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적으로 왕성한 생산성 보여 젊은이들 못지않은 활기 뽐내

후반전으로 가면서 진흙탕 싸움의 조짐까지 보이고 있는 오바마와 힐러리 간의 지루한 싸움에 차라리 반대당인 공화당 후보 존 맥케인(John McCain)에게 투표하겠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공화당 후보들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던 나로서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맥케인에 대한 나의 무관심과 무지는 그간 오바마와 힐러리를 편애해 온 미국 매스컴의 영향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공화당 재집권 사나리오를 생각하고 싶지 않은 내 개인적인 편견일 수도 있다.

민주당 두 후보에 비해 상대적으로 ‘찬밥’ 취급을 당해 왔던 맥케인 후보지만, 그래도 몇 가지 관심이 가는 구석은 있다. 그 중 하나는 너무나 평범한 그의 곁에 있는, 늘씬하고 화려한 전직 모델 출신 부인 “신디 맥케인” (Cindy McCain)의 존재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72세나 되는 그의 나이이다.

■ 맥케인의 나이에 대한 논쟁들

맥케인의 나이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공화당 경선이 막 시작 됐을 때쯤의 일로 기억된다. 미국의 액션배우 척 노리스(Chuck Norris)가 고령의 맥케인이 미 대통령이 될 경우 막중한 사명수행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감당하며 4년 또는 8년(재임할 경우)의 임기나 제대로 채울 수 있겠냐며 젊고 비전있는 다른 사람을 공화당 후보로 뽑아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에 맞서 실버스타 스탤론(Sylvester Stallone)은 어려운 작금의 현실을 다룰만한 인재로는 강인한 성품의 맥케인만한 이가 없다며 역성을 들고 나왔다.

실버스타 스탤론이 이해가 되는 것이 그도 60세를 훌쩍 넘긴 나이에 한창 나이의 팔팔한 젊은 배우들도 하기 힘든 액션 영화 “람보” 속편의 제작 겸 연기를 막 마친 후였기 때문이다. 물론 맥케인과 나이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67세의 척 노리스가 굳이 맥케인의 나이를 문제 삼고 나선 속사정은 알 길이 없다.

■ 노인들의 눈부신 활약상

적어도 내 주변에는 맥케인의 나이를 크게 문제 삼는 이들은 없다. 물론 맥케인의 러닝메이트, 즉 부통령 후보는 젊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사람들은 꽤 있다. 맥케인의 나이 자체를 크게 문제 삼지 않는 이들의 태도는 ‘폴리티컬 코렉트니스(Political Correctness)’라는 개념 때문이라 볼 수도 있지만, 그보다 미국 사회에서는 노인들이 비교적 높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사실 미국 사회 전반에 걸친 노인들의 눈부신 활약상은 일부러 외면하려 하지 않는 한 부인하기 힘들다. 죽을병에 걸리지 않고는 백발이 하얗게 내릴 때까지 은퇴하지 않고 ‘현역’으로 뛰는 미국의 뉴스나 쇼 프로를 진행하는 아나운서들이 눈에 띄는 예 중의 하나다. 어느 정도 나이 들면 여자의 경우는 결혼, 남자의 경우는 관리직 승진 때문에 사실상 ‘현역 은퇴’의 길을 가는 대부분 한국의 아나운서들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미국에서는 연예인들 또한 비교적 수명이 긴 편인데, 금년 오스카 최우수 조연상을 수상한 배우가 놀랍게도 할 홀브룩(Hal Holbrook) 이라는 83세의 노인인 점을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배우로서의 삶을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라는 그의 수상 소감이 실체 없는 장밋빛 소망만이 아닌 것은 “이전 70 세는 지금의 40세이고, 이전 60세는 지금의 30살”이라는 말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며 원기 왕성하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노인” 타이틀을 부치기가 무색한 ‘젊은 노인’인 셈이다.

물론 생산성 넘치는 풍성한 노년이 미 공화당 대통령 후보, 할리우드 스타, 또는 TV 아나운서 등과 같은 특수층 인사들만의 전용물만은 아니다.

금년 봄, 우리 동네 번화가 빌리지 거리에서 열렸던 비교적 큰 규모의 예술 축제에 간 적이 있는데, 자신의 작품들을 들고 나온 행사 참여자 중 상당수가 언뜻 보기에도 60은 족히 넘었을 만한 노인들이었다. 특히, 어떤 할아버지가 들고 나온 목각 작품들은 예술성에 비해 가격이 조금 높아보였지만 그 나이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생산성’ 을 보여 줬다는 사실만으로도 참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 가장 인기 있었던 행사는 전원 노인들로 구성된 연주 팀의 길거리 공연이었는데, 아마추어인지 프로인지 정확히 알 수 없을 정도의 수준 있는 공연에 구경하던 많은 사람들이 큰 박수를 보냈다.

■ 문화를 주름잡는 미국의 노인들

이처럼 생산성이 뛰어난 노인들이 ‘소비’에 있어서도 무시 못 할 큰 손이라는 현실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일요일 점심시간, 우리 동네 잘나가는 레스토랑은 거의 예외 없이 삼삼오오 무리지어 몰려 온 노인 손님들로 넘쳐난다. 바로 5분 거리에는 발 빠른 상술로 “노인 특별 우대”를 내세우며 성업 중인 레스토랑도 있다.

또 무려 대여섯 개가 넘는 대학교 때문에 거의 매주 유료나 무료로 각종 공연 학술 발표회를 하는데 이곳의 주 고객도 노인들이다. 생계에 관련한 소비성 상품이 아닌, ‘문화 상품’의 주 소비자가 노인인 것이 대학교를 끼고 있는 우리 동네만의 특이한 현상인지, 미국의 전반적인 추세인지는 잘 모르겠다.

한번은 은퇴 교수, 목사, 그리고 선교사 등이 모여 사는 필그림 마을 노인들이 주체한 노인 복지 기금 마련을 위한 “필그림 축제”에 간 적이 있는데 대규모 야드 세일, 연극과 같은 각종 공연 행사 등을 거뜬히 자체 기획 운영해내는 노인들의 치밀한 조직력과 강인한 체력에 한 번 놀랐고, 환경 문제에 관한 코너를 따로 마련할 정도의 폭넓은 이들의 관심사에 한 번 더 놀란 적이 있다.

딱히 이상에 맞는 후보는 아니지만, 맥케인 후보가 차기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기쁘게 박수 쳐줄 일이 적어도 하나는 있으니 위로가 된다. “노인 파이팅!” 풍성한 노년은 세월에 녹슬지 않는 삶에 대한 치열한 주인의식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존경하는 대한의 노인들이여 힘내기를!

■ 나종미 약력

나종미 씨는 1998 년 미국으로 유학 와서 프린스톤 신학교 기독교 교육석사, 유니온 신학교 신학석사를 마치고 현재 클레어 몬트 신학교 기독교교육학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며 문화전문자유기고가로 활동중이다.


나종미 자유기고가 najongmi@netzer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