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온 한국 유학생들 귀뚫리고 말문 트는 데 대체로 7년 걸려… 단기연수는 '이력서' 용
비교적 대우가 좋았던 미군부대 다니시던 아버지의 제법 묵직한 월급봉투도 자라나는 우리 오남매 치다꺼리하기엔 역부족이어서 사교육 비슷한 것이라도 받아본 사람은 우리 중 무슨 예술 관련 학원을 몇 달 다닌 막냇동생 ‘희’ 가 유일하다. 그때 그 시절엔 과외공부 못 받는 가난한 집 아이들 중에도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꽤 있었다.
물론 나도 그 중의 하나였고. 초등학교 삼학년 때 친구 따라 몇 번 가본 피아노 학원. 하얗고 까만 건반 위를 달리는 친구아이의 손가락이 얼마나 눈물 나게 부러웠던지... 비록 어렸어도 누울 자리 못 누울 자리 분간은 있었던지 학원 보내달라는 말은 차마 못했고, 그 때 피아노 못 배운 것이 한이 맺혀, 나이 사십이 넘어서 피아노 레슨을 일 년인가 받은 적이 있다.
저번 주 영어연수 경력이 없어서 서류심사도 통과 못했다는 한국의 교사 지망생 문제로 현이랑 전화통화 하며 “못하는 것은 못한다고 딱 잘라 미리 말하라”고 다짐을 주고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얼마나 연수가 오고 싶었으면 그리 매달렸을까? 개구리 올챙잇적 생각 못한다는 말이 있더니 내가 그 짝이 났다.
유학 십년차 선배로서 뭔가 도움을 줄 수도 있었을 텐데, 미처 자라지도 않은 새싹을 돌덩이로 눌러버린 것은 아닌지 마음이 쓰여, 단기 영어연수가 그 교사 지망생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곰곰 생각해보았다. 무엇보다, 육 개월 현지연수로 중 고등학교 아이들에게 사회과목을 가르칠 정도의 영어능력 획득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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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말의 자유에 관한 글을 쓰면서 유학 와서 토론 듣는 귀 뚫리는데 이년, 대학원 수업 시간에 말문 트이는데 오년, 이곳 대학생 수준 학생 근근이 가르칠 정도 영어 하는데 칠팔년 걸렸다고 쓴 적이 있다. 미루어 짐작하면 중 고등학교 아이들을 큰 겁 안내고 가르칠 정도 영어 하는데 한 칠팔 년 정도 걸린다고 할 수 있겠다.
내 경우는 언어에 관한 아이큐 (IQ)가 좀 모자라는 극단적인 경우가 아닌가 싶어, 유학생인 남편을 따라 미국에 와서 ‘4년간’ 남편 내조해가며 틈틈이 갈고 닦은 영어 실력으로 자기공부(석사)를 이제 막 시작한 똘똘해 보이는 한국학생에게 물어봤더니, 자기는 일상회화를 상당히 하는 편인데도 페이퍼 쓰기는 개인지도까지 받아가면서도 점수랑은 상관없이 낸다는데 의의를 두고 있고, 수업시간에는 입도 뻥끗 못 떼고 있다며 하소연이다.
물론 개인마다 준비(기초영어실력)와 목표(일상회화 습득 또는 영어로 교과 가르치기), 그리고 얼마만큼 집중해서 공부를 하냐에 따라 성취도는 천차만별이겠지만,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육 개월 현지연수는 단지 ‘이력서용’으로 끝날 확률이 많다는 것이다.
유학 사 년차인 옆집 사는 ‘정’이와 열띤 토론 후 단기 영어연수는 미국 문화를 배우는데, 그리고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 동기부여를 해주는데 효과가 있지만, 육 개월 또는 일 년 만에 중학생 사회를 가르칠 정도의 영어능력 획득은 “어림 반푼 어치도 없는 일” 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정이의 “아, 돈 있으면 와서 하라고 해요” 란 말로 우리의 짧은 토론을 마무리 하게 됐는데, 언뜻 무심한 듯 들릴 수도 있는 이 말 다시 생각해보니 아주 그른 말은 아니다. 이력서용 경력하나 늘릴 겸, 그리고 인생 경험도 쌓을 겸, ‘돈 있어’ 연수 와서 손해 볼일은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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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돈 없이’ 연수 오면 어떻게 되냐고 물으신다면? 사실 이런 분 직접 만난 적이 있다.
예전에 식당 아르바이트 할 때 몇 달간 같이 일하던 성실한 ‘대한의 건아‘ 였는데, 부모 도움 없이 혼자 체재경비를 해결해야 하는 애로가 있어, 적만 걸어 논 영어 학원은 거의 못 나가고, (대신 정부에서 감사 뜨는 날이라고 학원에서 전화 오면 그 땐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가야 함), 식당 관련 영어, 즉 손님 맞기, 메뉴 안내하고 주문 받기, 돈 받기 등등에 필요한 영어는 확실히 배우고 간 걸로 알고 있다.
얼마 되지 않는, 일 안하는 나머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여 영어공부를 했는지는 물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아무튼 여비 충분히 가지고 와서, 체류용이 아닌, 제대로 가르치는 공신력 있는 연수기관에서, 예를 들면 출석일수 모자라면 칼같이 자르는 학교, 한 일 년 착실히 공부한 연수생과는 그 성취도에서 많이 차이가 나지 않을 까 싶다.
물론 이력서에는 둘 다 “현지 연수경력 일 년” 똑같겠지만. 요사이는 미국 정부의 노동허가증 없이 하는 불법취업에 대한 감시가 심해져서 이런 ’무전 연수‘ 더 이상은 힘들 듯 하니 따라 하지 마세요.
나종미 자유기고가 najongmi@netzer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