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누가 이들에게 돌을 던지라 했는가

노트북을 닫으며/ 누가 이들에게 돌을 던지라 했는가

이영태기자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한 시장에서 열린 ‘인민 재판’. 10여명의 군중이 미화 600달러짜리 오토바이를 훔치다가 붙잡힌 28세의 청년을 주먹과 몽둥이로 20여분간 때려 고통스럽게 죽였다. 하지만 주변에 있던 경찰은 이 광경을 외면했다.”

1년 여전 AP통신은 캄보디아에서 극성을 부리던 ‘인민 재판(people’s court)’의 실상을 이렇게 타전했다. 사법체계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깊은 불신으로 대중이 직접 자신들의 손으로 범죄자를 응징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아직도 지구 상에 이런 미개한 나라가 있다니, 충격적이었다.

헌데 비단 먼 나라 얘기, 혹은 남의 일만은 아닌 듯 싶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지금 이 순간 우리나라에서도 여론몰이식 인민 재판이 종종 자행된다. 최근 공영방송인 KBS2 TV가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집 앞에서 진행한 ‘생방송 시민프로젝트 나와주세요’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출연진은 전씨에게 봉변을 주는 것이 아주 당연한 권리라고 여기는 듯했다.

8m 짜리 크레인을 동원해 집안 곳곳에 카메라를 들이 대고, 패널로 나온 한 개그맨이 “웃기는 건 개그맨이 할 일인데요”라며 조롱한 것은 여론 몰이의 극치였다. 2,000억원에 달하는 추징금을 내지 않고 버티면서 여전히 호화 생활을 하는 그가 법정에서 “가진 재산이라곤 29만1,000원이 전부”라고 뻔뻔하게 말한 대목에서 분노가 치밀지 않았던 이는 없으리라. 그렇다 해도 법치 국가에서 그에 대한 처벌은 순전히 사법부의 소관이라는 기본적인 사실조차도 몰랐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병역 기피를 목적으로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며 입국이 거부된 가수 유승준씨 문제나, 여교사에게 부당한 시중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전교조의 압력을 받다 목숨을 끊은 충남 보성초등 서승목 교장 자살 사건도 인민 재판이 횡행하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다.

실정법이 아닌 ‘국민정서법’를 적용해 국내 입국을 불허하고, 법 절차에 따르지 않고 집단의 힘을 빌어 단죄를 하는 행위는 동기의 순수성에도 불구하고 정당화할 수 없다. 이것이 범죄자에게 대중이 직접 돌을 던져 목숨을 빼앗는 행위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영태 기자


이영태 기자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