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도덕적 병실 운영체계…'병원 맘대로'

종합병원, 빽이 있거나 운이 좋거나…

비도덕적 병실 운영체계…'병원 맘대로'

7월15일 오후 서울 사립 A병원 내과 병동 2인 병실. “간호사 선상님, 6인실로 빨리 옮길 수 없을까요? 힘 좀 써 주이소.” 심한 황달 증세 때문에 전날 응급실을 찾았던 김모(58ㆍ여)씨가 막 병실로 들어오던 참이었다. 올해 초 담석증 수술을 받고 20일 가량 이미 입원을 한 적이 있는 터였다.

입원 절차를 마치고 난 뒤 병실에서 간호사가 나가자 김씨의 보호자는 혀를 끌끌 찼다. “그래도 이번엔 좀 나은 거예요. 몇 개월 전 병원에 왔을 때는 처음에 1인실로 입원을 했어요. 1인실에 이틀, 2인실에 사흘 정도 있다가 6인실로 옮겼는데 5일치 입원비가 100만원은 족히 넘었을 겁니다.” 옆 병상에 누워 있던 60대 환자가 말을 거든다.

“나도 어제 입원했는데 간호사 말로는 대기 환자가 열댓명이 된다고 합디다. 빨라도 주말은 돼야 6인실로 옮길 수 있을 거라고 하던데.” 주변에 아는 사람은 처음에 외과로 입원을 해서 1인실과 2인실을 거쳐 겨우 6인실로 들어갔는데, 내과로 옮겨야 한다고 해서 다시 2인실에 입원을 했다고도 했다.

종합병원들의 요지경(?) 병실 운영에 환자들이 ‘소리 없이’ 울고 있다. 아무리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목숨을 맡겨놓은 환자들로선 병원측에 제대로 항의 한 번 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저 입원을 할 수 있게 해 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넙죽 절을 해야 하는 처지다.

법도 사회적 약자인 환자들의 편에 서 있지는 않다. 환자들은 병원들의 막강한 입김이 당국에 미치지 않을 리가 없는 탓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종합병원들의 비도덕적인 병실 운영 체계는 지금까지 누구도 함부로 언급할 수 없는 금기의 대상으로 남아 있었다.


무법 지대 국립대병원

미흡하지만 금기에 도전한 것은 의료 업계 내부였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와 산하 서울대병원 지부는 올 임단협 협상에 앞서 국내 8개 국립 및 사립대 병원의 병실 및 입원료 현황을 조사한 결과를 공개했다. 조사 결과 국내 최고 국립대 병원을 자부하는 서울대병원과 충남대병원 등 2곳은 기준 병상 비율이 전체 병상의 50%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준 병상이란 6인실(병원에 따라서는 5인실도 해당) 이상 다인실 병상으로 병실료 전액에 대해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병상을 말한다.

현재 보건복지부가 고시한 건강보험 요양급여기준은 기준 병상 수가 전체의 50%에 못 미칠 경우 차액을 환자들에게 환급해 주는 한편 이 금액의 4~5배에 달하는 과징금을 물도록 하고 있다. 특히 서울대병원의 경우 기준 병상 비율이 42.8%로 기준선(50%)에 크게 못 미칠 뿐 아니라 소아 병동을 제외할 경우에는 37.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병원측은 임단협을 통해 연말까지 50% 규정을 준수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금까지 당국의 제재를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상급 병실과 기준 병실간 입원료 차이도 상당했다. 기준 병상은 하루 입원 시 환자 본인 부담금이 7,000~8,000원에 불과했지만, 1인실의 경우 적게는 10만원 안팎에서 많게는 25만원에 달했다. 서울대병원 입원 환자 및 보호자 258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돌린 결과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5%가 ‘기준 병상(6인실)으로 가지 못해 입원비가 부담스럽게 느껴져 퇴원을 고려한 적이 있다’고 응답할 정도였다.

보건의료노조 김미애 정책부장은 “국내 유수의 국립대 병원들이 규정을 어겨가면서까지 영업을 하고 있는데도 정작 당국은 뒷짐만 져 왔다”며 “이 때문에 환자들은 특급 호텔보다 비싼 병실료를 지급하면서 병원에 입원해야만 했다”고 지적했다.


상급 병실 강요받는 환자들

문제는 환자들에게 입원 병실을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이 없다는 점이다. 기준 병상을 50%이상 갖춘 병원이라도 환자들에게 상급 병상을 이용하도록 강제하는 관행이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종합병원들은 환자들이 입원을 원할 경우 기준 병상이 꽉 들어찼다는 이유로 우선 1, 2인실 상급 병상에 입원토록 한 뒤 기준 병상으로 자리를 옮겨주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입원 병실이 1인실 인지, 혹은 2인실 인지는 순전히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해당 환자의 대기 순서에 먼저 비는 병상으로 옮기도록 하고 있는 탓이다. 상급 병상에 입원하는 기간 역시 천차만별이다. 운이 좋으면 하루가 될 수도 있고, 기준 병상에 빈 자리가 나지 않으면 1주일이 될 지 열흘이 될 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민간 대형 종합병원의 경우 1인실 하루 입원비가 25만~35만원, 2인실은 10만~12만원에 달하기 때문에 환자의 의지와 무관하게 적게는 40만~50만원에서 많게는 100만원 이상을 추가 부담해야 한다.

기준 병상이 턱없이 부족한 서울대병원은 아예 ‘단기 병상제’라는 특이한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단기 입원 환자들은 다인 병실에 입원시키고, 장기 입원 환자들은 상급 병상에 입원하도록 하는 제도다. 병원측은 “주기적으로 3~4일씩 입원 치료를 해야 하는 항암 환자 등을 고려한 조치”라고 설명하지만, 장기 입원 환자들의 대다수는 원치 않는 상급 병상 입원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병실료가 기준 병상에 비해 10배, 20배에 달하지만 상급 병상의 환경이 별반 나은 것도 아니다. 삼성서울병원의 경우 병실 종류별 크기는 1인실과 2인실이 각 6.5평, 6인실은 18.8평에 달한다. 1인실의 경우 비교적 넓은 공간이 보장된다지만 2인실의 경우 6인실과 비교해서 환자 1인당 평수에서 큰 차이가 없는 실정. 다른 종합병원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최근 서울 B병원에 입원한 장모(43)씨는 “2인실은 조용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TV나 냉장고, 에어컨 등 공유 시설을 제하고 나면 오히려 6인실보다 비좁다”며 “게다가 장기 입원 환자들의 경우 다인실이 무료함을 달래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상급 병실을 강제로 배정하고 비싼 돈을 받는 것은 병원의 횡포”라는 것이다.


극에 달한 병원 장삿속

병원측 설명은 한결 같다. “기준 병상이 부족해서”, 혹은 “입원 대기 시간을 줄이려는 환자들의 편의를 위해서”다. 서울대병원, 충남대병원을 제외하고 나머지 종합병원들은 기준 병상 비율 규정(50% 이상)을 충족한 만큼 법적으로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 당국의 답변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 김복한 사무관은 “50% 기준만 충족하고 있다면 병실 운영을 어떻게 하고 있든지 정부가 제재할 방법은 없다”며 “도덕적으로는 문제가 될 수 있어도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다”고 말했다.

물론 근본적인 원인은 병원의 장삿속에 있을 것이다. 상급 병상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훨씬 많은 반면, 기준 병상은 항상 수요가 딸리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준 병상을 늘리지 않는 것은 그만큼 병원의 수익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병원측도 이를 솔직히 시인한다. 그리고 다소 엄살을 피운다.

서울대병원 임종필씨는 “장기 입원 환자를 상급 병실에 배정하는 것은 병원 수익을 고려한 조치이기도 하다”며 “만약 기준 병상 수를 크게 늘리면 많은 병원들이 재정난에 허덕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일부 병원은 기준 병상이 남아도는 데도 환자들을 상급 병실에 입원시키고 있다는 소문도 무성하다. 보건의료 시민단체인 건강세상 네트워크 김창보 사무국장은 “기준 병상이 비어있는 데도 불구하고 병원측에서 상급 병실 입원을 강요했다는 환자들의 제보가 종종 있어 왔다”며 “정확한 실태 파악을 해봐야 겠지만 일부 병원에서 이처럼 악의적인 영업을 해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상급 병실료 책정에 아무런 규제가 없는 것도 문제다. 최근 몇 년 새 대형 종합병원들은 1인실, 2인실 등 상급 병실의 병실료 를 수차례에 걸쳐 대폭 인상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변경 내역을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신고만 하도록 돼 있어 당국이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부분 병원들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당연히 공개해야 할 병실료 인상 내역에 대해 ‘대외비’ 등을 이유로 공개를 꺼리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아산병원측은 “실무자가 바뀌어서 병실료 인상 내역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고 답변을 회피했고, 삼성서울병원 역시 “원무과에서 대외비를 이유로 기록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만 답변했다.


'병원 권력' 넘을 수 있을까

의료업계 종사자들은 환자들의 병실료 부담을 줄이기 위해 근본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50%인 기준 병실 비율 하한선을 대폭 높이는 등의 방식으로 환자들의 병실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방의 한 국립대병원 관계자는 “의료기관은 공공적인 성격이 강한 만큼 환자들에게 부당한 요금을 떠 안겨서는 곤란하다”며 “실수요가 별로 없는 상급 병실을 대폭 줄여 다인 병실로 개조를 하든지, 혹은 불가피하게 상급 병실을 이용하는 환자들에게 보험 혜택을 주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건강보험공단 보험급여실 박두신 차장도 “보험공단 입장에서는 모든 국민들에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는 의료 보험의 취지를 감안할 때 기준 병실을 확대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상급 병실료 책정도 현행 신고제에서 허가제로의 전환 등을 통해 적절히 규제하는 방안을 심도 깊게 논의해봐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요구들이 받아들여지기 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여전히 병원의 권력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한 민간 종합병원 노조 관계자는 이렇게 자조했다. “우리 사회에서 막강한 권력이 돼 버린 병원들이 쉽게 자신들의 이권을 포기하겠습니까. 더구나 ‘가재는 게 편’이라고 관계 당국 역시 늘 병원들의 편에만 서왔다는 의구심도 가시지 않고 있는데요.”

이영태 기자


이영태 기자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