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와 양육을 통해 자아실현 하는 아내

미국에선 영화 판권이 워낙 비싸다 보니 한번 TV에 방영된 영화를 마치 우리 어릴 적 가난하던 시절 ‘사골’ 고아먹듯 재탕을 해먹기 마련인데, ‘모나리자의 미소(Mono Lisa Smile)’란 영화가 TV에서 첫 방영되는 날, 그 신선한 맛 때문에 책상 수북이 쌓아 놓은 전공서적이고 뭐고 다 모른척하고 TV 앞에 달라붙어 있었던 적이 있다.

이 영화는 1950 년대 한국의 이화여대 쯤 되는 미국의 어떤 보수적인 여자대학에 ‘예술의 역사(Art history)’를 가르치는 의식이 있는 여교수 캐서린(Katherin, 줄리아 로버츠 분)이 부임하며 일어나는 일들을 다룬 것인데, 소위 미국 판 ‘현모양처’랄 수 있는 미국의 전통적 여성상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현모양처’는 문자 그대로 ‘현명한 엄마, 좋은 아내’를 의미하고, 실제적으로는 남편과 자식의 안녕과 성공을 위해 헌신하는 희생적인 엄마와 아내 상을 뜻한다.

물론 유교적 세계관에 뿌리를 둔 말이라 정확한 영어 동의어는 없다. ‘모나리자의 미소’란 영화에서 두 종류의 미국 판 현모양처를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첫 번째가 맹목적인 헌신과 희생의 전통적인 아내 상을 따르려다 결국 남편에게 배신을 당하는 베티(Betty)라는 여학생이다.

베티는 자기 결혼식 때 하객들 앞에서 사랑의 시를 읽으면 어떻겠냐고 남편에게 먼저 제의했지만 자기 손으로 써서 호주머니에 찔러준 시를 남편이 읽고 난 후 “이 모든 것이 다 남편의 아이디어”라고 공을 돌린다.

물론 한국식으로 말해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고 굳게 믿는 친정엄마의 강압적인 코치를 따른 것이다. 이런 낯간지러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린 남편에게 신혼소박을 맞은 베티, 누구에게 어떤 말도 하지 말고 조용히 인고의 세월을 보내라는 친정엄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이혼이란 선택을 한다.

두 번째 미국의 전통적인 여성상은 극중 조앤(Joan)이라는 여학생으로, 여교수 캐서린은 우수한 재원인 조앤에게 예일 법대에 가라며 직접 원서까지 사다 주며

아기와 모래놀이 즐기는 엄마

격려하지만 조앤은 결국 기대를 저버리고 법대 진학 대신 조기결혼을 택한다. 조앤을 찾아가 결혼과 공부는 병행할 수도 있는 일이니 집 근처 다른 법대라도 가라고 설득하는 캐서린에게 조앤은 다음과 같이 항의한다. “법대에 가지 않기로 한 것은 나의 결정이다. 나는 가정과 가족을 원한다. 가족은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이다.

당신은 주부를 하찮게 여겨 깊이도, 지능도, 관심도 없는 부류라고 생각하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한 사람은 바로 당신이고, 내가 원하는 것은 결혼해서 주부가 되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는 조앤의 선택은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상을 비판 의식 없이 받아들였던 베티의 경우와는 사뭇 다르다.

■ 이혼하면 남성이 여성보다 불리

저번 주 글에서 매춘 여성과의 스캔들로 사임하게 된 뉴욕 전 주지사 엘리엇 스피처의 부인 실다 스피처가 이혼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 한 적이 있다. 스피처와의 사이에서 딸 셋을 두고 있다하지만, 실다의 결정을 이해하기 힘든 것이 가정을 지키기 위해 어느 한편이 일방적으로 희생하고 산다는 개념자체가 이제 이곳 미국에서는 낯선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굳이 외도 시비가 아니어도 서로 맘이 맞지 않으면 주저 없이 갈라서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되었고, 이혼 시 재산 분할권과 자녀 양육비 지원 등이 여성에게 유리하게 되어있어 정작 이혼이 무서운 것은 여자가 아닌 남자인 것이 이곳 실정이다.

주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적어도 이곳 캘리포니아의 경우 이혼 시 아내와 남편이 정확히 50:50 으로 재산분할을 한다(단 결혼 전 별도의 합의사항이 없는 경우). 자신의 재산이 얼마인지 제대로 모르고 살다가 이혼수속을 밟으면서 헤어지는 부인에게 주게 될 엄청난 금액의 위자료 때문에 이혼 자체를 재고하게 된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나눠 가질 변변한 재산이 없는 남자들도 엄격한 자녀 양육 보조비의 강제 집행 후엔(특히 이혼을 두세 번 한 경우는), 월급봉투에 남아나는 돈이 별로 없다고 들었다.

참고로 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같이 무질서한 사생활로 남편에게 자녀 양육권을 빼앗기고, 남편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관계로 여자가 자녀 양육비까지 줘야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대체로 이곳에선 엄마에게 양육권이 우선적으로 주어진다.

따라서 자녀 양육권이나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당하며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살아야 하는 여자들은 미국에서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겠다.

양육에 정성을 쏟는‘신 현모양처’들
양육에 정성을 쏟는'신 현모양처'들

■ 미국 '신여성운동'의 추세

‘모나리자의 미소’라는 영화에서 그려진 50 년대 미국 판 ‘현모양처’의 조건 중 하나는 가정에 머무르는 엄마(stay-at-home-mother)가 되는 것인데, 지금은 이것도 원한다고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이 되었다.

아이 위탁에 드는 엄청난 돈 때문이다. 어떤 여교수가 자기 아이 둘을 봐줄 사람을 찾는다며 시간 당 20달러를 주겠다는 광고를 냈다. 이 가격으로 일주일 40 시간이라고 계산한다면 어림잡아 한 달에 3200달러가 들어가는 셈인데, 이처럼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위탁비 때문에 아예 밖에서 일하는 자체를 포기하고 집에 들어앉는 여자들도 많다.

게다가 가정에 머무르는 엄마에 관한 인식 자체도 많이 바뀌었다. 1970-80년대만 해도 가정 밖에서 직업을 가진 여성만이 ‘신여성’이라 외쳤던 여성운동의 영향과 맞벌이를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경제구조의 변화 때문에 여성들이 자의반 타의반 직업을 찾아서 가정 밖으로 몰렸던 적이 있다.

정부의 아동 위탁시설 제공의 실패로, 직업여성들이 아이 돌보기의 이중고를 감수하며 ‘슈퍼 맘 신드롬’에 시달리던 것이 1990 년대의 일이고, 집에서 아이 키우고 살림하는 것도 전문직으로 인정하자는 것이 현재 미국의 ‘신 여성운동’의 추세이다. 전업주부라는 말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기술 문명의 발달로 전업주부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도 넓어졌다. 예를 들면, 내가 아는 언니는 부엌 옆 거실에 컴퓨터 스크린 세 개를 설치하고 살림하는 틈틈이 주식투자에 전념하고 있는데 그녀의 연 수입은 결코 적지 않은 남편의 수입을 훨씬 웃도는데, 이 정도면 ‘전업주부’라는 타이들을 부치기가 무색하지 싶다.

■ 가정 안의 전문직, 현모양처

이런 저런 이유들로, 멸종 되었거나 아니면 적어도 희귀종이 된 것으로 여겨지던 미국 판 현모양처가 근래 들어 심심찮게 눈에 띄고 있다. 물론 ‘작은 댁’에 가신 서방님을 기다리는 ‘큰 마님’ 식의 신파극 속에 나오는 그런 현모양처가 아니라, 가정 밖의 전문직을 포기하고 대신 가사와 양육이라는 가정 안의 전문직을 택한 현모양처 말이다.

이 ‘신 현모양처’가 60년 전 미국의 전통적인 여성상과 다른 것은, ‘직업보다 가정이 먼저’라는 이들의 선택이 사회적 압력에 맹목적으로 순응하여 개인의 행복을 자진해서 포기한 것이 아니라, 가사와 양육을 통한 자아실현 또는 자기만족의 극대화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점에서 먼저 언급한 영화 속 감동적인 대사의 주인공 조앤은 참으로 시대를 앞서가는 여성이다. 그런데 실다 스피처는 도대체 어떤 부류의 여성일까?

■ 나종미 약력

나종미 씨는 1998 년 미국으로 유학 와서 프린스톤 신학교 기독교 교육석사, 유니온 신학교 신학석사를 마치고 현재 클레어 몬트 신학교 기독교교육학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며 문화전문자유기고가로 활동중이다.


나종미 자유기고가 najongmi@netzer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