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적인 안목으로 베이징 2호점·LA지점 개설 화랑 글로벌화 앞장

2008 베이징 올림픽이 끝났다.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따낸 메달 만큼이나 국내 화랑들 역시 올림픽 특수를 톡톡히 누렸다. 그 가운데서도 ‘표 갤러리’의 성과는 유독 눈에 띠는 듯 하다.

올림픽 기간동안 한국 화랑으로는 유일하게 표 갤러리가 베이징 올림픽 공원에 미국 조각가 조나단 브롭스키의 작품을 전시하는 쾌거를 누렸다.

“중국 미술 시장에 진출하면서부터 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올림픽 때 조각 공원에 작품을 설치하는 거였어요. 외국 화랑으로는 저희가 유일하게 공원 내 작품을 설치했습니다. 소원을 성취했다고나 할까요.”

2006년 중국 베이징 지우창 지역에 ‘표 갤러리 베이징’ 지사를 설립한 표 갤러리 표미선 대표는 2년이 지난 지금 자신의 바람 하나가 이루어졌다며, 처음으로 중국 미술 시장에 진출했던 당시를 회상하기 시작했다.

“지금과는 달리 2000년대 초반만해도 중국 내 갤러리나 미술 공간의 개념은 굉장히 생소했기 때문에 중국 미술 시장에 진출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도전이자 모험이었어요. 하지만 저는 중국 미술 시장의 무한한 가능성을 봤습니다. 중국 사람들의 문화적 욕구와 문화 향유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는 것을 느낀 거죠. 2위안하는 아침끼니를 굶고서라도 22위안하는 전시회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중국인들이에요. 10시에 오픈 하는 전시가 9시 반이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뤄요. 중국 사람들의 이런 강렬한 문화욕구를 보고 하루빨리 중국 시장에 진출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독일과 영국 화랑 정도가 전부였던 2006년, 베이징 지우창에 제2의 미술 거점을 확보한 표 갤러리는 최근에는 또 다산쯔 798 지역에 ‘표 갤러리 베이징 2호점’을 오픈 했다.

“물론 지우창의 1호점이 문화적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해줬다고 생각하는데 중국이 워낙 큰 나라다 보니 지역별로 관람객 성향이 천차만별인 거예요. 지우창 표 갤러리에서 해소하지 못한 관람객들의 문화적 욕구를 다산쯔 지역 표 갤러리 2호점에서 마저 충족시켜 주는 게 목표예요”

현지 중국 관람객들의 성향과 관련해 유독 체제성과 철학의식이 담겨 있는 작품을 선호한다고 말하는 표 대표는 “작품을 리얼하게 표현하면서 그 이면에는 작가의 철학이나 시대의식, 묵직한 주제가 담겨 있어야 중국인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며 “추상적인 작품에는 호응을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중국인들은 자신들이 문화 대국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만큼 진지하게 그림을 감상하고 하루종일 전시회장을 떠나지 않을 만큼 심취해서 작품을 보는 것이 그들의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표 갤러리는 중국 미술 시장을 공략한데 이어 지난 7월에는 미국 LA에 표 갤러리 LA지점을 개설했다. 중국 지점과 마찬가지로 LA지점 역시 표미선 대표의 미술문화 발전을 향한 열정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분들이 아시아 갤러리들이 밀집한 뉴욕이 아닌 동떨어진 LA에 갤러리를 오픈 했는지 궁금해 하세요. 저는 아시아 갤러리들과 함께 모여 지역적인 특성이나 집합효과에서 오는 발전보다는 독립적으로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기르고 싶었어요. 그래서 뉴욕이 아닌 LA를 선택한 겁니다. 첫번째 전시로 김창열 선생님 작품을 선보였는데 현지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표 갤러리 기사가 가득했을 만큼 반응이 뜨거웠어요. 보통 작은 규모의 작품을 전시하는 게 일반적인데 저희는 100호 이상 되는 대형 작품들 위주로 소개를 해서 많이 놀라셨대요.”

이처럼 200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끊임 없이 해외 미술 시장을 타깃으로 화랑의 글로벌화를 이끌어 나가고 있는 표미선 대표는 중국이든 미국이든 나라와 관계없이 화랑만의 구체적이고 단계적인 전략이 기초가 돼야 해외 시장 진출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화랑은 1~2년 안에 성공을 가시화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적어도 5년 이상은 지나야 겨우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게 화랑이라고 생각해요. 무엇보다도 끊임 없이 많은 경험이 필요한 것 같아요. 다양한 미술 비엔날레나 아트페어, 경매 등과 같은 행사를 익히고 체화하고 그 분위기를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거죠. 적어도 한 작가의 작품을 100점 이상씩 보고, 사고, 팔아봐야 미술 시장의 흐름을 알 수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미술 장르가 선두 할지 또 어떤 작가가 인기를 끌지에 대한 예측이 가능할 때까지 미술 시장을 연구하고 경험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세계 미술계의 주류를 읽을 수 있을 때 비로소 화랑의 국제 경쟁력이 갖추어 지고, 해외 진출에 성공할 수도 있는 겁니다.”

표미선 대표는 단기간에 결실을 얻으려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 화랑들의 성공적인 해외 진출에 필요한 제1조건이라며 “장기적으로 항상 후속 작가와 전시를 염두에 두고 1번이 아니면 2번, 2번이 아니면 3번, 계속해서 다음을 준비할 수 있는 대안과 대책을 가지고 있어야 외국에 화랑을 오픈하고 전시를 하더라도 실패하지 않을 수 있다”고 전했다.

결과적으로 다양한 경험과 포기하지 않는 도전의식을 통해 현재는 물론 앞으로를 내다볼 수 있는 미래 지향적이고 창조적인 화랑이 돼야 한다고 말하는 표 대표는 “절대 작가와 작품, 장르는 사라지거나 죽지 않는다”며 “사람들은 계속해서 특정 장르의 미술이 소멸했다고 이야기하지만 여전히 그것들은 존재하고 있고, 단지 지금 시대가 원하지 않기 때문에 소홀해졌을 뿐 언젠가 시대가 원하는 장르, 작가가 됐을 때 다시금 주목 받게 될 것이다”면서 미술 시장의 흐름 역시 특정한 주기가 있어 돌고 돌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모두가 지금이 원하는 작가와 작품만을 쫓다 보면 주저 앉게 돼 있어요. 미래를 보는 눈을 기르고 앞으로를 대표할 작품과 장르를 미리 찾아내는 게 더 시급한 거죠. 창조적이고 개성 있는 작가와 작품들을 발굴하는 게 현재 화랑들이 해야 할 일이고 저 역시 따라야 할 몫입니다.”

자신만의 독창성과 의식을 가지고 유일무이한 창조적 작품을 만들어 내고 또 찾아내야 한다고 말하는 표미선 대표에게서 미래 한국 미술계의 밝은 희망이 느껴졌다.


윤선희 기자 leonelga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