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병원 허용하면 의료 서비스 질 저하·의료비 부담 가중 불 보듯

최근 제주 영리병원 허용 논란을 계기로 2005년 외국인 영리병원 허용 이래 계속돼온 의료민영화를 둘러싼 찬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 제주 영리병원 설립 허용은 영리병원 전국화와 더 나아가 의료민영화의 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영리의료법인 도입은 제주 도민들의 반대로 일단 무산됐다.

그러나 제주 도민들을 비롯해 대다수 시민들은 의료비 폭등, 의료 양극화 등의 악몽을 계속 꾸고 있다. 영리병원 허용,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완화, 민간보험 활성화 같은 의료민영화 추진은 반대 여론을 의식해 소강상태에 있을 뿐, 현재 진행형이며 빠른 속도로 전국에 확산될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공통된 전망이기 때문이다.

민영화가 의료서비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필요하다는 정부 측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포에 떨고 있을까.

의사이자 보건의료 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정책실장을 만나 의료민영화에 대한 전망과 맹렬히 반대하는 이유를 들어봤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 때처럼 영리병원 허용을 반대하며 촛불시위를 했느냐고요? 어떻게 하지 않을 수 있느냐고 되묻고 싶네요."

우 실장은 의료민영화를 결사코 반대하는 이유를 절박한 어조로 답했다. 민영화에서 그가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하는 부분이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다.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는 공적 성격의 의료보험을 크게 약화시키고, 민간 보험에 가입할 경제적 여유가 없는 저소득층은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비수혜층을 증가시킬 것이라는 게 불보듯 훤하기 때문이다. 현재도 민간보험은 널리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란 암을 비롯해 질병에 걸렸을 때 건강보험이 지불한 치료비를 제외한 금액을 전부 보장해주는 '실손형 보험'을 뜻한다. 정액형 보험이나 손해보험과 달리 치료비가 나오는 대로 지불해주는 실손형 보험은 얼핏 좋은 것처럼 보이나 치명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실손형 보험을 판매하는 보험회사는 손해 보지 않는 장사를 하기 위해 건강보험공단 및 심평원과 개개인의 세세한 질병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노인이나 기존 병력 소유자, 장애인 등은 가입시키지 않거나 지급률을 낮게 설정한다. 또, 보험회사가 병원과 계약을 맺고 병원의 진료내용을 관리하게 된다. 보험회사가 심한 두통으로 찾아온 환자에게 치료비 지급을 피하기 위해 MRI를 찍어주지 않도록 병원 측에 지시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보험회사 입장에서 실손형 보험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줄어들어야 한다. 따라서 의료보험의 공익적 성격을 크게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의료제도 자체를 바꾸게 될 것이라는 게 우 실장의 설명이다.

"이명박 정부는 의료보험 민영화를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혔지요. 하지만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는 올해 3월 의료법 개정사안으로 기획재정부에 제출된 상태이고, 민간 보험회사들과 정부의 물밑 작업도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라는 말이 나오면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의 장면을 연상하는 이들이 많다. 전기톱에 손가락 두 개가 잘린 무보험 환자가 병원을 찾는다.

병원 측과 수술비용을 놓고 흥정을 벌이던 환자는 잘린 두 개의 손가락 중 약지 하나만 1만2,000달러에 붙여달라고 호소한다. 또 다른 장면에는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 오른쪽 다리에 생긴 상처를 스스로 꿰메는 실업자도 등장한다. 자궁경부암은 22세에 걸릴 병이 아니라는 이유로 수술비 지원을 거절당한 여성도 있다. 영리업체들이 의료보험시장을 장악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끔찍한 상황들이다.

<식코>의 상황 설정을 지나친 과장이라며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2004년 7월 무보험자인 한인교포 문철선 씨의 안타까운 사망소식을 보도했다.

뉴욕에 살던 문 씨는 운동 중 머리를 다쳐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단층촬영을 마친 병원 측은 문 씨의 뇌출혈 사실을 확인했으나 "그냥 진통제를 복용하라"며 그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병원은 무보험자인 그가 엄청난 의료비를 감당할 수 없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문 씨는 결국 수술 한번 받아보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1. 과천정부청사 앞마당에서 열린 의료법개악저지법 의료계총궐기 대회에서 이료인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류효진 기자
2. 한미 FTA 저지 보건의료대책위 회원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1일 막바지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하얏트호텔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광우병과 의료비 폭등이 우려되는 협상의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원유헌 기자
3. ‘식코’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
4. 병원이 상업화되면서 귀족 의료 서비스로 환자를 유치하는 병원들이 늘고 있다.
1. 과천정부청사 앞마당에서 열린 의료법개악저지법 의료계총궐기 대회에서 이료인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류효진 기자
2. 한미 FTA 저지 보건의료대책위 회원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1일 막바지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하얏트호텔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광우병과 의료비 폭등이 우려되는 협상의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원유헌 기자
3. '식코'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
4. 병원이 상업화되면서 귀족 의료 서비스로 환자를 유치하는 병원들이 늘고 있다.

“우리나라 의료민영화의 미래는 미국이라며 공포에 떠는 분들이 많은데요. 그나마 미국처럼 된다면 참 다행입니다. 미국은 전체 인구 가운데 6분의1은 건강보험이 아예 없고, 절반 이상은 일부 보험혜택을 받을 정도로 개인의 의료비 부담이 큰 나라예요. 하지만 그래도 인구의 10%가 무료 의료보험 혜택을 누리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2.8%만이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미국에선 65세 이상이면 공공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지만 우리나라에선 그런 혜택이 없어요. 우리나라는 공공의료체계가 미국보다 훨씬 부실한 실정인데, 의료의 민영화가 지금보다 더 많이 진행되면 의료체계는 미국이 아닌 멕시코나 남미의 국가들처럼 될 거예요."

우 실장이 제시한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지금도 영리화 될 만큼 영리화돼 있다.

우리나라는 전체 국민의료비 중 공공재정 비중이 매우 작다. OECD국가의 평균 국민의료비 지출 중 공공지출 비율이 73%다. 우리나라는 의료비 지출의 53%만을 국가가 부담하고 있다.

사회복지체계가 잘 갖춰져 있는 유럽의 경우, 공공의료 공급 비율이 60~90%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10% 안팎이다. 유렵에선 한 개인이 1년 동안 아무리 많아야 50만원 이상을 의료비로 쓰지 않는다. 그 이상의 금액에 대해서 국가가 부담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떤가. 미래를 상상할 필요도 없이, 주위에서 암 등 집안에 중병에 걸린 사람 때문에 경제파탄 위기에 놓인 가계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 복지예산이 최하인 나라예요. 노동시간은 1위, 산재율도 1위, 자살율은 1위를 차지하고 있죠. 이렇게 극단적으로 복지가 없는 나라에서 복지병을 탓하고 있다니, 말이 되는 소립니까."

영리병원 문제도 마찬가지다. 우 실장에 따르면 지금도 국내 병원은 돈벌이 운영을 하는 정글 자본주의다. 병원이 시장화될 때로 시장화돼 있다는 말이다.

유럽 전체에서 PET 기기가 4개뿐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제작년 기준 40개 넘게 보유하고 있다. MRI 기기는 세계에서 두번 째로 많고, CT장비 보유 숫자도 세계에서 2~3위를 기록하고 있다. 국내 병원들은 이처럼 고가의 진단장비를 들여놓고, 환자들에게 불필요한 검사를 받도록 유도해 수익을 내고 있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병원의 대형화 역시 상업주의가 빚은 결과다. 삼성서울병원은 올해 암센터를 개설해 병상 수를 기존 보다 1000개 늘렸고, 아산병원 역시 1000병상, 세브란스병원도 지난해 1000여 병상을 늘리는 등 이른바 '빅4 종합병원'들도 몸집 불리기를 하고 있다.

환자들이 큰 병원을 선호하는데다 병상 수를 늘려 더 많은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 대형화한 병원만이 살아남기 때문이다. 병원시장은 이미 양극화돼 있다. 소수의 대형 대학병원들만 살아남는 구조에서 대다수의 병원들은 네트워크병원을 만들어 몸집을 불리거나 차별화된 고급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특수클리닉으로 전환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법적으로 모든 병원은 비영리죠. 그런데 영리병원은 자본이 지분을 가지고 참여 할 수 있는 주식회사 병원이 되는 겁니다. 병원은 코스닥에 상장도 할 수 있게 됩니다. 병원도 일반 기업과 똑같이 영리활동을 하는 것이 합법화 되는 거죠. 이렇게 되면, 이윤배분을 해야하기 때문에 가뜩이나 돈벌이에 목숨을 걸고 있는 병원들은 이익을 위해 더욱 물불을 안 가릴 거예요. 과잉진료와 부당청구가 더욱 기승을 부리겠죠. 그렇게 되면 정부는 당연지정제를 폐지하거나, 과도한 의료비 부담으로 몰락하게 될 겁니다. 단기수익에 급급한 주주들은 의료서비스의 질 저하를 초래하고, 환자들의 의료비 부담은 지금보다 약 3.5배 가량 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영리병원에서 제공하는 의료의 질은 지금보다 더 떨어진다는 게 우 실장을 비롯한 의료민영화 반대파의 생각이다. 미국의 '톱20' 병원을 살펴보면, 영리병원인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또, 영리병원의 환자 사망률이 비영리병원에 비해 오히려 2%나 높다. 영리요양원의 진료 잘못도 비영리요양원 보다 56% 높다. 우리나라도 의료인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몸집만 불린 대형병원은 수익을 고려해 환자들에게 무리한 수술이나 조기 퇴원을 강요하고, 서비스는 더 엉망이 되는 등 고도로 상업화한 병원에서 여러가지 문제점이 속출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의사들은 압도적으로 영리병원 허용을 찬성하는 추세다.

2004년 대한병원협회 조사에서 회원 중 무려 74%가 영리병원 허용 시 영리병원에서 일하고 싶다고 답할 정도였다. 영리병원이 현 의료체계의 비효율성을 개선시키고, 경영난에 허덕이는 병원에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우 실장은 "이 같은 믿음은 잘못된 정보 탓"이라며 "영리병원은 의사의 명예를 지금보다 더 실추시킬 뿐 아니라, 자본을 투자한 주주들이 이익을 가져가면 의사들에게 돌아오는 몫은 더 줄어들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간단히 말해 의료민영화가 효율적이라는 환상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국민의 건강이 자본의 손으로 넘어가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찾아올 겁니다. 올바른 의료행위를 위해서는 의사가 돈 생각 안 하고 진료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해요."

우 실장은 가정의학 전문의를 취득한 후 보건의료정책을 전공했다. 서울에서 병원을 운영하며, 보건의료단체 정책실장 직도 맡고 있다. 노무현 정권 때부터 의료보장 강화 운동 및 의료산업화 반대운동을 펼쳤고, 2003년부터 보험회사의 개인정보 유출 시도 반대 운동도 추진해오고 있다. 또한 암에 대해서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지금처럼 보수 양당이 끌어가는 체계에서는 더 이상 국민의 건강권리 수호가 쉽지 않아 보인다"며 한탄했다.


전세화 기자 cand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