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의 탐욕·오만에 기초한 금융공학이 원인… 인문학으로 균형 잡아야

“금융위기는 왜 인문학을 통해 인간을 바라보는 지혜를 다지고, 되새기고 튼튼하게 해야 하는지 되돌아보게 해주는 계기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전세계가 떠들썩한 가운데 민변 창립멤버 출신 인권, 환경 운동가 손광운(47) 변호사가 ‘금융 위기’의 본질적 원인은 월가의 탐욕과 오만에서 비롯한 ‘금융공학’이며, 이를 해결하려면 ‘인문학’의 위기를 해소하는 수밖에 없다는 색다른 분석을 내놨다.

30일 오전 서울 대치동의 한 미술관에서 만난 그의 차림새는 변호사 이미지에 걸맞은 넥타이, 금테 안경과는 거리가 멀다. 흰머리와 새치를 그대로 놔둔 채 약간 수염을 기른데다 요즘 유행하는 뿔테 안경을 쓴 편안한 캐주얼 차림이다. 전세계적인 금융위기를 부른 미국 주도의 세계경제시스템 위기의 해법도 외모만큼이나 남다르다.

손 변호사는 금융위기의 해결책은 ‘인문학’에 있다고 설명한다. “물질적 발전은 공학이나 기술이 인도하지만 인간의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애정, 평화, 사랑, 봉사가 있어야”하기 때문에 이를 연구하고 해법을 제시하는 인문학으로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인문학이 연구하는 인간, 행복에 대한 지혜는 일종의 펀더멘털(기초)”이며 “이게 돼야 사회가 균형을 맞춘다”고 말한다.

‘아트 오브 리빙(Art of Living)’. 인문학의 중요성을 설명하기 위해 그가 쓰는 키워드다. 금융위기의 원인을 탐욕과 오만에서 비롯한 월 가의 금융공학으로 보는 그는 “탐욕이란 결국 균형을 잃어버린 데서 나온 것이며, 오만 역시 겸손을 잃어버린 것”이라며 “균형과 겸손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학문인 인문학을 되살리는 데 길이 있다”고 말한다. 인문학을 통해 배우는 ‘생활의 지혜’로 균형을 되살릴 때라는 것이다.

이런 역할을 하기 위해‘인문학’ 역시 ‘현장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손 변호사는 “우리 교육에서 인문학은 실제 생활과 떨어져 있는 게 사실”이라며 “인생의 99%는 현장에서 이뤄지는 데 이론에만 치우치는 철학으로 인문학을 대중에게서 멀어지게 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그는 이어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왜 내 인생과 연관이 있는지를 가르치고 있는가”라고 반문한다.

그래도‘희망’은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손 변호사는“인간에게 위기와 바닥의 경험은 상시적인 것”이라며 이를 인간의 균형을 생각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위기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어 “동서고금에서 인문학은 사회의 균형을 맞추는 데 필수불가결한 학문이었다”며 “10년간 불황에 빠졌던 일본이나 영국, 아일랜드, 핀란드는 인문학이나 문화의 내공으로 균형감각을 살려 위기를 극복했다”고 설명한다.

손 변호사의 해법에는 이유가 있다. 손 변호사는“리스크를 분산시켜 제로화하면 위험이 없고 이득만 갖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던 미국식 경제시스템이 결국 전세계적 경제위기의 원인이 됐다”고 말한다. 주택을 담보로 실물자산이 아닌 경제적 수익을 만들어 낸 모기지 론, 금융공학이 만들어 낸 각종 파생상품의 연쇄효과로 세계 경제가 위기를 맞은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탐욕’. 그가 보는 경제위기의 첫번째 원인이다. 그는 ‘금융공학’으로 대변되는 세계화한 금융시스템을 만들어 낸 탐욕이 오늘의 경제 위기의 주범이라고 본다. 손 변호사는 세계화한 금융 시스템이 “시간과 틈새를 이용한 금융공학으로 리스크를 제로화 했다고 주장해왔지만 출발점은 본분을 벗어난 것”이라며 “물건 만들어 팔아 번 돈으로 이자 받는 것 아닌 거품의 가치를 만드는 금융시스템을 만들어낸 인간의 탐욕이 오늘의 위기를 불렀다”고 꼬집는다 .

‘오만’. 탐욕으로 위기를 맞고도 반성할 줄 모르는 오만함이 위기를 가속화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우리의 경제시스템과 금융상품은 넘버 원이며 이 방법이 최첨단이라고 강조하던 미국 경제시스템이 위기국면에 대처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 이번 경제위기”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최악의 상황에 처한 AIG나 리먼 브러더스 등의 금융사는 몇 달 전까지도 구조조정이나 특별한 자구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손 변호사는 이 원인을 잘못된 확신과 우월감에서 비롯한 오만으로 보는 것이다.

‘탐욕’과 ‘오만’의 신호는 사실 이전부터 꾸준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손 변호사는 “리먼과 AIG의 시이오(CEO. 최고 경영자)는 회사가 망하고 구조조정을 당하더라도 상상을 초월하는 보상을 받는다”며 “이런 시스템은 적대적 엠엔에이(M&A)가 있을 때 유능한 시이오를 붙잡아두는 등 순효과도 있지만, 회사가 어려움에 빠져도 책임질 사람 없는 미국식 경영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기초가 허술한 미국 기업시스템을 비판한다.

미국 시민들은 실제로 이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손 변호사는 29일 미국 하원에서 7천억원대의 구제금융안 표결이 부결된 것을 예로 들며 “월가의 탐욕과 오만에 대한 시민들의 일반의지에서 비롯한 경고”라며 “지난주 <타임>지에서 미국 금융위기의 원인을 그리드(greed. 탐욕)라고 진단한 것 역시 그런 차원”이라고 말한다.

그는 미국의 금융공학을 그대로 따라온 경제시스템이 국내외에서 문제를 양산하고 있다고 경고하며 우리나라의 키코(KIKO) 문제와 서브 프라임 모기지를 예로 든다. 손 변호사는 “키코는 이자를 줄 테니 실물이 없는 상품에 가입하라고 한 뒤, 외상으로 주식에 투자해 수익을 내는 방식”이며 “서브 프라임 모기지 문제 역시 변재 능력 없는 사람들이 빚으로 집을 사서 이득을 보려는 투기심리에서 비롯한 것 아니냐”고 되묻는다.

그래서 행복해졌나. 탐욕과 오만에 기초한 금융공학으로 오늘날 세계가 행복해졌는가에 그는 의구심을 나타낸다. 손 변호사는 “탐욕에서 비롯한 금융상품을 만들어내고, 이를 더 상품화 한 금융공학은 오늘날 개개인에게도 상시적 위기를 만들어냈다”며 “남과 상관없이 나의 수익만 창출하면 된다는 월가의 탐욕과 오만이 오늘 상시적 구조조정으로 인한 불안, 초조, 좌절을 복합적으로 불러낸 원인”이라고 말한다.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과 AIG의 구제금융 신청에서 촉발한 미국발 금융위기를 둘러싸고 미국식 경제모델에 대한 논란이 한창인 가운데 “인문학이 해법”이라는 그의 분석이 어떤 메시지로 다가올지 주목된다.

◇ 손광운 약력

변호사.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법률구조센터 대표.

전 환경소송센터 대표. 전 경기북부 환경운동연합 의장.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