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 솔로'의 色다른 사랑과 우정

[시네마 타운] 싱글스

'투 솔로'의 色다른 사랑과 우정

한국 영화에는 남성들의 진한 우정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반면 여성들의 동지애(female bonding)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영화 뿐만 아니라 대중문화 전체에서 묘사되는 여성들의 우정이란 오랫동안 친구로 지낼지라도 질투가 난무하는 관계다.

나이와 직업, 계급을 불문하고 여성들이 장시간에 걸쳐 끈끈한 우정을 나누는 관계는 먼 나라 얘기 같을 뿐이다. 많은 남성들의 우정이 굵직굵직한 사연을 가지고 튼튼해지지만 여성들의 우정이란 인생에 ‘남성’이 등장하면서 하향 곡선을 긋는다. <싱글스>는 바로 그러한 여성 우정에 대한 편견에 아주 힘찬 조소를 날린다.


나난과 동미의 '따로 똑같이'

<싱글스>는 4명의 싱글들의 삶이 동일한 무게를 가지고 다양하게 등장하기보다는 나난(장진영)을 중심으로 그녀의 절친한 친구 동미(엄정화)와의 우정이 가장 큰 축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동미의 룸메이트며 오랜 친구인 정준(이범수), 그리고 나난의 남자친구 수헌(김주혁)의 이야기가 덧붙여진 형식이다.

나난은 영화에서 유일하게 보이스오버 나레이션을 할 수 있는 인물이며 수헌에 대한 해석도, 동미와 정준의 관계에 대해서도 정리를 해주는 가장 잘 다듬어진 캐릭터다. 나난은 이럴 때 영화에서는 비가 온다거나 혹은 카메라가 빙글빙글 돌아간다고 얘기하는데 그럴 때면 화면은 어김없이 그녀가 말한 대로 이루어진다. 나난은 그만큼 영화를 이끌어가는 핵심인물이다.

나난은 공주병이 있고 똑똑하게 행동하고 싶어하지만 늘 실수를 연발하고 대담하고 당당하게 나서고 싶지만 그런 모습을 상상만 하는 소심한, 그러나 동감할 수 있는 여성이다. 하지만 그녀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이 원했던 모습으로 조금씩 변해간다. 성희롱을 일삼는 상사에 대해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했던 그녀는 그를 꼼짝 못하게 만든다.

또한 자신에게 맞는 일이 어떤 일인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기 시작하고, 남자 친구의 유혹적인 결혼 제안에 대해 당당하게 고개를 젓는다.

반면 나난의 절친한 친구 동미는 섹스에 대해, 감정에 대해 직설적인 여성이다. 섹시하고 화려하며 그런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녀는 능력있는 커리어 우먼이며 자신의 노력을 착취하려는 상사를 조롱거리로 만들고 회사를 박차고 나오는 거침없는 성격과 말투를 갖고 있다. 동미는 남성 친구 정준과 함께 살고 있지만 남성이라는 것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동미는 섹스와 우정에 대해서는 아주 미국적이다. 룸메이트 신경 쓰지 않고 집에 섹스파트너를 데리고 온다거나, 섹스에 대해서는 자신있다며 정준에게 수작을 걸기도 한다. 친구 사이일 뿐인데 어떡하다 술김에 하룻밤 같이 자고 황당해 하다가도 곧 없었던 일로 치고 다시 친구로 돌아온다는 설정도 그렇다. 이렇게 솔직하고 대담한 동미는 ‘연애 따로, 결혼 따로’라는 식으로, 감정을 속이고 이익을 계산하는 정준의 나이 어린 여자친구를 증오한다.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여성으로

동미와 나난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은 정준과 수헌이 보기 드문 캐릭터라는 데에서도 기인한다. 정준은 진정한 낭만적 사랑을 꿈꾸는 순수한 인물로 동미와 나난을 편견 없이 진정한 친구로 여길 줄 아는 드문 남성이다.

수헌은 외모는 수려하지만 전혀 로맨틱한 캐릭터가 아니다. 고장난 차로 나난을 꼬시려 한다거나 썰렁한 유머를 잘하고 엉뚱한 구석이 있는 좀 이상한 남성이지만 나난의 결정을 기분 좋게 수용할 줄 안다. 동結?나난은 어떻게 보면 정준과 수헌이라는 안티 가부장적인 남성들이 옆에 있기 때문에 덜 어렵게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여성으로 다져진다.

동미는 <마들렌>의 희진처럼 임신한 걸 알자 혼자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동미는 부모님께 미안해 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정준에게 알리지 않고 스스로 선택해서 자신의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것을 결정한다. 그녀는 결혼을 하지 않는 선택을 한 것이고 아이와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자신감에 차있다.

동미의 그러한 결정을 옆에서 지켜보며 나난은 사랑과 결혼보다 우정과 일을 선택한다. 나난은 처음에는 아이가 아빠를 찾으면 어떡하냐고 동미를 다그치지만 곧 태어날 아이의 ‘아빠’가 돼주겠다고 자신있게 선언한다. 나난과 동미는 여느 신혼부부가 아이의 출산을 기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게 갖가지 출산용품을 앞에 두고 행복해 하고 서로를 배려한다.

나난과 동미가 만들어가는 미래에는 수헌도 정준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인다. 나난이 “동미와 정준이 티격태격하면서 늘 붙어있는 친구처럼 그 관계를 결혼을 통해 유지하면 좋겠다”고 말했을 때 <싱글즈>는 이미 결혼의 이상적인 관계는 친구라는 주장을 한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만약 정준도 수헌도 그런 친구같은 관계가 부부의 이상적인 관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난과 동미에게는 서로가 만들어가는 관계가 아이와 엄마 그리고 동반자라는 새로운 개념의 가족에게 가장 적절한 것으로 보여질 수 밖에 없다.

현재까지 한국의 현실로 볼 때 나난과 동미가 만들어가는 ‘새로운 가정’의 모습이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혼이라는 제도와 호주제에 대해 숨막히는 일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기분 좋은 상상이다.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지극히 정상적인 혼란>의 저자 울리히 벡과 엘리자베스 게른샤임 벡이 미래의 가족은 엄마와 아이로만 구성된 관계로 나아간다고 예측했던 것은 한국에서 예상보다 좀 더 빠르게 일어날 것 같다.

시네마 단신
   


애니 대작 <원더플 데이즈> 7월 17일 개봉

기획에서 완성까지 7년의 긴 시간이 걸렸고, 국내 애니메이션 사상 최고인 100억원이 넘는 제작비가 투입된 애니메이션 대작 <원더풀 데이즈>가 7월 1일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원더풀 데이즈>는 99년 대만에 판매된 것을 시작으로 올해 깐느 마켓에서 프랑스, 스페인, 그리스와 계약을 맺었고 현재 일본, 중국, 독일, 이탈리아, 영국 등과 협상이 진행 중이다.

A.D. 2142년, 선택받은 도시 에코반과 버림받은 도시 마르를 배경으로 잃어버린 푸른 하늘을 되찾으려는 수하, 제이, 시몬, 그들의 엇갈린 사랑과 운명을 담아낸 <원더풀 데이즈>는 7월 10일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관객들에게 첫 선을 보인 후 7월 17일 개봉된다.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첫주 80만관객 몰려

차태현과 손예진 주연의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가 2주 만에 <장화,홍련>이 기록했던 한국영화 첫 주 개봉 신기록을 모두 바꾸며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첫주 전국 관객 예상 수치 역시 80만명으로 <장화,홍련>이 기록한 77만명을 넘어섰다. 반면 <미녀삼총사>는 미국에서는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랐지만 국내에서는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에 밀려 2위에 그쳤다.

채윤정 영화평론가


채윤정 영화평론가 blauthin@se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