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3국에 포커스, 대구 사진 메카로"'내일의 기억' 전과 세 개의 특별전 하이라이트… 시간이 축적된 것에 개인적 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란 말이 있다. 철학자 칸트가 자신의 ‘순수이성비판’에서 사용한 용어로 과학적 인식의 근거를 객관으로부터 주관쪽으로 옮겼다는 점에서, 천문학상의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地動說)에 비견할 만한 인식론상의 전환을 뜻한다. 한마디로 어떤 틀에박힌 고정관념을 깨버린 것이다.

한국사진 역사에서 1988년 5월 서울 워커힐미술관에서 열린 <사진, 새 시좌전(The New Wave of The Photography)>이 그러하다. 진동선 한국사진연구소 소장은 이 전시가 그후 야기한 한국사진의 지형변화를 3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다양한 매체의 활용, 즉 찍는 사진에서 벗어나 회화 혹은 미술의 창작방법론을 적극 수용해 이른바 ‘만드는 사진’을 수용했다는 점이다.

둘째, 국제성의 인식이다. 비록 소수의 유학파에 의해 전개되었다 해도 처음으로 사진의 글로벌리즘을 수용한 세계성의 인식이었다. 셋째는 미술과의 통합, 즉 현대미술로서 사진의 표현가능성을 재인식시켰다는 점이다.

진동선 소장은 “20년 전 <사진, 새 시좌전>이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사진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한다. 이후 1991년 <한국사진의 수평전>을 거치면서 사진의 현대성이 구현되고, 현대미술로서 사진의 위상도 격상됐다.

그러한 두 역사적 사진전의 중심에 구본창(55) 사진작가 있다. 1980년대 중반, 독일 유학에서 돌아온 구본창은 사진 매체를 통해 자신의 극히 사적이고 내면적인 의식세계를 절제되고 섬세한 터치로 표현한 작품을 선보여 당시 한국 사진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는 단순한 작가로서의 역할에 안주하지 않고 한국 사진계에 변화를 주는 몇가지 중요한 작업을 해왔다. 앞서 두 사진전을 비롯해 <아! 대한민국>(1992), <정해창>(1995), <신체와 성>(1995) 등 굵직한 사진전을 기획했다.

뿐만 아니라 시야를 넓혀 해외에서도 (2000, 휴스턴 포토페스트), (2001, 호주 시드니 ACP) 등의 전시기획을 맡았고, 일본 기요사토 사진박물관에서 개최된 ‘오라클(세계 사진 관련 큐레이터들의 모임)’에서의 한국 현대사진 특강, 런던 세인트 마틴 스쿨 초청교수 위촉 등 국제적으로도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

이러한 국내외 전시기획과 강연 등을 통해 구본창은 자신의 사진세계와 더불어 그때까지 빛을 보지 못하던 역량있는 한국 사진가들을 널리 알리는데 공헌을 했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사진전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2년 전 첫발을 내딛은 <대구사진비엔날레>는 지난해 말 구본창 작가에게 실무사령탑인 전시감독의 중책을 맡겼다.

내달 10월 30일 오픈을 앞두고 구 전시감독은 지난 1년을 쉴 틈 없이 달려왔다. 1년여의 시간에 국제비엔날레를 개최해야 하는 턱없는 무리수를 조금이나마 만회하기위해서다.

대구와 서울을 오가며 마무리에 바쁜 그를 운좋게 2일 만날 수 있었다. 경기도 분당 작업실에서 서울 명동까지 나온 그에게선 대구사진비엔날레의 총감독이자 홍보대사 분위기가 물씬 났다.

<대구사진비엔날레 2008>는 10월 30일 개막해 11월 16일까지 열린다. 세계 10여 개국 200여 명의 작가가 참여하며 사진전(주제전, 특별전, 화랑기획전), 포트폴리오리뷰, 국제심포지엄, 대구의 하루, 한일작가교류전을 비롯한 다수의 기획전 등이 펼쳐진다.

우선 한달 반 가량 남은 비엔날레 진행상황이 궁금했다. “90% 정도는 된 것 같아요. 전체적인 전시기획은 다 됐고, 포트폴리오리뷰와 관련해 큐레이터, 관계 전문가, 기획하시는 분들과 작가와 작품 선정, 전시규모를 정하는 등 마지막 퍼즐을 맞추듯이 기본 골격은 거의 갖춘 상태에서 세부 디테일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이번 2회 대구사진비엔날레는 한ㆍ중ㆍ일 3국의 사진전에 비중을 두었다. 구본창 전시감독은 “사진이 발달한 유럽이나 미국과 차별화하고 외국의 많은 사진 관계자들을 불러모으려면 한ㆍ중ㆍ일 작가의 작품을 한꺼번에 보여쥬는 게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햇어요. 또 한중일은 서로 문화적으로도 굉장히 밀접하게 교류해왔던 국가이기도 하고요.”

그는 한국 사진의 현주소와 3국 동시전을 통한 시너지 효과도 언급했다. “한국이 미술계, 특히 사진계에서 변방에 잇는 국가라는 점도 작용했죠. 예를 들어 김아타 같은 경우는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지만 한국 사진계에 대한 외부의 인식은 거의 없다고 해야합니다. 일본 사진만 하더라도 작가가 잇고 역사가 있어요. 중국 역시 최근 예술이 부흥하면서 사진까지 주목받고 있는 상황이지만 한국보다는 나은 상황이라고 봅니다. 결국 한국 사진이 국제무대에서 주목을 받기 위해서 상대적으로 국제적 인지를 얻고 있는 일본과 중국 작가들을 포함시키게 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전시회 중 하나인 ‘동북아시아 100년 전’은 상징적이다. 한국, 중국, 일본의 100년 전의 과거를 조망하는 사진전으로 사진이 도입된 시기의 우리나라의 모습과 이웃나라인 중국과 일본의 시대상, 서양인이 보고자했던 동북아시아의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대구사진비엔날레의 진수는 뭐니뭐니해도 주제전(내일의 기억)과 세개의 특별전(변해가는 북한 1950~2008, 공간유영, 숨겨진 4인전)이다.

‘내일의 기억전(Mories of the Future)’는 한국, 중국, 일본의 과거와 현재를 집중 조명하는 코너로 3국의 40여 명작가들의 작품 400여 점이 나라별로 각각 전시된다. 세계의 문화ㆍ경제적 허브로 부상하고 있는 동북아시아의 사진예술 경향을 한 자리에서 감상하고 각 국의 문화적 공통점과 차이를 동시에 이해할 수 있는 전시다.

‘내일의 기억’이란 타이틀에서 인간 내면에 천착해 온 구 전시감독의 포스트모던적인 예술세계의 흔적이 묻어나 기획의도를 물었다. “사진이란 찍는 순간 과거의 기록이 되어버리잖아요. 하지만 작가들은 이미지가 굳어진 화석이 되기보다는 프레임 안에서 계속 숨을 쉬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살아있는 화석이 되길 바라죠. 오늘의 작가, 내일의 작가도 사진의 역사 속에서는 한 장으로 과거로 돌아가는 게 사진의 특성이죠. 그러한 사진의 속성을 ‘미래에 대한 기억‘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특별전 중 구 전시감독이 큐레이터를 맡은 ‘숨겨진 4인전’이 궁금했다. “주제전이 현대 작가의 작품전에 주력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된 193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작가 중에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재능과 작품 면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할 작가 네 명을 소개하는 전시입니다.”

그와 얘기를 하다보니 대구사진비엔날레의 현재, 그리고 미래의 가치와 의미는 짐작 이상이다. 이런 행사를 1년여만에 정상 궤도에 올려놓은 구 전시감독의 역량이 놀랍다. 반면 국제적 행사치곤 아쉽고 허술한 점도 느껴진다. 세계 유수의 비엔날레와 비교해 연륜이 짧은 것을 감안하더라도 미래를 위해 보완해야 할 사항들이다.

“외국은 비엔날레를 수년 전부터 준비하고 행사가 끝나는 순간 다음 비엔날레를 준비합니다.우리는 행사가 임박해서야 서둘러 급하게 진행해요. 또 전(前) 행사에서 노하우를 축적하고 시행착오를 줄여야 하는 노력도 부족한 것 같아요. 광주비엔날레만해도 행사를 주관하는 운영체제를 갖추고 있고 비엔날레를 풍성하게 하는 광주만의 음식문화, 다채로운 예술행사 등이 있는데 이런 점에서 대구사진비엔날레는 부족해요.”

그는 대구시의 열정과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구사진비엔날레가 자리를 잡으려면 초기에 뿌리를 제대로 내려야 합니다. 행사를 위한 행사, 저비용으로 생색내기, 요식행위가 되어선 안됩니다. 대구사진비엔날레라가 아시아, 나아가 세계 유수의 사진비엔날레가 되려면 대구시부터 마인드가 바뀌어야 해요.. 눈앞만 보지말고 장차 대구사진비엔날레가 가져올 미래 수익을 고려해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합니다. 중국과 일본도 국제적인 사진비엔날레를 모색하려는 것으로 알고있는데 이들 국가들과의 경쟁에서 한번 뒤지면 아시아 사진전을 빼앗길 수도 있어요. 미국이나 유럽이 사진전을 어떻게 운영하는지 직접 가서 보고 벤치마킹이라도 했으면 합니다.”

대구사진비엔날레의 가능성과 한계는 한국 사진계의 상황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 사진 전문 박물돤, 미술관이 턱없이 부족하고, 사진 전문 출판사는 아예 없다. “사진을 역사적으로 자리매김해줄 수 있는 한미사진박물관이 생긴지 얼마 안되고 부산의 고운사진미술관처럼 상업적으로가 아니라 사진 발전을 위해 나름대로 앞장서시는 분들이 있으나 많이 부족하고, 적자를 보면서도 사진 책을 내 전 세계에 일본 사진을 알리는 일본 출판계는 부러움의 대상이죠.”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안정된 직장을 다니다 뒤늦게 사진의 길에 들어선 지 어언 30년. 그에게서 사진은 어떤 의미일까. “시간의 공유라고나 할까요. 삶, 역사, 문화 시간과 매개된 것들을 사진을 통해 소통하는 거죠. 개인적으로는 남들이 읽을 수 없는 시각을 내 카메라에 담아 제3자에게 전달하고자 합니다. 일상적이고 시간이 축적된 것을 내 시선으로 봐서 대상이 가지고 있는 역사, 시간이 축적되면서 생긴 이야기들을 제3자에게 전달하는데 고민을 많이 하죠.”

사진작가가 되려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부탁하자 ‘작가 의식’을 강조한다. “저도 아직 노력하는 작가인데…. 작가가 되느냐 안되느냐는 이 시대에 어떤 이야기를 해서 어떤 메시지를 남기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개성이 있어야되요. 남의 유명세를 따라가는게 아니라 자기가 볼 수 있는 소재를 찾고 그것을 이 시대에 말해야 작가가 될 수 있습니다. 카메라가 주는 매력에 뻐지면 작가가 못되고 동호인 수준에 머무릅니다. 사진을 통해 무엇을 애기하고 싶은 건지, 메시지와 컨셉트가 확실해야 합니다. 부단한 노력을 해야죠.”

구본창 전시감독의 땀이 배인 대구사진비엔날레가 ‘내일의 기억전’으로 남아 한층 든든한 뿌리를 내리길 기대해 본다.

■ 구본창 약력

1953년생, 연세대경영학과 졸업(1975), 독일 함부르크 국립 조형미술대학교 사진ㆍ디자인 전공(1979~85), 함부르크 국제미술 아카데미 초청 교수(1972), 런던 킨스턴대, 스텐리피커 갤러리, International Fellowship(1997), 런던 세인트 마틴 스쿨 초청교수(1999), 계원조형예술대학 사진전공 교수(1999~2001) 서우르 뉴욕, 파리, 도쿄 등에서 다수 전시. 대구사진비엔날레2008 전시감독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