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에 목숨 건 쇼핑 승부사

[직업의 세계-7] 홈쇼핑 MD 박재락

매출에 목숨 건 쇼핑 승부사

방송은 방송이지만 그들은 드라마나 뉴스를 팔지 않는다. 상품을 판다. 중독성으로 쳐도 드라마 열기에 비할 바가 아니다. 24시간 전파를 타고 벌어지는 작은 경제전쟁, 이 거대한 신종 산업군 홈쇼핑 채널을 움직이는 숨은 승부사들이 있다. 바로 홈쇼핑 MD들이다.

LG홈쇼핑 생활용품팀 과장 박재락(35)씨도 그중 한 사람이다. 2000년부터 이대열에 합류한 그는 작년 승률 9할대, 예외없는 불황으로 MD 전체가 전반적인 기록 저조를 보이고 있는 올해도 약 8할대를 확보, 자사 팀안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유망주다.


MD는 '뭐든지 다한다'약자?

- MD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

우리끼리 하는 말로 '뭐든지 다한다'의 약자라고 한다(웃음). 통상적으로는 일반 유통업체에서 상품 구매를 담당한 머천다이저를 MD라고 하지만, 홈쇼핑 MD는 조금 차이가 있다. 어떤 상품을 띄울 것인지 대상을 찾고 기획하는 일에서 부터 구매, 방송 제작을 지원하는 일, 영업, 심지어 배송 후 고객의 불만사항까지 모두 책임을 져야 한다. 말 그대로 뭐든지 다한다.

- MD로서 최고 매출을 어디까지 올려봤나?

팀 전체로 얘기하자면, 얼마 전 모 기업의 아기용 기저귀의 경우가 가장 크다. 딱 하루 방송에 28억원어치가 팔렸다. 담당 MD도 있지만 그때는 편집 편성으로 팀 전체가 총력전을 편 결과다. 특히 그 얼마 전에 경쟁채널에서 동일제품으로 매출 20억원을 올린 일 때문에 내부적으로 압박을 받던 상황에서 결국 경쟁사의 매출을 압도적으로 뒤집은 것이다.

- 성공인지 실패인지는 방송 얼마 만에 알았나?

보통 방송 10분만 지켜보면 승패가 판가름난다. 우리는 방송이 나갈 때 동시에 콜 그래프(자체 전자시스템을 통해 실시간 주문 전화량이 기록되는 그래프)를 보는데, 그날은 확연히 달랐다. 대개는 시간이 지나면서 콜에 등락이 있기 마련인데, 그때는 초반에 쫙 올라가더니 계속 한일자 상태였다. 바로 MD들이 가장 이상적으로 여기는 일명 '개마고원콜'이 뜬 것이다. 그걸 보고 크게 터진 것을 알았다.

- 뭘 어떤 식으로 총력전을 폈길래 같은 제품에서 서로 다른 결과가 나온 건가?

말해되 될지 모르겠다(웃음). 그럴 때 가장 관건은 사음품이다. 주어진 가격범위안에서 뭘 사은품으로 주면 사람들이 가장 좋아할까. 우리가 그때 가장 고민하고 주력했던 문제도 그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끼리 '사은품 MD'라는 농담까지 나왔었다. 그날 완구류를 사은품으로 줬는데 담당 MD가 "내가 기저귀 MD인지 완구 MD인지 모르겠다"고 말해 함께 웃었다.

- 그 외에도 그동안 본인이 내놓은 상품들이라면?

국내에서 아직 시장이 형성되지도 않았을때 처음으로 방송을 통해 노출시켰던 메모리 폼 베개를 비롯해서 코 세정제, 에어 매트리스 등 20가지쯤 된다. 주로 중소기업의 아이디어 기능성 상품들을 많이 다뤘다. 운이 좋아서 성공률이 높았던 편이다.

- 개인적으로 매출 최고 기록은?

분당 850만원, 그러니까 1회 방송에서 4억5,000만원정도 매출을 올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메모리폼 배게나 비데, 연수기 등이 그랬다.


"매출이 인격이다"

- 대박이 터졌을때의 기분은?

내 경우, 기쁘다기보다 안도의 한숨이 먼저 나왔다. 다들 반대하는 상황에서 어렵게 추진했는데 성공했을 때, 어쨌든 실패를 면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선 마음이 놓이는 것이다. 기쁜 건 그 다음 감정이다. MD들이 가장 즐거울 때도 어렵게 신상품을 노출시켰는데, 그게 떴을 때다. 목표를 이뤘을 때 만족이 온다. 처음 MD가 된 사람들이 가장 어려운 것도 한번 성공을 체험하기까지의 시간이다.

그때까지는 모든 게 불안하고, 불확실하고, 두렵다. 그렇지만 일단 성공을 체험하고 나면 그 뒤부터 자신감이 붙고 일도 즐거워진다. 이 일을 하면서 얼마나 사람이 단순해질 수 있나면, 그 전에 아무리 스트레스 받고 침체되어 있다가도 딱 매출이 일어나고 콜이 뜨는 순간, 전부 다 잊어버리고 어린애처럼 헤헤거리고 다니게 된다.

성공만하면 이전의 실수나 실패까지 상쇄된다. 그래서 우리끼리 항상 하는 얘기가 있다. '매출이 인격이다'. 아무리 그전에 좋은 말이 오가고 싫은 소리가 오가도 다 필요없다. 결국 마지막에 인정받고 평가받는 건 매출에 있다.

- 실패했던 경험은?

석달 전인가 로봇 청소기를 올렸는데 생각만큼 매출이 안 나왔다. 방송할 때도 상당히 힘들었고, 주위에 반대의견도 많았다. 나름대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게 아니라는 걸 입증해 보이고 싶었는데 뜻대로 안됐다. MD도 MD이지만 실패할 경우 중소기업의 사활까지 걸린 문제라 더욱 마음이 무겁다.

- 최소한 '면피'라도 하자면 대략 얼마 이상 성공시키면 되나?

예전에는 3분의 1만 성공시켜도 괜찮은 실적이라고 했다. 요즘도 그 정도면 괜찮은 편이 아닐까 싶다. 단지 내 생각이다.

- 실패한 경우 MD에게 직접적인 영향이 있는가?

직접적인 영향은 없지만, 맨 먼저 상사에게 심하게 깨지지 않겠는가(웃음). 어떨 땐 방송 도중에 불려가기도 한다. 무엇보다 본인 스스로 느끼는 실망감이나 좌절감, 스트레스가 적지 않다. 실패를 겪으면 스스로 위축돼 다음 일을 진행하는데 자신감을 잃기 쉽다.

또 실패가 너무 잦다 보면 팀안에서도 입지가 어려워져 일하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실패의 기억은 가능한 한 빨리 떨쳐버려야 한다. 지나간 일에 매여 있다 보면 다음 일까지 다 망친다. 후배들 중에도 새가슴이랄까. 실패할 때마다 정신적으로 아주 힘들어 하는 MD가 있다. 볼때마다 '대범해지라'고 말해주곤 한다. 실제로 그런 스트레스를 관리하지 못하면 이 일을 하기 어렵다.

- 방송 전 과정은 다소 여유가 있는 편인가?

우리 일은 한마디로 지루할 틈이 없는 직업이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끊임없이 새로운 일이 발생하고, 모든 일이 빠르게 진행된다. 대개 아침 9시에 출근해 전날 매출 실적부터 확인한 뒤 하루를 시작한다. 내부 회의만 하루 평균 세 차례쯤 있다. 그 외에도 업체 관계자와 상담하거나 밖으로 나가 사람을 만나 정보를 구하는 등 거의 종일 사람 만나는 일로 채워진다. 내가 담당한 방송은 반드시 모니터한다. 보통 저녁 8, 9쯤 퇴근한다.

- 자료 수집은 어떤 식으로 하나?

해당업체에서 제출하는 자료도 있고, 우리 자체적으로 인터넷을 통해 관련 통계자로라든가 유통정보를 찾아 모으기도 한다. 또 품질을 확인하는데는 회학실험연구원 등 관련 연구기관의 검사를 거치기도 하고, 내가 직접 제품을 써보거나 경우에 따라 주위의 친구, 친척 등 아는 분들에게 사용해 보게 한 뒤 문제점이나 반응을 확인하기도 한다. 여성용 좌훈기를 다뤘을 때는 동료 여직원한테 부탁햇고, 거품 목욕제를 맡았을 때는 그때 우리 집에 욕조가 없어서 친구집에 달려가 친구 어머니에게 써보시라고 한 뒤 욕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적도 있다. 또 그 상품이 실제로 유통되는 시장에도 나가 고객반응을 알아본다.

- 예를 들면 어떻게?

가령 할인점에서 파는 물휴지라고 치면, 직접 할인점에 찾아가 지키고 서 있다가 그 물휴지를 사는 손님마다 붙들고 주로 어떤 제품을 쓰는지, 오래 쓰는지 등등을 물어본다. 그러다가 할인점 직원이 다가와서 눈치를 주면 할수 없이 다른 할인점으로 옮긴다. 가끔은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며 그냥 가버리는 손님도 있고, 쑥스럽기는 하지만 그 정도의 쑥스럼움은, 뭐 괜찮다.


잘 나가던 샐러리맨서 MD로

MD가 되기 전, 박씨는 전형적인 엘리트 넥타이 부대의 일원이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뒤 한 리스회사에 다니다가 일에 대한 회의로 퇴사, LG에 입사해 경영전략실을 거쳐 구조조정본부에서 근무하던 중 길을 바꿨다.

- 왜 갑자기 MD가 되려고 했나?

언제부터인가 그저 책상 앞에 앉아서 숫자를 보거나 기획을 하거나 하는 일들이 참 공허하게 느껴졌다. 내 손 위에서 돈이 오가는 것도 아니고, 물건이 오가는 것도 아니고, 실체가 없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일을 그만두고 나가서 좀 더 생동감 잇고 자유로운 일을 해보고 싶었던 시점에 마침 홈쇼핑 MD라는 일이 눈에 띄었다.

- 전에 있던 곳과 분위기가 많이 다르지 않던가?

아주 달랐다. 어떻게 보면 내게 도박이었다. 이전까지 있었던 곳은 특히나 조직의 위계질서가 엄격하고, 형식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는 곳이었다. 복장만 해도 항상 정장 양복차림에다 한여름에도 긴 소매 와이셔츠를 입었다. 전화를 받을 때도 목소리가 조금만 크면 다들 쳐다보는 그런 분위기다.

그러다가 여기에 와보니 내 또래 사람들도 많고, 출신도 다양한덴다 방송문화랑 뒤섞여 근무 분위기가 독특했다. 처음에는 적응하는데 다소 갈등도 있鄕嗤?직업을 바꾼것은 지금도 잘했다고 생각한다.

- 수입은 얼마나 되나?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는 않다. MD가 되기 전에 받던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다만 매출을 많이 올렸을 경우, 그 달에 소정의 보너스를 추가로 받는다.

- 한번에 매출 몇억원씩 올린 대가치고는 보너스가 너무 약소해보인다. 좀 억울하지 않나?

그것도 고마운 것 아니낙? MD혼자만 일해서 얻은 결과가 아니고, 기본적으로 우리도 회사원의 범주 안에 있다. 앞으로 성과에 대한 보상체계가 좀 달라 질 거라는 얘기는 들었다.

- 특별히 큰 돈이 쥐어지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실패하면 스트레스만 더 무거운데, 무엇을 위해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보험세일즈같이 영업실적이 수입에 대폭 반영되는 건 아니자만, 자신이 책임과 권한을 갖고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즐거움 자체가 여기에는 있다.이 직업은 대단히 다이나믹하다. 자신이 하는 일이 바로 눈앞에서 심판대에 오르고, 실시간으로 평가가 이뤄진다. 원하는 것이 제대도 됐을 때의 성취감을 아주 라이브하게 느낄 수 있다. 다른 유통 관련 직업과도 또 다른 매력이다.

이 모험심 투철한 MD는 현재 미혼이다. 다른 히트작은 많았어도, 아직 본인 배우자만큼은 '런칭'에 실패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여성이라면 성사 확률이 높다. 상대로부터 사랑을 받기보다 자신이 사랑을 건네줄 대상을 찾고 있는 따뜻한 미혼, 물론 이 광고는 TV에 안 나간다.

글·사진 정영주 자유기고가


글·사진 정영주 자유기고가 pinplus@empal.com