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원추리

어디가나 원추리가 한창이다. 지리산 노고단의 운무속 노란 원추리 군락도 멋지고, 이름난 식물원의 한 켠에서 색색이 피고지는 서양 원추리들의 흐드러짐도 멋지다. 한여름, 뜨거운 햇살 속에서 따뜻한 빛깔의 탐스러운 꽃송이를 만들어 내면서도 그렇게 피어나는 원추리 무리들은 마냥 시원스러우니 이 또한 신기하다.

원추리는 백합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꽃인듯 하지만 막상 원추리가 피어 있는 모습을 보고 나리꽃(참나리, 말나리 등등 이지 그냥 나리라는 식물이 없긴 하다)이라 부르는 이들도 제법 많다. 나리와 확실하게 구별하는 방법은 잎이 서로 포개어 안으며 부채살처럼 펼쳐지면서 늘씬하게 뻗어내는 점이다.

그 사이에서 긴 꽃대가 올라오다가 다시 여러 갈래로 갈라져 꽃송이를 매어 단다. 언뜻 원추리는 여름내 오래 오래 피어나는 듯 느껴지지만 이는 여러 송이가 다시 여러 포기가 모여 전체적으로 그렇게 느껴질 뿐이지 한 송이의 수명은 하루뿐이다. 원추리들을 모두 통칭하여 부르는 속명(屬名)이 헤메로칼리스(Hemerocallis)인데 바로 ‘하룻날의 아름다움’이란 뜻이다. 영어 이름 역시 데이릴리(Day Lily)이다.

우리가 보는 원추리의 종류들이 흔히 다를 수 있다. 꽃이 가장 크고 색깔이 주홍빛이며 안쪽에 더욱 진한 색의 무늬가 있는 것이 그냥 원추리이고, 산야에 자연적으로 피고 지는 원추리 종류들도 많은데 대부분 꽃색이 진한 노란색이다. 여리고 소박한 각시 원추리, 꽃이 큼직하고 꽃차례가 다른 큰 원추리, 잎에 골이 패인 골잎 원추리 … .

하지만 원추리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 중에는 고운 꽃도 있지만 맛있는 나물도 있다. 독성이 없는 아주 좋은 나물이어서 봄에 살짝 데쳐 무쳐먹기도 하고 국을 끓여 먹기도 한다. 더욱 멋지게 먹으려면 어린 순과 꽃을 따서 김치를 담그기도 하고, 꽃을 된장과 함께 쌈을 사서 먹기도 한다.

요즈음은 관상용으로 인기가 많다. 요즈음 웬만한 우리 꽃 정원에서는 대부분 원추리 구경이 가능하고,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품종이 만들어져 흰색에 가까운 꽃에서 진한 보라색 꽃까지 그 색과 모양도 다양하다. 약용으로는 독을 푸는 9가지 식물의 하나에 들어가며 그 뿌리를 자양강장제로 이용했다. 민간에서는 꽃을 말려 몸에 지니면 아들을 낳는다는 믿음이 있어 득남초라는 별명도 있다.

중국에서는 원추리를 망우초(忘憂草)라고 쓰고 훤쵸라고 읽는다고 한다. 근심을 잊게 할 만큼 아름다운 꽃이라는 뜻이다. 당나라 황제는 양귀비와 함께 정원을 거닐며 ‘원추리를 보고 있으면 근심을 잊게 되고 모란을 보고 있으면 술이 잘 깬다’라고 말했으며, 이 말이 효시인지는 몰라도 우리나라에도 여러 시와 기록에 이 꽃 한 송이에 근심을 더는 이야기기 나온다.

세상사에 근심이 많거든 꽃송이들을 바라보며 이를 잊고, 마음을 밝게 하려했던 옛 사람들의 지혜를 잠시 빌려 원추리 구경이나 떠나 보길 권한다. 높은 산이나 시골 마을로 먼 길을 떠나지 않더라도 공원에도 길 옆 가로 화단에도 우리의 걱정을 덜어줄 원추리 무리들은 얼마든지 많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