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프레소] '절반의 한국인' 재즈드러머 벤 볼

“넉달만 있다 가려 했는데, 여기까지 와 있군요.” 캐나다 출신 재즈 드러머 벤 볼(31)은 이제 한국 사람이 다 됐다.

전북 익산의 백제 예술대에 가면 그는 ‘교수님’ 소리를 듣는다. 2년째 실용 음악과 교수다. 거기서 재즈 드럼, 앙상블 등의 강좌를 맡고 있다. 현재 드럼과에만 40명이다.

“당시 출연중인 재즈 클럽이 망하는 바람에 제 거취를 결정해야 했어요.” 그는 정재열(기타), 임인건(키보드) 등과 그룹 ‘야타 밴드’를 만들고 비자를 연장해 클럽 활동을 계속해 갔다. 한국과의 인연은 깊어만 갔다.

1995년 친구 정재열을 따라 한국에 왔을 때는 한국어는 한 마디도 못 했지만, 이제는 언제 그랬느냐 싶다. 정재열의 사촌 동생 희락(33)과 결혼해 성동구 중곡동에 살림을 차리고 있으면서 1년 동안 경희대 어학원 코스를 착실히 밟은 덕택이다. 게다가 얼마 뒤 백제예대에서 학교 교수로 재즈를 가르치던 정재열이 그를 교수로 불러, 마다 할 수 없었다.

국내에서는 재즈 드럼 교재가 없어, 그는 수업 교재를 직접 써야 했다. ‘스윙코페이션’이 그것이다(서울 재즈 아카데미刊). 재즈의 기본인 스윙에서 현대 재즈의 복잡한 폴리 리듬(또는 크로스 리듬)까지 체계적으로 기술한 책이다. 스윙과 신코페이션이라는, 재즈 리듬의 양대 축을 합성해 낸 신조어다.

가을 중으로 2권이 빛을 볼 이 책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아주 독특한 드럼 교재라고 그는 자신한다. “사물놀이의 박자 시스템을 적극 응용한 덕이죠.” 한국에 와서 말로만 들어 오던 사물놀이라는 음악을 접하고는, 그것이 리듬의 보고라는 사실을 드러머의 본능으로 직감했다. “기계 음악으로는 할 수 없는 인간적 느낌이 재즈와 너무 비슷하다고 생각했죠.”

한국에서의 생활 기반이 제법 잡힌 2002년 11월부터 그는 국악 전공 대학생 이수정(23ㆍ서울대 국악과4)을 소개 받아 개인 레슨을 받아 오고 있다. 이 교수-학생은 “지금은 칠채, 삼채, 휘모리를 배우고 있다”며 “배우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말했다.

이수정은 “특히 장구 재능이 뛰어 나다”며 “사양 음악과 한국 음악을 다 이해하는 덕분에 하나를 가르치면 전혀 다른 새로운 하나를 창출해 낸다”고 그를 평했다. 아직 절반도 가르치지 못 했는데, 창의력이 무궁무진하다는 것.

한국에 와서 참여한 재즈 음반이 세 개다. 그 중 두번째인 ‘South Haven’은 개인적으로 의미가 큰 작품이다. 삼채 장단 위주로 작곡한 ‘Samulnori’가 있어서만은 아니다. 한국서 본 아들 데이비드(3)을 위한 ‘Contractions For David’도 수록돼 있어서다. 스윙 리듬과 현대 음악을 합친 독특한 재즈다.

사물놀이에 감명 받은 그는 최근 들어 지금껏 써 오던 드럼 세트를 개조할 계획가지 갖고 있다. “원래 드럼 세트로 사물놀이 장단을 연주하는 방식도 연구중입니다. 드럼을 배열할 때, 장구처럼 왼쪽을 저음으로, 오른쪽을 고음으로 배열해 볼 생각입니다.” 또 왼발로 징을 연주하는 방법도 고려하고 있다.

피터 어킨스나 존 라일리 등 미국의 일부 재즈 뮤지션들은 기존의 드럼 세트를 전통 라틴 음악 스타일로 개조하기도 해, 볼의 구상은 그리 낯선 것도 아니다.

그의 한국 생활은 대단히 풍성한 결과를 낳고 있다. 그는 “한국에 온 것은 큰 행운”이라고 말했다. 부인도 얻고, 건강상 이유로 경희대에서 배운 태권도로 검은 띠까지 땄다. 내친 김에 2002년 백제 예대와 계약을 맺으면거 받아 둔 교수 비자를 앞으로 2년 더 연장할 계획이다.

그는 “음악적 자극의 측면에서 본다면 서울에서의 1년은 토론토에서의 10년”이라고 말했다. 현재 미발표곡을 60여곡 갖고 잇는 그는 “그 중 10여곡은 녹음을 위해 더욱 손질해 나갈 것”이라고 말해 1신보 발표가 머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장병욱차장


장병욱차장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