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 판단 분명한 여성 운동가, 소신 있는 의사표현 거침없어…

지난주 미국에서 여성 운동가가 되고 싶어도 나로서는 ‘체력이 안돼서’ 못하겠다고 적어놓고 이런 저런 뒷생각들 때문에 머리가 복잡했다. ‘체력,’ 즉 ‘생물학적’ 차이를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면 정작 직업 선택과 관련한 성차이 또는 성차별의 더 근본적인 이유 랄 수도 있는 ‘성역할의 사회화’ 란 면을 가볍게 취급한다는 인상을 줄 수 도 있기 때문이다.

학교 동료 여목사 ‘수잔’이 라스베이거스 근처 어떤 동네에서 목사로 일할 때 있었던 일이라 한다. 당시 그 교회의 담임목사 그리고 부목사 수잔까지 모두 여자였고, 우연찮게도 이전에 있었던 담임목사도 여자였다 한다.

그러다 교회를 사임하게 된 수잔의 후임으로 남자 목사가 오게 되었는데, 그동안 세 명의 여자 목사만 보아왔던 여섯 살 먹은 여자 아이가 수잔에게 와서 “아니 세상에 어떻게 남자가 목사를 할 수 있어요!” 라고 무척 흥분하여 따졌다고 한다.

이 맹랑한 꼬마 아가씨의 말이 암시 하듯이, 남녀는 타고 날 때부터 생겨 먹은 것이 다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 없는 일의 차이가 있다기보다 사실은 성 역할에 관한 사회적 학습의 결과일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아직도 성차별은 존재한다

미국 TV 수사 드라마를 보면 남성성 보다 ‘여성성’ 이 더 강해 보이는 여자들이 ‘강력계 형사’ 역으로 나오는 것을 심심찮니 보곤 한다. TV 드라마가 얼마나 사회 현실을 정직하게 반영하는지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요즘은 이전까지의 금녀의 직업들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도 건설 현장에서는 남자들만의 세계가 지켜지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의 아줌마들이 보수 면에서 월등한 건설 현장을 외면해온 것은 남자들만의 세계에 여자의 침입을 허용치 않으려는 남자 일꾼들의 텃세 때문이라 생각한다. ‘금녀’의 직업에 도전했다가 남자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성차별에 시달린 ‘실존’ 미국 여성의 경험을 소재로 만든 영화를 봐도 알 수 있다.

학문의 세계에서도 남자 교수들의 ‘밥그릇 지키기’를 위한 단결력 행사가 암암리에 존재한다고 알고 있다. ‘UC Irvine 대학’의 여자 교수 80명을 인터뷰한 결과에 의하면 많은 여자 교수들이 교수 본연의 임무인 연구직 보다는 서비스직에 관련된 일을 하도록 압력을 받고 있다고 털어 놓았고, 그중 22명은 남자 교수보다 적은 월급, 적은 공간, 적은 지원을 받고 있다고 한다.

눈에 잘 드러나지 않으나 분명 존재하는 성차별 때문에 어떤 여교수는 자기는 ‘핑크색’ 옷을 절대 입지 않고 또 직장에서 ‘자식’들의 얘기도 결코 입 밖에 내지 않는다고 말했고, 심지어 인터뷰에 응한 다른 어떤 여자 교수는 “나는 금요일에 얘기를 낳고 바로 다음 월요일 날 학교 가서 가르쳐서, 내가 아이 낳았다는 것을 절대 아무도 모르게 하겠다!”고 단단히 벼르는 것이었다.

그동안 미국의 주요 TV 방송사 여자 아나운서들이 만삭의 몸으로 아침 뉴스쇼를 하러 나오고 또 애 낳고 일주일도 안 돼 얼른 다시 화면에 나타나기에 ‘배불뚝이 아줌마’ 아나운서에게도 공중파를 허용하는 ‘여권 선진국 미국’이라 좋게만 보아왔는데, 이 여자 교수 얘기를 읽고 다시 생각해보니 임신 출산을 겪어야하는 ‘여성’으로서의 어쩔 수 없는 제약을 나름대로 최소화 하고 남자들만의 세계에서 힘들게 쌓아온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 살아남으려는 ‘생존의 몸부림’으로 보여 같은 여자로서 잠시 가슴이 뭉클했다.

전투적인 여성학 전공의 그녀들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내가 미국에서 여성 운동에 좌절하는 두 번째 이유는 ‘맘이 여려서’이다. 2년 전쯤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전공하는 미국 여학생들 네다섯 명과 같이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한국에서 내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금서의 하나였던 ‘억눌린 자의 교육’이란 책의 저자인 라틴 아메리카 출신 교육 철학자 ‘파울로 프레이리’의 주 저서들을 공부하는 세미나였는데, 당시 그 과목을 가르치던 여교수는 토론 주제 몇 개를 칠판에 써놓고 거의 30 분 씩 넘게 자리를 비우곤 했었다. 평상시 워낙 그 여교수를 좋아한 까닭도 있지만 마음이 여린 탓인지 속은 상하지만 나름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으려니 하며 서운함을 속으로만 삭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기어코 일이 벌어졌다.

여성학 전공의 그 여학생들이 “수업 중 자리 비우는 것도 프레이리의 교육 방법론 중의 하나이냐?” 며 단체로 들고 일어났다. 여린 맘의 소유자인지라 공격당하는 교수님보다 보는 내가 더 민망해 하다가 그날 수업을 마친 적이 있다. 물론 그날 이후로 그 여교수의 ‘수업중 외출’은 일절 없어졌다.

나중에 이 여학생들과 같은 학과에 적을 두고 있는 어떤 한인 학생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 여성학 전공하는 미국 여성들 가운데는 ‘분리주의적‘, ‘전투적’ 의식이 아주 투철하다 못해 심지어 남성과의 결혼 자체를 거부하고 아예 같은 여성끼리 사는 소위 ‘레즈비언’의 삶을 사는 학생들도 적잖이 있다고 한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날 경험을 통해 한 가지 확실히 배운 것은 여성 운동을 전문적으로 ‘업 삼아’ 한다 할 수 있는 ‘여성학’ 전공의 미국 여성들은 나랑은 비교도 할 수 없게 ‘드세다’는 사실이다. 프레이리 수업을 같이 들었던 그 억센 여학생 중 하나가, 내성적인 그 여자 교수의 조금 수줍어하는 듯한 미소를 ‘부족한 자존감’의 표시라며, 공공연히 비난할 때는 화가 나기도 했지만 큰 소리 나는 것이 싫어서 그냥 꾹 참고 넘어간 적이 있다.

억센 그래서 할 말 당당히 할 줄 아는 그녀들이 한편 부럽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론 ‘싸움닭’ 같은 그녀들의 거침없는 공격성에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아무튼 좌절과 회의 속에서 한마디 하자면 “나는 이들처럼은 죽어도 안 돼!”이다. 지면이 다해 부득이 계획에 없던 3편으로 넘어가야겠다.

■ 나종미 약력

나종미 씨는 1998 년 미국으로 유학 와서 프린스톤 신학교 기독교 교육석사, 유니온 신학교 신학석사를 마치고 현재 클레어 몬트 신학교 기독교교육학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며 문화전문 자유기고가로 활동중이다.


나종미 자유기고가 najongmi@netzer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