가극. 문학으로 치면 이건 대중문학, 연극은 순수문학’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연극이 뭔지 확실히 구분하고 현대극단에 들어갔죠.”

한국 연극계의 산증인, 백성희 씨는 연극에 입문했던 40년대를 이렇게 회상했다. 빅타무용연구소에서 무용과 발성 등을 익힌 그녀는 현대극단에 입문해 배우의 길을 걸었다.

당시 체계적인 교육기관이 없어 선배들의 연기를 보며 연극을 배웠다. 여배우 김선영(월북, 국립민족예술극장 소속배우로 활동하다 95년 사망)의 연기 스타일을 배워 ‘눈감고 들으면 김선영 말투’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많은 부분을 닮았었다.

“연극계에서 제일 존경하는 선배를 김선영 씨라고 그래요. 그때 김선영 씨는 현대극단에 프리마돈나였지. 현대극단 뿐만 아니라 당시에 첫 손 꼽히는 유명한 여배우였어요. 그분이 저를 예뻐하시고, 혼자 계시면 밤낮으로 불러. 그리고 ‘열심히 해, 국립극장 네 꺼 아니니’라고 말씀하셨죠. 저한테는 그분 영향력이 대단히 커요. 모든 예술이 다 그렇지만 선배들 흉내를 내다가 자기화 되잖아요. 그때 전 어쩌면 김선영 씨를 흉내 냈었는지도 몰라요.”

월북 배우 김선영이 연기의 스승이었다면, 극작가이자 연출가 유치진은 연극의 정신을 심어준 사람이다. 백성희 씨는 지금의 20~30대 젊은이들이 한국 연극사조를 공부하며 들었던 연극계 거목들과 함께 작업하며 성장한 셈이다. 그녀의 일생에는 한국 연극 100년사가 고스란히 들어있는 듯했다.

백 씨는 “유치진 선생은 아주 여성스러운 분이다. 체구는 크고 잘 생겼는데, 목소리가 가늘고 말투도 아주 고왔다. 그 분이 연출하면 일단 모두 긴장했다”고 기억했다.

“명동 성당 밑에 베이비 골프장이 있어요. 하루는 저랑 최은희 씨랑 점심 먹고 그곳에 갔죠. 그날 따라 사람이 많아서 기다리다가 둘 다 여배우니까, 유치진 선생한테 애교떨자고 하고 한 10분 늦게 들어갔어요. 근데 도착해 보니 유 선생님이 화를 내시는데, 손을 허리춤에 놓고 부르르 떠시더라고.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예술이 시간이에요. 시간관념 없이 무슨 얘기를 하겠다는 겁니까, 그만 두세요. 다들’하시는데, 예술가의 혼을 발견했다고. 눈물 뚝뚝 흘리고 잘못 했습니다 했죠. 저도 아직 그래요. 사석에서는 흉허물 없지만, 약속시간에 늦거나 연습을 안 하면 불벼락이에요.”

■ 시대 따라 달라지는 연기


가끔 60~70년대 드라마와 영화를 보면 웃음이 날 때가 있다. 과장된 연기와 어색한 성우 더빙 때문에 당대 최고의 멜로물이 이제는 코미디로 보이기 십상이다. 연극도 드라마나 영화처럼 연기 스타일이 변했을까. 변했다면 과거에는 어떤 연기가 사랑받았을까. 백성희 씨는 “모든 예술은 시대와 더불어 가는 것”이라며 지금과 사뭇 다른 50~60년 대 연극과 연기 방식에 대해 설명했다.

“저는 번역극을 많이 했어요. 서구 연극이니까 모델을 찾았죠. 예를 들어서 테네시 윌리암스의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를 할 때는 말론브란도와 비비안리 주연의 영화를 구해서 봤어요. 당시에는 머리도 그렇게 금발로 염색을 하고 아이섀도우로 눈도 파랗게 화장하고 무대에 올라갔어요. 미국사람들이 ‘오~노!’하면서 행동을 크게 하잖아요. 나도 똑같이 무대에서 ‘아니!’라고 말하며 크게 행동을 하죠. 그때는 (서구 연극의) 메신저 역할을 했는데, 관객들은 그게 아름답다고 말했어요. 요즘은 그렇게 과장하지 않고 우리식으로 소화하죠. 연기는 시대감각을 녹여내요.”

64년 동안 약 400개의 작품에 출연한 그녀는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유진 오닐의 <느름나무 그늘의 욕망> 차범석의 <산불> 노경식의 <달집> 김동리의 <무녀도> 등 깊이 있는 연극을 꼽았다.

2004년 초연한 그녀의 자전적 연극 <길>에 대한 소감을 물어보자 “자전적인 얘기라 그리 기억에 남기고 싶은 게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연극에 대한 완벽에 가까운 결벽성과 소신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젊은 연극인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질문하자 목소리가 높아진다. 매스컴이 발달하면서 제대로 훈련된 연극배우가 드물다고. 이순재, 신구, 최불암 등 텔레비전에서 여전히 건재하게 활동하는 중년의 배우들은 모두 국립극장에서 연극의 기본을 닦은 사람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그녀는 스타를 꿈꾸는 젊은 연극인에게 기초를 닦으라고 조언했다.

“연극이란 건 육성을 쓰죠. 무대에서 혼자 관객을 흡입해서 끌고 가는 게 연극이거든. 카메라, 편집, 아무 것도 도움 주는 게 없어요. 이런 연극의 기초를 다 잊고 가요. 연극 배우는 예술인이라는 긍지를 가질 만큼 자기 연마를 해야 되요. 연극은 무대 예술의 뿌리라고 생각해요. 뮤지컬, 오페라, 드라마 이런 극을 위해서는 뿌리인 연극이 건전해야 하거든. 잎사귀고 싱싱하고 좋은 열매를 맺고 그 열매가 국민한테 영향을 주는 거죠. 매스컴의 스타가 되고 싶은 사람도 기초를 닦았으면 합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