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의 한의학 산책] 기 순환을 방해하는 습병

태양이 뜨겁고 비도 많이 내리는 여름은 천지의 기운이 서로 어우러져 만물이 번성하는 기운이 충만한 시기이다. 그런데 여름이 견디기 힘든 것은 단순히 덥기 때문이 아니라 높은 습도 때문이다. 여름철에 불쾌지수를 말할 때 이것은 습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평소에도 “내 몸이 일기예보”라고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장마철이나 습한 날씨가 되면 “온몸이 쑤시고 아픈 걸 보니 비가 올 것 같다”는 등의 말을 한다. 이런 관절 질환 환자들이 아니더라도 습한 기운은 인체의 기 순환을 방해해 환자들은 온몸이 물에 젖은 솜같이 무겁고, 밥맛도 없고, 답답하고, 대소변이 시원하지 않으며, 머리가 무겁고 시원하지 못한 것이 마치 어떤 물건을 푹 씌워 놓은 것 같다고 호소한다.

한의학에서는 이러한 것을 ‘습(濕)’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한다. 인체를 자연의 일부로 보는데 여름철은 더운 화열(火熱)의 기운뿐만 아니라 습(濕)의 성질이 강하기 때문에 습과 열이 어우러져 여러 증상들이 나타날 수 있고, 원래 이러한 경향을 가진 사람들은 증상이 더 악화될 수 있다.

습(濕)이란 곧 물인데, 중국에서도 높고 추운 서북방 지역보다 동남지방은 지대가 낮고 바람과 비가 자주 와서 사람들이 흔히 중습(中濕)에 걸리게 된다고 한다. 습사가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것은 습한 곳에 있었거나, 비를 맞으면서 습한 곳을 다니거나 땀에 옷이 흠뻑 젖은 데서 생긴다.

그러나 나쁜 기운은 외부에서 인체 내로 들어오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체 내에서 습을 조절하는 기관은 ‘비장’인데 여기에 고장이 나서 운행이 안되면 체내에서 습이 생겨날 수도 있다. 여름철에 날 것과 찬 음식이나 기름진 음식을 과식해서 비위를 손상해서 습이 발생한다. 이때는 속에서 열이 생겨서 입맛이 없어지고, 물만 찾게 되고, 배가 불러 오르며, 심하면 구토 설사까지 하게 된다.

습(濕)이라는 것은 아래서부터 나타나기 때문에 허리 이하 무릎 등으로 무거워지고 각기병(脚氣病)이 생긴다. 또 여름철은 신장의 기운이 소모되기 쉬우므로 허리 아래가 힘이 없어 쓰지 못하고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습으로 인한 병의 치료는 습한 것을 건조하게 만들면 된다. 비가 오는 날 집안이 습하여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보일러나 에어컨을 약하게 틀어 놓으면 가볍고 개운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밖에서 들어 왔을 때는 땀을 내서 흩어버려야 하고, 안에서 생긴 것은 소변을 잘 보게 하면 된다. 그런데 땀을 과하게 내서는 안 된다. 약간의 땀이 촉촉하게 날 정도만 하면 된다.

한약재 중에 습한 것을 마르게 하는데 대표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창출(蒼朮)이다. 창출은 위장관의 효소분비를 촉진시켜 장을 다스리고 복벽의 긴장을 풀어주어 경련과 통증을 가라앉힌다. 식욕부진, 구토, 설사 등과 발한작용이 있어 계절성 감기에도 효과가 있다.

창출은 삽주의 뿌리인데 삽주의 어린순을 끓는 물에 데쳐서 물에 우려내어 양념을 해서 무치거나,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쌉싸름한 맛이 입맛을 돋구고 여름철 건강에 좋다. 옛부터 새로 이사를 하거나 긴 장마 후에는 말린 창출에 불을 지펴 방 등에 연기를 두 세시간 쐬게 하는 풍습이 있었다. 방의 습기를 말리고, 곰팡이를 방지하며, 습한 방에서 오는 모든 병을 예방하는 민간 방역이었던 셈이다.

율무도 습기를 제거하고 몸을 가볍게 하는데 도움이 되므로 가루를 내서 죽을 끓여 먹거나 차로 달여 마시는 것이 좋다. 율무는 장마철에 가장 좋은 차라고 할 수 있는데, 시중에서 파는 율무차는 설탕이 많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습기를 제거하는 기능이 많이 약해지므로, 율무를 직접 차로 만드는 편이 더 효과적이다. 그 외에도 습기를 제거하는데 좋은 식품으로는 팥과 호박이 있다. 팥과 호박은 강력한 이뇨작용으로 몸의 습기를 제거하기 때문에 팥이나 호박을 끓여 차처럼 마시는 것도 습기를 제거하는 좋은 방법이 된다.

일기예보에서 불쾌지수를 제시하곤 하는데 재미있는 사실은 미국에서 불쾌지수를 발표함으로 불쾌감을 더욱 조장한다고 하여 온유지수(temperature humidity index:THI)라는 말로 바꿔서 사용하기도 한다고 하는데 이러한 불쾌감을 느끼는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 아닌가 한다.

강남경희한방병원 이경섭병원장


강남경희한방병원 이경섭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